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사람이야기

[스크랩] 이등병의 편지~~

언덕위에 서서 2012. 5. 24. 19:59

1.

지난 4.1일

장인어른의 84회 생신을 빙자하여   그 자손들이 대전에 모였다

손자손녀까지 대충 모였는데 14~5명이 된다

치매 온 장인어른은 큰딸도 잘 못알아 보시고

그 보다는 덜하지만 역시 치매를 겪고 있는 장모님도 손녀딸들을 잘 못알아 보신다

(총기가 대단하신 분들인데)

 

4월에 결혼날 받아 놓은 큰처제네 딸과 예비신랑

올해 교생실습 나간 막내처제네 작은 딸

그리고 내일 공군에 입대하는 우리 작은 놈~~ 등  3세대 어린 것들이 화제거리다

 

얘기가 돌고돌아 결국 둘째아들 군입대로 모아진다

공군헌병으로 근무한 덕에 군생활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해 주는 처형네 큰아들~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듣고 있는 내 둘째아들

(저쪽 3세대 테이블에서는 생생한 정보가 교환되고 있다)

 

그래, 그게 더 최신 정보겠구나 엄마,아빠 군생활한 거 합치면 47년이다만

우리 얘기 전부  Out of Date 다

사촌형한테 최신 공군의 트랜드를 듣고 가는게 백배 나을거다

 

다시 1,2세대 테이블~~

성질 팩팩한 막내처제의 입에서 나오는 말

아유~ 요즘 여선생들( 막내 처제 50세 교사다)  모이면 애 군대 보낸 얘기로 날이 저물어~

지겨워 죽겠어! 그 얘기 다 들어 주려면

 

그래! 넌 좋겠다 딸만 둘이니~

 

 

 

2.

그날 저녁~

다들 흩어지고 우리 세식구 미리 예약해둔 유성 군휴양시설로 간다

아니 집사람과 나만 간다

이 놈~ 입대하는게 뭔 큰 벼슬이라고  머리도 깍아야 되겠고, 친구들도 만나야 되겠고

(이 놈이 대전외고를 다녀, 그곳에 고등학교 친구들이 있다)

어쩌고 저쩌고~~

 

결국 가슴이 저릿~한 엄마, 아빠 둘이서  저녁을 먹었다.

 

다음날

전날 늦게 머리 깍고 들어온 놈 깨워 아침 먹여 진주로 출발한다

 

점심 때

뭐 먹고 싶니? ( 이 세상 마지막 보는 사람들 멘트 같다)

그때까지 뒷좌석에서 후드티로 빡빡머리 가리고, 계속 문자질하던 놈~

진주는 장어구이가 유명한데요~ 한다

 

확~~~  쥐어 박으려다가 꾹 참고 한마디 한다

 

태욱아

입대 1주차에 다시 정밀 신체검사해서 불합격하면 귀향이거든

평소에 안 먹던거 먹고 설사라도 하면 치명적이야

평소에 하던대로 하고, 먹던 대로 먹어~~

 

예~~

 

그래놓고 나니  또 가슴이 짠하다

나중에, 우리아빠, 내  입대날 장어구이 먹자고 했더니

안사주셨다는 소리 나오는 거 아닌가하고~

 

그러길래 이누무 자슥아~아빠가 하라는 거 잘하지,

너 휴대폰 정지시킬 서류 제대로 준비했어?

군입대 휴학신청하려면 입영명령서 팩스로 학적과에 보내야 한다는데

그거 보냈어?

너 군에 가있는 동안 니가 키우던 개는 누구보고 돌보라는 거야?

 

군에 간단 핑계로 휴학하고, 밤낮을 바꿔 자빠져 자는 꼴을 이제는 안봐서 다행이다~

오늘 하루만 더 참자, 꾹꾹 누르고 있는 아빠 속을 너는 정말 헤아리질 못하는 구나, 

그러거나 말거나 차 뒷칸에 앉아 계속 문자질이다

 

공군교육사 정문에 도착했다

 

 이제 휴대폰 정지 신청해~ 내가 겨우겨우 짜증을 참으며 한마디 한다

네? 네~

SK로 전화를 한다

네? 입영영장 팩스로 보내야 한다구요?

저 지금 입대하는데~~

 

 

후~~ 결국 입대 후에 지 엄마가 휴대폰 정지시키고, 입대휴학 신청했다.

 

 

3.

입대식~

진주까지 가는 동안 엄마아빠는 자꾸 목이 메여~

(죄송~ 직접 겪어보니 부모 군생활한 거 하고 자식 군에 가는거 하고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

군출신 부모도 부모라 그 안스러움은 똑같다 아니 그 곳의 속성을 아니 더 속이 아리고

마음을 정하지 못하겠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면에서 저보다 먼저 자식 군에 보내고 조언을 구했던 분들께

제 잘난 척했던 부분에 대해 깊히 사과드린다)

할 말을 제대로 못하고 어색했는데

 

정작 입대식은 이벤트 회사가  진행하는 축제같은 분위기다

군악대의 타악기 연주, 의장대 시범, 입영장병 아빠, 엄마, 애인 대표의 격려사

훈련단장의 부모와 입영장병을 안심시키기 위한 코믹한 멘트~~

 

예를 들면

입영장병들! 이곳까지 오면서 아빠가 힘들게 군대생활한 얘기 많이 들었지요?

그거~~ 다 뻥이야, ㅋ~~~

 

(76년 어느날 저녁, 원주역에서 중앙선 기차 타고 밤새 찌는 더위에 시달리며 달려

새벽에 영천역에 도착한 아빠의 입대일 얘기~ 순식간에 뻥 됐다) 

 

고등학생들,  이곳에 와서 병영체험 다 잘 받고 나가거든

자네들보다 어린사람들이~~

그러니 자신있게 안심하고 입대하면 돼~

(부모와 자식 모두에게 먹히는 멘트였다)

 

뒤이어 상병 계급장 단 군악대원이 단상에서 이등병의 편지를 생음악으로 부른다

노래도 잘하지만 그 자리에서 그 노래를 부르면 당사자들(입영장병과 부모, 친구 애인들~)

가슴 축축해지지 않을 사람 있겠나? 다들 먹먹해지지~

 

하여간 그 놈도 아직 2년 채우려면 얼마간 남았겠지만

저기 강원, 충청도 자원이라 쓰여있는 팻말 뒤에 엉거주춤 서 있는 내 아들보단

백배, 천배 세련되고 자신있어 보여 부럽다

 

그렇게 녀석을 입대시키고 돌아오는 차안에서~

아빠 입에서 자꾸 그 멜로디가 흘러 나오는 것이었다

 

집 떠나와 열차 타고~ 훈련소로 향할 때~

 

 

 

 

4.

군악대 시범을 보이는 동안

훈련병과 부모는 스탠드에 높이 앉아 고참들의 시범을 내려다 보고 있었는데

날씬하고 목소리 예쁜 여군 대위의 단호한 안내에 의해

이 놈들, 두꺼운 잠바 입고, 가방 메고 연병장으로 밀려 내려갔다

그 구호가 훈련병 분리 였다

 

훈련병 분리라?

무엇으로부터의 분리인가? 부모, 애인, 친구, 사회?

 

그래~ 그 보다는 이제까지의 게으름, 무절제함, 쓸데없는 걱정, 불안과 패배의식으로 부터의

분리 였으면 좋겠다

 

한 주일이 지나고 3차 정밀검사에 패스했고, 다음 주~ 입고 간 사복이 택배로 도착했다

(우리 어머니, 그 박스보고 엄청 우셨다는데~)

 

3주차가 되자 인터넷으로 편지를 쓰면 소대장들이 출력해 개인에게 전달해 준단다

아울러 생활관 호실별로 똑같은 빡빡머리에 안경잽이들 사진 찍어 홈피에 올려 놨다

수시로 아빠 핸펀으로 자식 잘 있고, 오늘  뭘했고 문자 온다

군대 엄청 좋아졌는데, 그렇게 군생활하는 간부들은 쉽지 않겠다 싶다

 

자식 군대 보내고 또 한가지 철이 든다

 

우리 부모님~~

내 군대갈 때, 이런 심정이셨겠구나

 

그래서 그 긴긴 중앙선 밤차가 하나도 힘들지 않으셨구나~ 자식 만난다는 기쁨 때문에

평소엔 멀미가 심했던 어머님이 밤새 기차를 타고 내려와서도

그렇게 해맑고 생생한 표정으로 자식을 쳐다 보셨던 거구나~

 

아울러 군 생활을 하신 아버님이시라 그 덤덤한 표정이 속내이신 줄 알았는데

어머니 못지않게 속을 훓어 내리고 계셨던 거구나~~~하는

깨닭음, 감사함, 그리움이 온 몸에 사무쳐 왔다.

 

아울러~~

그 눈에 까시같던 작은 놈의 빈둥거림, 무책임함, 개념없음 모두가

76년 입대 전의  내 모습 아니었겠나? 하는 허탈감

 

철들자 망녕이란 이런 경우를 두고 말하는 것이 아닌지~~

 

 

 

 

 

 

 

 

 

 

 

 

 

 

 

 

 

 

 

 

출처 : 설악산을 사랑하는 江原山房
글쓴이 : 비탈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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