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첫 연금이 들어 왔다.
대박이다~ 아무 것도 안했는데,
하루도 출근 안했는데, 돈을 주다니~
연구년 맞아, 24시간 백수 남편과 함께 지내며
하루 두끼 꼭 챙겨주는 마눌이 말했다(삼식이 새끼 될까 봐 2끼만 먹는다)
"당신 여권 만들어, 2월 중에 캄보디아 다녀오게~"
힘들다.
밖에 나가려면
이 딱고 머리 감아야지, 옷 골라야지, 운전해야지~~~
그냥 집안에 있는게 제일 좋은데
2.
밥 안 줄까 봐, 도청민원실로 간다
날 아는 여직원이 반갑게 인사를 건낸다
얼마 전에 여권 만드셨잖아요?
아닌데?
아, 맞다 공인중개사 자격증 받으러 오셨었구나~~
ㅋ, 맞다
여권 담당 정규직 공무원이,
휴대폰 귀에 대고 수다 삼매경인 도우미에게
낮고 위협적인 어조로 말한다
" 여기~ 여권 신청서 작성이요~~~~"
도우미 왈~
최근 6개월이내 촬영한 사진이라야 하구요
종전 여권 반납해야 되구요
그래서 이 사진은 2년된 사진이라 안되겠네요~~
네?
알겠습니다 돌아 나온다
3.
단골 이발소로 간다, 손님이 한명 있고
마나님은 휴대용 가스렌지에 찌게를 끓이고 있다
에고~
온 세상이 점심 시간이구나
내는 모처럼 일찍 밖에 나와 서두르는데~~
1시간 후에 다시 올께요~
셔츠와 넥타이, 수트를 챙겨서 집을 나선다
오늘 벌써 2번째 집을 나서는 것이다
머리 깍고, 사진 찍으러 지하상가로 간다
아뿔싸~~
지하상가 광장에 앉을 자리가 없다
60~70대 젊은 노인네들이
경쟁하듯,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어쩌지? 나도 여기 나와 앉아 있게 되면~~
소름이 돋는다
3.
사진 찍고, 3장 중 하나를 고르란다
후~ 이게 나야?
한 번 더 찍읍시다
똑 같다, 이발하고 드라이까지 했는데,
주름 많은 생소한 얼굴이 찍혀 있다
에고, 술 그만 마셔야지
20분 후에 오세요
네~
지하광장의 검은 옷 입은
젊은 남녀들 사이를 지나간다
다시 소름이 돋는다
어쩌지? 여기 나와 앉아 있게되면~
4.
다시 민원실~
이건 아닌가요?
갖고 간 여권을 내밀자~
이거 말고, 2007년에 만든 여권이 살아 있어요
그거 반납해야 전자 여권 만들어 드려요
그 여권 못찾겠던데~분실처리해 주세요
네, 여기 분실처리~~~?
정규직 공무원이 도우미에게 신호한다
도우미 왈~
종전 여권이 살아있는데, 그거 분실처리하면
인터폴에 개인신상 뿌려지구요
입국하실때 불편하실 수 있어요
수사기관에서 조사 받으실 수도 있구요
뭐~~ 인터폴에?
됐어요, 그럴거면 온 집안을 다 뒤져서라도 찾아야지
신청서 돌려줘요
5.
그냥 나온다
백수가 과로사 한다더니~ 오늘이 그런 날이다
It's not my day~
영외 PX로 간다. 소주 1박스
3시 반
좀 이른 시간이지만, 한 잔 하자
오래된 다이어리에 끼어있던 여권도 찾았겠다
마침, 마눌도 없다~
첫잔을 들이키는데~
다시 소름이 돋는다
'그룹명 > 사람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흐르는 물처럼~ (0) | 2016.05.27 |
---|---|
[스크랩] 잔치국수~ (0) | 2016.05.27 |
[스크랩] 연말연시가 이렇게 평온할 수도 있는 거였구나~ (0) | 2016.05.27 |
[스크랩]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0) | 2014.11.18 |
[스크랩] 100일~~ (0) | 2014.11.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