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퇴직 후 3개월을 기분 좋게 지냈다
매일 아침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베란다창을 통해 보이는 태국기가 아무리 요란하게 휘날려도~
의암호 물결이 동해바다처럼 철썩거려도
건조주의보가 내리고 산불경보가 내려도
심지어~
이번 주말은 화사한 봄날씨가 예상되어 외출하기에 좋겠다~는 기상캐스터의 멘트도
이제~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닌 것이다
그러니 얼마나 기분 좋겠는가~
(솔직히 말하자면, 아직 큰 바람이나 짙은 안개 때문에 순간 순간 가슴을 졸이다가
아! 이젠 안그래도 되지~하며 스스로를 진정시키지만)
그리고
매일 마셨다 더러는 둘이서, 때로는 혼자서
그도 좋은 것이,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끌려나가 입에 발린 소리해가며 마시는 게 아니기 때문에~
조금 취해 내 잘난 척하면, 흔쾌이 맞장구 쳐주는 사람과 마시니까~
2.
3개월 즈음에 들어서자
이젠 이 패턴에도 뭔가 변화가 있어야 하는데~하는 욕구가 스멀스멀 피어 올랐다
퇴직 축하한다는 의례적인 안부 전화도 서서히 줄어들 무렵이고
그로 인해 마치 인생을 다 살아버린 듯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기 때문에~
그때 화천한옥학교 선발결과가 통지됐다
대목(大木, 집 짓는 목수) 과정, 훈련기간 6개월, 교육인원 30명, 기숙사 및 1일 3식 제공
본래 교육비가 160만원(이도 엄청 싼 금액이지만~)인데, 이번 기수부터는 국가가 대준단다
완전 무료에 기숙사와 식사, 게다가 그 좋은 기술까지 가르쳐준다니~
경쟁율이 5:1 이라던데, 이런 행운이 내게도 왔다
부지런히 필요한 서류 제출하고 등록을 마쳤다
3월16일~
3.
첫 주, 교육과정에 대한 오리엔 테이션이 끝나자
2주차에 대패 날, 끌 날을 가는 훈련을 하는데
이 나이 되도록 날 가는 방법도 모르고 살았다는게 한심스럽고
이 또한 젊은 친구들이 더 빨리 배운다는게 속상했고
무었보다 하루 8시간을 쪼그려 앉아 있으니 온 몸이 쑤시는데
그 고통이 유격훈련에 비할 바가 아니다
(아마 그때보다 더 나이 들었기 때문이지 싶다)
다행이 이 기간이 6개월 과정 중 가장 힘든 시기라는 말이 들려왔다
대패날 2개를 가는데 1주일이 걸렸다
끌 날 8개를 갈아야 하는데, 내 실력으론 3개월은 잡아야 할 듯 싶다
그 다음주엔 한옥 도면을 그리는 훈련을 하는데
아~ 나는 자를 갖다 대고도 선을 똑바로 긋지 못하는 존재였음이 증명되었다
한옥은 목재를 짜맞춰서 짓는 집이기 때문에 설계 오차가 "0" mm라는데
내가 그은 선은 위,아래가 굵기가 다르고, 똑 바르지도 않은 것이었다
게다가 아무리 돋보기를 고쳐써도 0.3미리 샤프펜과 곡자 사이의 접촉부분이
제대로 보이질 않으니~ 이것도 나이 들어 하기엔 벅찬 일임을 절감했다
4.
그 다음 주엔 1주일간 대패날을 손대패에 결합하고
전동대패와 엔진톱, 둥근 전기톱의 사용법을 배우고 나서, 바로 서까래 깍기에 돌입했다
100kg 내외의 원목을 옮기는 법, 그 나무의 겁질을 벗기고 옹이를 쳐내고
굵은 부분은 깍아내어 전체적으로 직선이 되게 하고,
표면을 다듬어 매끈한 서까래를 만들어 내는 과정이다
1개조 6명이 7가지 연장을 사용하여 첫번째 서까래를 만들어 내는데 3시간이 걸렸다(6명X3시간X60분=1080분/개)
2번째 것은 1시간쯤 걸렸다(360분/개)
숙달된 목수는 하루(10시간)에 혼자 30개를 깍는단다(600분/30개=20분/개)
교육과정이 처음 3개월간 공구 다루기, 설계, 목재 다듬기를 끝내고
그 다음 3개월간 그 목재를 사용하여 실제로 건물 1채를 짓는 것이란다
이제 처음으로 서까래 다듬는 과정에 입문한 것에 불과하나
이미 지난 5주 동안에 손바닥은 뻣뻣해지고 손톱밑은 까매졌다
얼굴도 새까맣고 옷에는 송진과 대패밥이 배었다
소위 막일꾼 모습이다
그래도 좋은게, 머리속은 맑고, 몸은 건강해지는 느낌이다
평생 마음속에 품어 왔던 일을 배우는 중이니 몸은 피곤해도
마음은 매일 아침 기대감으로 가득하다
그 사이 산방에 덧글 하나 달기도 힘들 정도로 매일이 빡빡했는데
이제부턴 마음의 여유를 갖고 그곳의 에피소드를 전하려 한다
내 인생 2막의 모습이고, 산방식구들에 대한 예의인 듯도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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