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동안 침전되어 있던 생각 찌꺼기들을 긁어 모아 한 바가지 쏟아내야겠다고
벼르고 있었지만~ 첫 문장이 풀리지 않아 애를 먹고 있었다
일상이 무의미하고 세상에 대해 자신감 없어지는 요즈음~
이 나이에 부모님께 기대여 소리내어 울 수도, 엄살 떨 수도 없는 처지임을 깨닫자
내가 살아온 발자국을 새삼스럽게 돌아보게 된다
어쩌다 이렇게 외로운 처지가 되었지? 나만 그런가?
공황장애, 우울증, 불안감, 이명, 체중감소, 당뇨, 가슴 두근거림, 알코홀 금단증상
의욕상실~~ 이런 단어가 이즈음의 나를 설명하는데 꼭 필요한 것들이고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울어야 트일 것 같은 꽉 막힌 가슴에 잠깐 위안이 되는 문구라면
세상사람 치고 피곤하지 않은 사람~ 아무도 없다!!! 는 광고 카피
아니면 오래 전 이외수선생이 방송에서 한 말
(글 쓰느라 집안에 감옥같은 창살을 만들어 놓고 들어 앉아 있었다는 일화를 두고 대단하다는 평에 대해)
어휴~~ 세상사람들이 더 대단하지요 매일 아침 정해진 시간에 챙겨입고 출근하고 하루종일 일하다
땡해야 퇴근하는 거~~ 저는 그거 죽어도 못합니다
그래요? 저는 그 짓 36년째 하고 있는데요~ 대단한 거지요?
그런데도 최근엔 이렇게 자신감 없고 자꾸 혼자라는 생각에 울고 싶어지네요~~~
2.
이런 심정일 때, 더러~~전화라도, 문자라도 보낼 만한 곳이 있고~~
그에 대해 진정으로 가슴 저려하며 덥썩 안아 줄 누군가가 있다면
그 삶은 복받은 삶일게다
그 누군가가 남자던 여자던, 나이 많던 어리던, 군에서 만났던 밖에서 만났던 상관없이~~
잠간씩~ 서로의 필요에 의해 덥썩 안아 줄 듯하다가도
꼭 필요할 때 너무 멀리 있고, 전화할 때 잠들어 있고, 피를 토하듯 보낸 문자를 받을 수 없거나
올 수 없거나, 오기 싫거나, 와서는 안되는 관계~~~
아마 다들 그렇게 살고 있지 않나 싶다
이렇게 처절하게 외로울 때~~
면종복배하는 아래것들의 실상을 보고 경악할 때
우정을 나눌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던 사람이 뒤에서 씹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존경하던 상사가 결국 제 앞가림하기 바빴던 깊이 없는 사람임을 알게 되었을 때
무엇보다 나를 둘러싼 사람들이 나를 그렇게 생각할 때~~~
그 절망감
그럴 땐 술이 좋다 정말 위안이 된다
한가지 단점이 있다면~그 위안이 술에 취해 있는 동안만이라는 것이다
술이 깨면 두 배의 속앓이를 감내해야 한다 두 배로 우울하고 힘들어 진다
결국 술도 세상속 뭇 인간군상들과 유사한 면이 있다
나쁜 술이다~~~
3.
지금부터는 닭살이다~ 드러내 놓고 울지 못하는~~
이 세상 모든 중년남들을 대신한 닭살이다
외로움과 절망의 바닥에서 내 마른 몰골을 다듬지 않고 유일하게 맘 놓고 기댈 곳이 있다면
그런 내게 늘 위안이 되어 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이는 우리의 아내이지 싶다~~~진정 세상 유일의 사람
지난 토요일 저녁
소맥 한잔씩만 할까?라는 말이 목에 걸려 있는데~~
최근들어 체중 줄지, 밤에 땀에 흠뻑 젖지
조종사 신검 문진표에 나와 있는 증세가 점점 심해져
오늘은 참으리라, 마시지 않으리라 다짐에 다짐을 하고 있는데~~
늘 같이 마셔서 금단증상까지 충분히 이해하는 아내
과일이며 차로 대신하더니~ 다음날 아침 하는 말
당신~~ 어제 한잔하고 싶었지? 나도 한잔하고 싶었는데
당신 마시기 시작하면 한 잔으로 끝내지 못할거고, 다음날은 일요일 근무라서
마시자는 소릴 못했어~~
기실 그이도 마시고 싶었단 얘기?
4.
이 글을 쓰면서 나는 또 그 못된 친구를 옆에 두고 있다
월요일 아침 아내가 출근하기 전 만들어둔 찌게를 안주 삼아 2/3쯤 마셨다
그래~ 난 이렇게 휘청거리며 산다
나쁜 친구인 줄 알면서 마신다 내일 아침의 고통도 다 안다 1박2일 마시냐?
그런데도 왜 마시냐구?
이 나이된 남자가 한 잔 마시는게 차라리 보기에 낫지
허이, 허이~~ 아파트가 떠나가도록 소리내어 울어야 할까?
그래도 이 가슴속 응어리가 풀릴지는 모르지만~~
혼자 마시거나, 같이 마시면서 엄살 떨거나, 아니면 그냥 같이 있거나~
술과 아내와 나는 이런 3각 관계다
옛날 어른들
아내를 "안해"로 불렀었다 "집안에 있는 해"~~~
맞다.
우리 3부자~ 아내 바보고, 엄마 바보다
그러니 2세대에 거쳐 결코 배신하지 않을 존재인 아내는, 엄마는~~~
"해"와 똑같은 존재가 맞다
그래서 8월22일을 또다른 태양절로 부를까 궁리중이다
'그룹명 > 사람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어버이날 즈음에~ (0) | 2012.05.24 |
---|---|
[스크랩] 이등병의 편지~~ (0) | 2012.05.24 |
[스크랩] 호명산에서 건진 사진 (0) | 2012.05.24 |
[스크랩] 슬픈 토요일~~ (0) | 2012.02.29 |
[스크랩] 새해 복 많이 많이 받으세요~ (0) | 2012.02.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