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1218 (엽서)
o 대학입시 시즌에 즈음하여
퇴근하면 혼자 있어야 하는 아파트지만 그래도 행복하다.
제출일자가 임박한 레포트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이 밤중으로 읽어내야만 할 원서 몇십 페이지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리고 아직은 대학입시를 앞둔 자식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아직은 그 빛이 겨울 명태정도는 되겠지만 하여간 멍한 눈으로 TV를 보고 앉았거나 수필집 정도나 일고 있으면 되는 이즈음의 나는 행복하다.
대학입학시험을 치루는 수험생이나 학부모들을 볼 때마다 그 감정은 더욱 분명해진다. 한 꺼풀 벗기면 이러고 있다간 조만간 처자식 굶기기 십상이라는 불안이 장마철 아니 겨울비 내린 뒤의 앞마당처럼 수선하게 널려 있긴 하지만
12.18
19911230 (엽서)
구세군의 자선냄비를 보며
고사리 손 , 아장아장 걷는 꼬마, 지폐 한장
딸랑딸랑, 구세군 사관, 크리스마스.
TV에 연말 불우이웃 도운 사람들 명단
-그중 적은 돈을 정성스레 가져온 국민학생들-
스산한 연말에 괜스레 마음을 편치 않게 하는 광경들이다.
당장 쌀과 연탄을 사서 나도 어느 곳에건 다녀와야 하지 않을까?
그런 꼬마들의 모습과 TV자막에 한 줄로 이어지는
불우이웃 성금 제출자들의 명단이
Impulse purchase의 강도를 갖고 연말의 어수선한 마음을
몰아대고 있으니.
좋다. 새해엔 좀 베풀면서 살자.
주위의 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하게 만들자.
- 새해엔 이곳저곳 옮겨 살겠다는 나무들의 독백-
91.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