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0930 대위 간호사관학교 훈육장교
†
추석날 오후 다섯시쯤엔 비오는 대구 한 모퉁이에 있었지.
대구와 서울 사이가 서울과 원주 사이보다는 머니까.
밤차로 다닐 만큼의 정성도 이미 없구.
그렇더라도 편진 추석 다음날 받았는걸.
언젠 간 만나지겠지.
만나면 반가울 꺼다. 오랫동안 못 봤으니까.
그 기분 그럴꺼야.
민영이란 여자처럼, 경희란 여자도 김광수란 사람이
만들어낸 여자니까.
내가 아니고 설사 다른 어떤 여자래도
지금과 다름없는 그 경희라는 여자 일 테니까.
그 여자의 이름을 경희라고 지어 놓은 건
아마 한 때의 기분이었겠지.
이젠 그것을 좀 깨버려도 좋지 않을까 싶다.
난, 매양 그래.
많이 용기 있게도 못 살고, 많이 포기하지도 못하고,
많이 취하지도 못하고,
그래도 터무니없이 자신 있게.
본명이 가브리엘이라고 했던 것 같은 데?
29日이 영명 축일이야.
축하해, 자주는 못하겠지만 생각나면 기도할게.
건강하라구.
83.9.23
경희.
19831025 항공대 위탁교육: 간호사 훈육관
성질이 나 비슷하게 못된 교수가 한사람 있는데 그 사람 과목만 2개 시험을 치루었다. 그래서 바야흐로 시험은 끝낸 참이고 그 동안 대충 소홀했던 것들 정리하고 편지를 쓴다. 엄살이 아니라 맨발로 앉아 있으니 발이 시리다. 지난 장마에 곰팡이 자국이 생긴 붉우죽죽한 벽도 보는 이를 주눅 들게 한다. 을씨년스럽고, 회색의 감상을 재촉한다. 벽이 멀어진다. 나는 그대로 앉았는 데 벽이 소리도 없이 물러나 앉는다. 멀다. 꼭 당신 닮았다.
중국인들은 언젠가 모택동 격하 운동을 벌였다던 데 나는 아직 이경희의 초상을 허물지 못하고 있다. 그 뒤로 돌아가 보았다. 그늘진 곳에 이끼가 끼고 금간 곳이 눈에 띄었다. 잔돌도 몇 개 굴러 있다. 세월의 흔적은 보이지만, 정작 세월의 모습은 볼 수가 없다. 그건 원래가 무형인 것이고 이후로도 수백만 걸음을 딛고 지나갈 테지만 누구도 그 모습을 볼 수는 없을 게다. 像은 서있고 길게 그림자를 끌고 있다. 내 발에 묻어있는 그림자는 작고 둥그렇다.
언제 다시 내가 그곳에가 그 모습을 보더라도 퇴락해진 모습이긴 하겠지만, 허물고 갈아치울 수야 없을 게다. 회색인 채로 남의 가슴만 아릿하게 만들 게다.
이런 글을 받으면 얼마쯤은 처 밖아 두었다가 갑자기 꺼내보고 nar-sadic하게 웃는 거 아니냐?
시험 땐 여러 가지를 많이 벼른다. 이것만 없으면 춘천에도 한번가고, 대구도...했는데. 30일날 원주에 장가가는 구경간다(나야 못 가고) 혹시 원주 오면 눈 크게 뜨고 다녀라, 나도 그럴테니.
10. 25 광수 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