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戀書 75통 (그녀와의 추억)

50,51-87년

언덕위에 서서 2006. 1. 2. 16:40
 

19870515 (엽서)

여기는 가포!

그때, 이 아가씨를 어떻게 꼬셔야 내 마누라가 될 것인가 두근거리며 맥주에 아나고를 먹던 그 부근이야.

좋구 만, 혹시 내 기억 속에서만 그렇게 아름답게 살아있지 않을까 염려하며 왔는데... 그러고 보면 우린 꽤 멋진 연애를 한 셈이야?

오늘에야 혼자 돌아다닌다는 사실에 익숙해져서 남들이 쳐다봐도(평일 날 간첩 아닌가? 하는 눈으로) 별반 신경 쓰이는 일없고, 늘 상 그래 왔듯이 여행시간 때문에 초조해 할 일도 없고, 만나는 사람들도 서울 사람들보다는 푸근하고 여유가 있으니까 좋고, 한가지 아쉬운 건 당신이 옆에 없다는 건데 주머니엔 동전이 가득하니까 그럭저럭 위안을 삼을 수도 있지 뭐.

하루에 한번씩은 넓은 곳을 바라보며 살아야겠다. 바다나, 하늘이나, 내 가슴 속이나(?)... 세시엔 한려수도(장생포) 가는 배를 탈꺼야. 거기서 텐트를 치고 하루를 보낸 다음, 그리운 마누라를 만나러 가야지.

                                87.5.14  파라솔 밑에서


19870618

京에게

오늘은 왠지 당신과 아주 오랫동안 살아온 느낌이 든다.

아주 오래 전에 이런 일이 있었던 것 같다.

함께 있다가 숙소로 돌아가려 하면 그때부터 심술이 나서 퉁명스러워지고

가슴을 북북 긁어 놓곤 했던 일이.

그 옛날 혹시 있었을지도 모르겠다고  -그 기억이 아스라하니 당신과 결혼한 것도 꽤 오래 전 일인 듯하다고...

이제는 여유가 있어 멀리 있어도 그렇게 조바심 나지도 않고     

물론 보고싶은 마음이야 어쩔 수 없지, 지금처럼 내 주위에 있는 건 아파트 벽들뿐이고, 소리 내는 건 tv와 개구리뿐일 때는-


6월에 접어들면서 본격적으로 더워지는 날씨와 불쾌지수에 익숙해 있지 않은 사람들이 -그들 모두가 내 힘으론 도저히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당위성을 갖고 이 장소에 모여 봉급 타고 일하고 하는 사람들인데-

조그만 일들에도 삐치고 화내고 돌아서서 욕하고 그 욕들은 사람은 당사자 한데 옮기고(조금 보태서) 하면서, 허적허적 죽어가고들 있다. -이 여름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돌아서서 욕하는 사람들 중에선 단연 내가 으뜸이고 잘 삐치는 사람들 중에도 내가 끼어 있다. 사람은 30세가 넘으면 자기 얼굴에 대해 책임을 지라고 했다는데 내 얼굴엔 德이라곤 서려있지 않고 교활함과 신경질, 짜증 따위만 늘어붙어 있다.

멀지 않은 과거에 京의 얼굴이 순진함과 평안함, 태평스러움으로 가득차서 하얗고 동그랗기만 했던 때를 기억해 낼 수 있다.

그 천연덕스러움 때문에 내가 얼마나 더 화나고 괴로웠는지는 잊지 않고

있지만 그보다도  이런 얼굴을 한 나와 함께 살면서 내 얼굴을 닮아버린 京이 아쉽다. ‘악화는 양화를 구축한다’는 경제용어는 京과 나 사이에서도 진리인가 보다. 아니 京에게서  巧를 배웠다면 나는 그만큼 착해졌으리란 망상도 가능하겠지. Einstein의 상대성 원리란 질량은 속도(에너지)로 바뀔 수 있다라는 설이라니까.


내가 군인이 아니라면 어떤 직업을 갖게 될까?

애를 낳는다면 아들일까? 딸일까?

어머니는 오늘 병원에 다녀오셨는지?

나는 내일 아침에는 일찍 일어나서 고등어 구이를 먹을 수 있겠는지?

이렇게 살고 나서도 후회가 없으려는지?

“혼자 살아도 남에게 궁상맞게 보이지는 말아야지”

                        87.6.10  하늘 같은 남편 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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