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산이야기

정말 약 오를 때~

언덕위에 서서 2006. 12. 16. 14:29
4일 토요일 16시

삼악산 정상에서 낙상한 요구조자 인양하여 구급차에 인계하고
기지로 돌아와 시동끄고 막 담배 한대 붙혀무는 데~~~

치악산 사다리 병창에 의식혼미한 요구조자 있어 헬기 요청한단다.
요즘 5시 30분이면 일몰이고, 오후부터 바람 강해지고, 비온다는 일기예보인지라
부지런히 이륙했다.

며칠 전에도 치악산에서 오후 늦게 구조요청이 들어와
구조하고 나니 날이 완전히 어두워 야간비행해서 돌아온 기억을 떠올리며~~

항공기가 홍천을 지날 즈음, 헬기 요청한 원주소방서 상황실에서
전화 연락이 와 "죄송하다. 지상으로 구조하려 했는데 너무 늦어질 것 같아
헬기를 요청했다" 는 말을 하더란다~~

맞지, 지상으로 구조하려면 3시간을 걸릴텐데~~~


요구조자와 전화 통화를 하며 공중에서 위치를 확인해 나가는데~~
영 힘이 든다. 자기가 능선에 있는지, 계곡에 있는지도 제대로 설명을 못하고
본인이 있는 곳으로 헬기가 오도록, 헬기 진행방향을 12시 방향으로 잡고
시계방향으로 설명하라고~~~

예를 들면
"헬기로 부터 3시 방향 능선 위, 빨간 자켓 벗어서 돌리고 있는 사람이 나요"
이런 식으로 설명을 해야, 많은 등반객 중, 헬기 요청한 사람이 누군지 알 것 아니겠나~~

띄엄 띄엄 들리다 말다, 불분명한 발음으로 하는 말이~~
"헬기가 내 왼쪽에 있는데~~ 꼬리만 보이거든요"
"헬기가 조금 전에는 보이더니 이제는 안 보이거든요" 이런 식이다.

10 여분을 능선과 계곡을 돌며 슬슬 열이 올라가는데~~

저 앞 소나무밑에 털썩 주저 앉아 전화기를 붙들고 앉아있는 사람이 눈에 띈다.
가까이 가니 그나마 중얼거리던 통화도 안된다.

맞다. 헬기가 가까이 가니 헬기소음 땜에 전화통화 내용을 못듣는 것이다.
아마 90%는 저 사람이 맞을게다. 구조대원 내려가서 확인해 봐라~~


구조대원이 내려가고, 잠시후 무전이 날아 온다. 요구조자 맞다고~~
인양한다. 구급차 있는 곳으로 이동하는 동안 대원들이 아무 말이 없다.

이때쯤이면, 뒤에서 요구조자에 대해 필요한 응급조치를하며,
조종석에 있는 내게 환자의 상태를 설명해야할 시점인데~~~~

대충 짐작이 간다. 나도 암 말 안 한다.

구급차 있는 곳에 착륙하여 환자를 인계하는 데, 대원들의 얼굴이 벌겄다.

비틀비틀, 좌우에서 부축하여도 자세를 제대로 못잡는, 운동화에 청바지,
몇군데 뜯어져 나간 모자(요새 유행하는)를 쓴, 30대 남자를 보며~~~~
순간 어쩔까 하다가~~~~~~~~~~~~~~~~~~~~~~~~~~~~~~~~~~~~~~~~~~~~~~

조용히 이륙한다.

"술 취했던가? "하니, "네~~"한다.

"그래, 저 정도로 취해서 산꼭대기에 있었으면, 우리가 오길 잘한거야.
조금 더 내리막까지 왔으면, 틀림없이 내리 굴렀을거야.
지상대원들이 올라왔으면 3시간은 곤욕을 치렀을 거고~~"

올라 오는 걸 꾹 참고,
직접 줄타고 내려가 그 사람 인양한 대원들을 위로한다.

내나 그들이나 국민 세금으로 월급받는 사람들이고~~
내가 조금 더 받으니, 그들 속상한거 풀어 주는 것도 내 몫이려니 하고~~~

돌아 오는 길, 날 어두워 지며, 저녁 안개까지 밀려온다.
그래, 이제 10년차다. 의젓해지자. 죽으면 순직이다.

그나저나~~
원주소방서에서 전화한 내용이 크게 안 틀리네~~
"의식이 혼미하고, 지상으로 구조하려니 너무 늦어질 것 같다고"

최초 상황 접수하며, 상황이 어느 정도인지 다 파악하고~

"응급환자 구조"가 아니라 "취객 수송"에 헬기 부르기가 너무 미안해서
그랬을 것이다.


'그룹명 > 산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느 소방관의 기도  (0) 2008.12.30
한 소방관의 죽음~  (0) 2006.12.16
구조 에피소드  (0) 2006.11.04
태풍이 온단다  (0) 2006.09.30
집으로(2006. 7.30)  (0) 2006.08.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