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戀書 75통 (그녀와의 추억)

54-92년

언덕위에 서서 2006. 1. 2. 16:42
 

19920611

육대에 와 있는 소령들이 얼마나 통제하기 쉬운 집단인가를 알 수 있는

시간은 밤 12시경이다.

그 시간에 BOQ 밖에 나가 보면 층층이 환하게 켜져 있는 형광등 불빛이

딱히 무슨 의미인지를 다 설명해 주고 있다.

  ㅇ 저 방에 앉아 있는 친구도 나하고 똑같은 육대 교재를 놓고 똑같은

     개념을 머리 속에 집어넣느라  고민하다 “ 혹 누가 진한 고춧가루

     갖고 오지 않나”

아니면. 

   o 정말 이 나이에 이 짓하고 앉아 있어야 하나? “상” 들것도 아니면서..

그러면서도 공부는 하지요. “에라 담배나 한 대 피우고 하자” 아니면 누구

한테 전화라도 해보자” 답답한 심정에..

내가 그러니 다른 친구들도 다 그럴 것이다. 아니 그렇다고 단정해도 된다.


시험이 끝난 저녁에는 또 그 늙은 학생들 행태를 손바닥 들여다보듯 예측할

수 있다.  이미 밤 12시가 늦은 밤이 아닌 곳에  살고 있고, 새벽 6시에

남의 집에 전화해도 흉이 아니기 때문에 술 취해서 한밤중에 소리를 질러

대도 “ 내는 니 맘 다 안다. 시험 끝났다 아이가?” 지금이 밤 12시니까 아직

초저녁이제...

그렇게 거의 비슷한 시간에 비슷한 내용의 고민을 하고 비슷한 실망을 하고

다시 들러붙게 만드는 주체는 무엇인가? 육군대학이라는 조직인가? 교관이라는 구성원인가?

아니면 이들 모두가 총체적으로 만들어낸 산물인가?


토의식 강의니 자율학습이니 하는 걸 강조하다 보니 훈련되지 않은 Speaker의 뜻이 불분명하고 순서가 잘 정돈되지 않은 허접쓰레기 말들의 홍수 속에

떠밀려가고 있는 느낌을 종종 받게 된다.

아마 내가 일어나서 지껄이고 있는 동안에는 다른 사람들이 그런 심정이 될 것이다. 그래도 학생보다는 교관이 말을 조리 있게 하고 교관 중에도 신임

교관들보다 몇 년 굴러먹은 친구들이 더 조리 있게 말을 잘한다.

그런데 이즈음의 나는 이 말많고 말 잘할 것을 강요하는 동네에서 말이하고 싶지 않아졌다. 그리고 그 정리되지 않은 장황한 변설을 듣는데 지쳐버렸다.

물은 시루밑으로 새어나가도 콩나물은 크는 거니까 내가 말을 하건 안하건, ant 군상들의 이야기를 듣건 안 듣건, 이곳에서 6개월을 보낼 건 분명하니까

그들만큼 지껄일 수 있고 주워들은 것 주워 섬길 수 있게 되겠지.

책상에 앉아 있는 이백 여명 모두가 나처럼 괴롭고 짜증스러울게 틀림없을게다. 아니 동기 유발이라는 면에서 본다면 다소 그 자세에(공부하는 자세다) 차이가 나는 부류가 있기는 하겠지만.


이즈음은 시간이 한 주일 단위로 기억되기 때문에 무척 빨리 지나간다.

한순간 한순간은 지겹고 지루하지만 한 주일은 이렇게 빨리 지나간다는 것 이 어찌 보면 이해되지 않겠지만 그게 이즈음 우리의 느낌인걸 어쩌랴.

-육대 울타리 안에서만 뱅뱅 돌며 반쯤 맛이 가버린 소령무리- 그게 우리다.

잘 자시오, 이곳에서 비교해 보니 당신 남편은 아주 편협하고, 포용력 없는 , 평균에서 좀 빠지는 남자 축에 들고 있소.

변변찮은 머리를 믿고 잘난 체하며 고집 부리던 꼴이 얼마나 웃기는 착각이었는지도 가끔 생각하게 되고 집 샀다고 우쭐대며 마냥 약삭빠르다고 웃던 꼴도 얼마나 한심한 모습이었는지 알게 되었으며 그러다 보니 이런 식, 남이 알면 웃을 수밖에 없는 식으로 살지 않기 위해선 도대체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게 되어 버렸소. 

말하지 말고 나서지 말고 놀지 말고 욕심부리지 말고 살아야 할 것 같은 느낌이요.


공부하기 싫어 빨래하고 손톱깍고, 배 꺼질 때까지 BOQ, APT를 서너 바퀴 돌고, 그래도 하기 싫어 나보다 더 나에게 관대한 사람, Wife에게 편질 쓰는 거요.

한번만 더 보고 자야겠다.

김태욱이 녀석이 엄숙히 아빠의 작태를 보고 있으니까.

                        11일  남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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