그룹명/사람이야기

[스크랩] 소름 돋다~

언덕위에 서서 2016. 5. 27. 22:57

1.

첫 연금이 들어 왔다.

대박이다~ 아무 것도 안했는데,

하루도 출근 안했는데, 돈을 주다니~

 

연구년 맞아, 24시간 백수 남편과 함께 지내며

하루 두끼 꼭 챙겨주는 마눌이 말했다(삼식이 새끼 될까 봐 2끼만 먹는다)

"당신 여권 만들어, 2월 중에 캄보디아 다녀오게~"

 

힘들다.

밖에 나가려면

이 딱고 머리 감아야지, 옷 골라야지, 운전해야지~~~

그냥 집안에 있는게 제일 좋은데

 

2.

밥 안 줄까 봐, 도청민원실로 간다

 

날 아는 여직원이 반갑게 인사를 건낸다

얼마 전에 여권 만드셨잖아요?

아닌데?

아, 맞다 공인중개사 자격증 받으러 오셨었구나~~

ㅋ, 맞다

 

여권 담당 정규직 공무원이,

휴대폰 귀에 대고 수다 삼매경인 도우미에게

낮고 위협적인 어조로 말한다

" 여기~ 여권 신청서 작성이요~~~~" 

 

도우미 왈~

최근 6개월이내  촬영한 사진이라야 하구요

종전 여권 반납해야 되구요

그래서 이 사진은 2년된 사진이라 안되겠네요~~

네?

알겠습니다 돌아 나온다

 

 

3.

단골 이발소로 간다, 손님이 한명 있고

마나님은 휴대용 가스렌지에 찌게를 끓이고 있다

 

에고~

온 세상이 점심 시간이구나

내는 모처럼 일찍 밖에 나와 서두르는데~~

 

1시간 후에 다시 올께요~

셔츠와 넥타이, 수트를 챙겨서 집을 나선다

오늘 벌써 2번째 집을 나서는 것이다

머리 깍고, 사진 찍으러 지하상가로 간다

 

아뿔싸~~

지하상가 광장에  앉을 자리가 없다

60~70대 젊은 노인네들이

경쟁하듯,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어쩌지? 나도 여기 나와 앉아 있게 되면~~

소름이 돋는다

 

3.

사진 찍고, 3장 중 하나를 고르란다

 

후~ 이게 나야?

한 번 더 찍읍시다

 

똑 같다, 이발하고 드라이까지 했는데,

주름 많은 생소한 얼굴이 찍혀 있다

에고, 술 그만 마셔야지

 

20분 후에 오세요

네~

 

지하광장의 검은 옷 입은

젊은 남녀들 사이를 지나간다

다시 소름이 돋는다

어쩌지? 여기 나와 앉아 있게되면~

 

 

4.

다시 민원실~

 

이건 아닌가요?

갖고 간 여권을 내밀자~

 

이거 말고, 2007년에 만든 여권이 살아 있어요

그거 반납해야 전자 여권 만들어 드려요

 

그 여권 못찾겠던데~분실처리해 주세요

 

네, 여기 분실처리~~~?

정규직 공무원이 도우미에게 신호한다

 

도우미 왈~

종전 여권이 살아있는데, 그거 분실처리하면

인터폴에 개인신상 뿌려지구요

입국하실때 불편하실  수 있어요

수사기관에서 조사 받으실 수도 있구요

 

뭐~~ 인터폴에?

됐어요, 그럴거면 온 집안을 다 뒤져서라도 찾아야지

신청서 돌려줘요

 

5.

그냥 나온다

백수가 과로사 한다더니~ 오늘이 그런 날이다

It's not my day~

 

영외 PX로 간다. 소주 1박스

 

3시 반

좀 이른 시간이지만, 한 잔 하자

오래된 다이어리에 끼어있던  여권도 찾았겠다

마침, 마눌도 없다~

 

첫잔을 들이키는데~

 

다시 소름이 돋는다

 

 

 

 

 

 

출처 : 설악산을 사랑하는 江原山房
글쓴이 : 비탈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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