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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흐르는 물처럼~

언덕위에 서서 2016. 5. 27. 22:58

1.

1980년대 말 춘천에 전입오니

40대 초반의 지휘관이 많이 힘들고 외로운 표정을 짓고 계셨다

 

사무실에서야 바쁘고 북적대니 시간이 빠르지만

부대 안에 있는 관사로 퇴근하면, 절간 같은 집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야 하고

그나마도 없는 주말, 휴일엔 그 외로움이 더 크고 길었을 것이다

(멀리 남쪽에 계신 부인은 한 달, 또는 두 달에 한 번쯤 관사에 다녀 가셨다)

 

승진, 보직관리가 군인들의 꿈을 대신하는 어휘인데

그 부분도 잘 풀리지 않는 눈치였고~

 

얼마 시간이 지나자 지휘관의 지친 표정이 이해되었다

 

2.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하들이 이 지휘관을 참 좋아했는데

당시의 대대장들과는 달리, 소탈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대대장이면 의례히 손에 들고 다니던 지휘봉을

한 번도 들고 다니지 않았고~

본인이 승진이 늦어, 승진하려고 애쓰는 아랫 사람들의 심정을 잘 알고

쓸데없는 곳에 노력을 낭비하는 일이 없도록 배려했다

 

그런 이유에서인가, 일과가 끝나면 아랫 사람들은 자주 관사로 몰려가

두부찌게 안주에 막걸리를 마시곤 했는데,

이는 혼자있는 지휘관에 대한 배려이기도 했고

나만 빠지면 찍힐 것 같다는 심정도 섞여 있었던 것 같다

 

3.

그렇게 평온한 일상이 지속되며,

부대의 1만시간 무사고 비행기념식을 며칠 앞둔 날

속초에 파견갔다 돌아오던 헬기가 실종됐고,

며칠후 한계령에서 기체가 발견됐다. 순직 4명

 

어렵사리 안장식을 마치고 나서 이 지휘관은 다른 곳으로 전출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역했다

 

그 와중에

이 지휘관에 대해 이런저런 소문이 밀려 왔으나

 

이곳에서의 생활이 얼마나 외롭고

꿈이 없는 직장생활이 얼마나 힘든지 아는 나이가 되면서 부터는

더더욱 소탈했던 그이 모습이 생각나며

그래, 충분히 그럴 수 있었겠다는 심정이 되었다

 

4.

세월이 흘러 내도 그 비슷한 과정을 겪고,

그 비슷한 이유로 직을 떠나왔다

 

그 지휘관 밑에서

한껏 귀히여김을 받았던 터라 자주 그이 생각이 난다

 

다만 내자신에게 심히 아쉬운 것은

내는 내 직원들에게 그이처럼 소탈하고

살갑게 대해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건 내 인간됨이 많이 모자랐기 때문이고

조금은 세대차 때문일 수도 있으리라~

 

막상 떠나오고 나니

누구도 내가 그이를 생각하듯이

날 그리워할 이가 없을 것이라는 먹먹함이 크다

 

늘~ 흐르는 물처럼

낮은 곳으로 스몄어야 하는데

그냥 고여 있었다는 생각에 가슴이 먹먹해지는 것이다

 

 

 

 

 

 

 

 

 

 

 

출처 : 설악산을 사랑하는 江原山房
글쓴이 : 비탈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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