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사람이야기

금테두르고 살거요

언덕위에 서서 2007. 4. 7. 17:41
1.
고2 여름방학때 였나 보다. 단칸 셋방에 6식구가 살고 있을 때였는데~
엄니와 앞집 들마루에서 더위를 식히고 있었다.
그때는 집에 선풍기도 없었고, 스레이트로 지붕을 얹은 집안에선 도저히
더위를 견뎌낼 수 없어서, 월남갔다 지뢰를 밟아 휠체어를 타고 온 아들 덕에
새로 높다랗게 지은 앞집의 그늘에 의지하여 더위를 견뎌내고 있었다.

온세상이 다 더위에 지쳐있었다.
내는 볼거리인가 뭔가, 턱밑이 부어 올라 온 몸에 열이나고 있었고.

그 더위에, 한 안노인네가 불쑥 나타났다.
열에 들뜬 내 눈에, 그 노인네는 온 몸이 다 주름으로 이루어진 듯했고
더위에 그을려 새카만 얼굴하며 몰골이 남루하였다.

시원한 물 좀 한그릇 마실 수 있겠느냐고~~
당시 동네에서, 손큰 아낙으로 불리던 엄니가
새로 퍼낸 펌프물에, 김치국물과 밥인지, 국수인지를 차려 내왔다.

안노인네가 맛있게 요기를 하시고 나서 인사치레를 하다가
"아드님 손금 좀 봐 드릴까요?"했다.

손금이라니? 이 더위에 당신요기도 해결 못하는 양반이~~?
열에 들뜬 터라 귀찮기도 해, 대충 손을 내밀었다.

"아드님이 나중에 관직에 나가 머리에 금테 두를 손금이네요."
"감사합니다." 엄니가 겸연쩍게 웃으셨다.


2.
군에 오니 소령 이상은 챙에 노란 금테가 들어있는 모자를 썼다.
근데 이 소령되기가 여간 어렵지 않았다. 넘들은 4년만에 진급을 하더만
내는 그 후 5년만에 했나? 그렇다.

그 5년동안 무슨 생각은 안했겠는가?

어느 날 문득, 그 노인네 생각이 났다.
그 노인네가 말한 금테가 뭔고?
대위모자에도 노란 모자띠가 둘러져 있는데, 그걸 말했던 건지
아니면 령관장교 정모챙에 휘감겨 올라간 나무줄기 모양의 금술을 말했던 건지?

그때 내가 너무 건방진 마음으로 선견지명이 있던 이를 못알아보고
홀대해서 이렇게 진급이 안되는건가?

아님, 지 잘난 맛에 건방지게 걷어냈던 처자들의 한이 쌓여 그런건가?
그 노인네, 내한테 평생 잊지못할 빈말을 한 건 아니겠지~~~


그렇게 자기비하를 하며, 벼랑끝으로 밀려 가던 중~
교만스런 내 허물을, 손큰 엄니의 덕이 가려 주셨는가?

어느 해, 느즈막히 금테 두른 모자를 쓰게 됐다.
그걸 끝으로, 더 이상 금테는 늘어나지 않았는데~~
아마 거기까지가 내 손금이었던 것 같다.
(진급될 때마다 금테가 늘어나 장군이 되면, 모자 위로 뻗어 올라온다)


3.
전역하고 이곳에 오니, 또 모자를 주는데 여기도 금테가 들어가 있다.
물론 그 귄위와 대우가 군에서 만큼은 못하지만~~

그 참~~, 그 노인네 말씀이 영 빈말은 아니었나보다.
아니 대단한 양반이었던 모양인데, 그 남루한 모습만 보고
내가 평생 회복하지 못할 교만을 떨었던 모양이다.

그 죄값을 이제까지 두고두고 치루는 모양인 것이~~

일이라고 어쩌다 생기는데, 그때마다 바짝빠짝 속을 태워야
이 금테두른 모자 쓸 자리가 유지되는걸 보면~~~~~

혹여, 이렇게 죄값 다 치루면, 그 금테 좀 더 뻗어 올라 가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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