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사람이야기

쌀독

언덕위에 서서 2006. 12. 27. 18:16

1.
내가 중학교 때니, 엄니가 30대 중반이었을 게다.
그 당시 우리집은 작은방들이 제 맘대로 이어져 있고, 안방은 낮에도 불을 켜야
방안이 제대로 보이는 구조였는데, 다행히도 그 집이 학교울타리에 연해 있었다.
학생들 하숙집으로 안성맞춤인 거리에~~~

시골 유학생 4~6명이 하숙을 했는데, 하숙비는 쌀로 받았다. 한달치가 3말이었던가?
홍천사는  학생은 하숙비 낼 때가 되면, 그 쌀을 반은 아들이, 나머지 반은 아버지가 지고 오시곤 했다.

그 아버님은 하숙집 주인내외와 큰 절을 나눈 후에, 아주 송구스런 자세로 저녁상을 받곤 했다.

엄니도 다소 긴장해서, 반찬도 한, 두개 더 놓고, 집 안팍 청소에도  신경을 쓰는 눈치였고~~

하숙집에 애 맡긴 아버지도 주인네한테 더 이상 폐끼치지 않으려,  하루 묵고 난 다음날은,

주인내외 일어나기 한참 전, 이른 새벽에 도적같이 길을 밟아 떠나시곤 했다.

그 집 안방과 연한 골방에 쌀독이 있었다.
아마 쌀 2~3말 붓기가 부담스런 정도의 크기였던 것 같은데, 그렇게 하숙비로 받은 쌀이 오면, 엄니는 쌀독에 가득 쌀을 붓고, 손으로 평평하게 고르곤 했다.
(나머지 쌀들은 어디에 두었는지 모르겠다)

어느 날 한 밤중에 잠을 깨니, 골방에 불이 켜있고, 반쯤 열린 문틈으로,  쌀독을 한없이 바라보고 앉아 계신 엄니의 모습이 보였다.

왠일인가? 또 아버지 주사 땜에 우시나?했더니 아니다.
아주 평안하고 행복한 모습이었다. 만족감이 넘치는, 아니존경의 염,  그런 눈길이었다.

내 기억에, 아버님은 평생 제대로 된 직업을 가진 적이 없었다.
그러니 어디 사방공사라도 벌어지면 두 내외가 함께 일하러 가셨고,  간조 때가 되면, 돈 대신 성조기와 태극기가 악수하는 그림이 그려진 밀가루포대를 잔뜩 갖고 오셨다.
(어쩜 리어카도 한 대 없었을꼬~~)

그러다, 학교 옆 낡을 대로 낡은, 방 여섯개짜리 헌집을 사
온 가족이 대들어 수리를 하고, 하숙을 시작했더니, 밀가루 대신 쌀 구경을 하게 된 것이다.
참 감회가  깊었을 것이다.


2.
집사람도 독에 쌀을 부어 놓고 산다.
15Kg 한 포대를 부으면 계량컵 넣어 놓기 딱 좋을 크기에, 양옆에는 귀처럼 생긴 손잡이가 달린 독이다.

한 10년 됐으려나~~~

아침에 쌀 좀 부어 달란다. “우짜~~”, 어째 평소보다 포대가 큰 것 같다.
쌀독에 꼭꼭 눌러 담아도 한 바가지만큼 남는다. 맞다.

 20kg 짜리란다.

우째 이걸 샀냐하니~~이 포장을 세일하더란다, 그래 15kg들이와 얼마 차이가 안 나더라고~~ 4만 얼마라나?

쌀독 윗면을 평평하게 고른다. 촉감이 좋다.

쌀이란게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가? 돈? 맞다. 하숙비로도 쓰였으니~

아니 돈 이상이다.

국민학교 다닐 때, 우리 윗집 창숙이네 엄니, 살림 무섭게 한다고 동네에 소문났었다.
어느 정도냐 하면, 설거지 끝내고 자싯물통에 남은 밥알 버리기 아까워, 물 쪽 따르고 나, 그 밥알 다 챙겨 먹는다했다.

엄니가 그러니 그 딸도 그랬단다. 그래서 울 엄니는 내보고 갸한테 장가 들라고 했다.

국민학교 3학년 때인가~~ 놀러온 그 애한테, 엄니가 물어 보셨다.
"우리집에 시집 올래?", 끄떡끄떡 하더니, 저녁 먹고, 설겆이도 한다.
( 설겆이 끝나면 어쩌나 기다려 봤는데, 우리집에선 밥찌꺼기를 안 먹는 것 같았다.
어디로 시집갔는지 모르지만 아마 잘 살고 있을게다)


3.
내 직장을 감사하는 도의회에 민노당 의원이 한사람 있다.
여자의원인데, 공무원노조하다 짤리고, 민노당 비례대표로 의회에 들어 온 사람이다.

한마디로 투사출신이고, 별명이 “一當百”이다.
10여명 되는 의원들(대부분 한나라당이다) 다 제껴 놓고 , 회기의 반쯤을 이 의원이 혼자 다 채운다.


지난번 회기 때는, 어느 郡에서 FTA 반대 시위대에 소방호스로 물 뿜었다고, 해당 소방서장 물고 늘어지는데,

한마디로 징그러웠다.

소방호수를 잡고 있는 소방관에게 직접 도의원 명함을

건네며, 살수하지 말라고  그렇게 당부했는데,

그 부탁을 안 들어주고 물 뿜어, 데모대 제일 앞에 서서 구호를 외치던 본인이 직접 물벼락을 맞았단다~~

왜 그랬냐는 것이다. 왜 FTA반대하는 노동자, 농민에게 물 쐈냐는 것이다.
그건 그들에게 생존권이 걸린 문제고, 결과적으로 공무원 여러분의 생존과도 연관되는 일인데,

왜 불끌 때 쓰라고 사준 불자동차로 그들에게 물 뿜느냐는 것이다?

하도 입에 거품을 품고 대드니, 공무원들도, 위원장도, 다른 의원들도 아무 말하지 않고 있었다.

속으론 x이고 싶었지만~

한참 지나 그 양반 주장을 되씹어보니, 맞는 것 같았다.
미국사람들이 우리가 “쌀에 부여하는 의미”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어느 한의사, FTA에서 한방분야 개방한다니까, 급하게

반성문 쓰더만~~

가만!
이게 지금 어디까지 온 거냐?
하숙집쌀독 -> 마누라 쌀독-> 창숙이->민노당 의원->FTA

이게 아닌데~~ 술 깨고 나서 다시 읽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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