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사람이야기

대장님도, 참 딱하십니다.

언덕위에 서서 2009. 10. 20. 09:23

1.

엊저녁, 구조대장이 주선한 회식에 참석했다.

모 여단장과 대대장들을 초청했다고 서장, 과장들 나오라니~~

안 갈 수 없지. 군인들과 관련된 모임이니

 

대충 초청한 사람들 면면에 대해 물어 본다.

 

장군 진급한 지 6개월째 란다. 조금 걱정이 된다.

그 시기면 나라도, 자신이 장군이라는 사실에 취해

책상위에 놓인 빨간 성판을 하루 종일 쳐다보고 있어도 물리지 않을텐데~

(오죽하면, 하늘에서 별을 따다란 소리가 나오겠는가?)

 

주변에 누가 있는지 어떻게 눈에 띄일 것인가?

소방서장 쯤이야?

더구나 그 참모 중에 소령 제대한 선배 과장 하나쯤이야  무슨 의미이겠는가?

 

눈치가 있어, 첫마디에, "아이구 선배님~ 어쩌구" 하고 나오면

서로 치켜주며 잔이 오가겠지만~~~~

아마, 아직은 아닐 것이다~ 짐작하고 마음을 다져 먹는다.

 

양복 상의를 갖춰 입는다.  장군에 대한 예의로~~~

 

 

2.

약속장소에 도착했다. 서장께 들어가서 기다리시라 한다.

밖에서 같이 기다리시겠단다. 그도 맞는 말이다. 장군은 2급, 서장은 4급이니~~

나이야 서장이 7년 위지만, 나이 갖고 공직생활하는 거 아니니~

 

40대 대대장들과 함께 기다린다. 10여분 늦는다.

자리에 앉는다. 명함을 돌리고, 오프닝 멘트에 이어 인사소개

이어 잔이 돌기 시작한다.

 

술이란 게 뭔가?

최단 시간에 자신의 됨됨이 드러내는 가장 쉬운 방법이지.

 

몇 잔 돌고, 자기가 준비해 온 양주 꺼내고

군대얘기 나오고, 결국 축구얘기 나오고,

중간중간 십원짜리 섞여 나오고~~~~~

 

이쯤 되자 내가 민망해졌다.소방관들, 아니 일반인들 모두가 갖고 있는

장군에 대한 이미지가 현실화 되는 순간이다.

 

아니다 싶어, 당신 전임자가 내 동기라고 운을 뗀다.

이해를 못한다. 고등학교 동기로 들은 모양이다.

"제 사관학교 1년 선배죠." 한다.

거기다 대고 뭔 얘기를 더 해~~~?

 

술맛이 쓰다. 술이 얼마나 분위기에 민감한 음식인데 당연하지.

역시나 다. 후~~ 그  자신만만함

이래서 동기생 장군이 초청한 모임에도 안나가는데~~~

 

3.

몇 잔 더 마시고, 술이 오른 김에  한마디 읊는다.

 

내도 군생활 20년 했는데~

군 문화가 참 좋고, 그 울타리내에서는 당연히 그래야 하지만

군도 결국  사회의 한 부분집합이니~~

바깥 사회는 어떤지, 전후좌우 잘 살피고, 유연해지라고~~

 

그 얘기~~

12년 전 내가 처음 여기 왔을 때

무례하고 섬뜩하게 얻어 들은 충고, 아니 협박이었다.

 

향우회에 나가 자기 소개를 하고 앉았는데,

몇 년 아래인 녀석이

"항공대장님, 다음 모임에 나올 땐, 대장이 아닌

향우회원으로 나오세요~"했다.

 

목에 힘주고, 말투에 시건방이 잔뜩 들어가 있는 군바리 출신을

암말 안하고 받아주기가 너무 역겨워 그랬을 것이다.

어제의 나처럼~~

 

또 한 번 있었지.

비서관에게 "왜 지사님은 헬기를 자가용처럼 불러 쓰느냐고?

헬기 사용절차에 명시되어 있는대로 신청서 작성해 보내라"고 따지자 

비서실장이 그랬다.

 

"잘 알겠다, 앞으로 그렇게 하겠다.

그리곤 한마디 덧붙혔다. 최대한 경멸하는 표정으로

 

"대장님도 참 딱하십니다 ~~~~"

 

돌아보니 아직도 딱하다.

여단장은 모든 군인(나를 포함해서)의 로망인  별이라도 달았지.

 

후배가 달고 있는 별이라고, 그 별 인정하려 들지 않는 내 꼴이야 말로

멀어도 한참 멀었지~~~

 

이래서 또 한 번 씁쓰레 웃는다.

'그룹명 > 사람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확실히, 로션은 비싼 거 발라야겠다.  (0) 2009.10.26
이발소아저씨  (0) 2009.10.20
식당에서  (0) 2009.10.20
순대집앞에서  (0) 2009.10.20
[스크랩] 아들 놈  (0) 2009.1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