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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아내 바보~

언덕위에 서서 2012. 5. 24. 19:59

1.

한동안 침전되어 있던 생각 찌꺼기들을 긁어 모아 한 바가지 쏟아내야겠다고

벼르고 있었지만~ 첫 문장이 풀리지 않아 애를 먹고 있었다

 

일상이 무의미하고 세상에 대해 자신감 없어지는 요즈음~

이 나이에 부모님께 기대여 소리내어 울 수도,  엄살 떨 수도 없는 처지임을 깨닫자

내가 살아온 발자국을 새삼스럽게 돌아보게 된다

어쩌다 이렇게 외로운 처지가 되었지? 나만 그런가?

 

공황장애, 우울증, 불안감, 이명, 체중감소, 당뇨, 가슴 두근거림, 알코홀 금단증상

의욕상실~~ 이런 단어가 이즈음의 나를 설명하는데 꼭 필요한 것들이고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울어야 트일 것 같은  꽉 막힌 가슴에 잠깐 위안이 되는 문구라면

 

세상사람 치고 피곤하지 않은 사람~  아무도 없다!!! 는 광고 카피

 

아니면 오래 전 이외수선생이 방송에서 한 말

(글 쓰느라 집안에 감옥같은 창살을 만들어 놓고 들어 앉아 있었다는 일화를 두고 대단하다는 평에 대해)

 

어휴~~ 세상사람들이 더 대단하지요 매일 아침 정해진 시간에 챙겨입고 출근하고 하루종일 일하다

땡해야 퇴근하는 거~~ 저는 그거 죽어도 못합니다

 

그래요? 저는 그 짓 36년째 하고 있는데요~ 대단한 거지요?

그런데도 최근엔 이렇게 자신감 없고 자꾸 혼자라는 생각에 울고 싶어지네요~~~

 

 

2.

이런 심정일 때, 더러~~전화라도, 문자라도 보낼 만한 곳이 있고~~

그에 대해 진정으로 가슴 저려하며 덥썩 안아 줄 누군가가 있다면

그 삶은 복받은 삶일게다

그 누군가가  남자던 여자던, 나이 많던 어리던, 군에서 만났던 밖에서 만났던 상관없이~~

 

잠간씩~ 서로의 필요에 의해 덥썩 안아 줄 듯하다가도

꼭 필요할 때 너무 멀리 있고, 전화할 때 잠들어 있고, 피를 토하듯 보낸 문자를 받을 수 없거나

올 수 없거나, 오기 싫거나, 와서는 안되는 관계~~~

아마 다들 그렇게 살고 있지 않나 싶다 

 

이렇게 처절하게 외로울 때~~

 

면종복배하는 아래것들의 실상을 보고 경악할 때

우정을 나눌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던 사람이 뒤에서 씹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존경하던 상사가 결국 제 앞가림하기 바빴던 깊이 없는 사람임을 알게 되었을 때

 

무엇보다 나를 둘러싼 사람들이 나를 그렇게 생각할 때~~~

 

그 절망감

 

그럴 땐  술이 좋다 정말 위안이 된다

한가지 단점이 있다면~그 위안이 술에 취해 있는 동안만이라는 것이다

술이 깨면 두 배의 속앓이를 감내해야 한다 두 배로 우울하고 힘들어 진다

결국 술도 세상속 뭇 인간군상들과 유사한 면이 있다

나쁜 술이다~~~

 

 

3.

지금부터는 닭살이다~ 드러내 놓고 울지 못하는~~

이 세상 모든 중년남들을 대신한 닭살이다

 

외로움과 절망의 바닥에서 내 마른 몰골을 다듬지 않고 유일하게 맘 놓고 기댈 곳이 있다면

그런 내게 늘 위안이 되어 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이는 우리의 아내이지 싶다~~~진정 세상 유일의 사람

 

지난 토요일 저녁

소맥 한잔씩만 할까?라는 말이 목에 걸려 있는데~~

 

최근들어 체중 줄지, 밤에 땀에 흠뻑 젖지

조종사 신검 문진표에 나와 있는 증세가 점점 심해져

오늘은 참으리라, 마시지 않으리라 다짐에 다짐을 하고 있는데~~

 

늘 같이 마셔서 금단증상까지 충분히 이해하는 아내

과일이며 차로 대신하더니~ 다음날 아침 하는 말

 

당신~~ 어제 한잔하고 싶었지?  나도 한잔하고 싶었는데

당신 마시기 시작하면 한 잔으로 끝내지 못할거고, 다음날은 일요일 근무라서

마시자는 소릴 못했어~~

 

기실 그이도 마시고 싶었단 얘기?

 

 

4.

이 글을 쓰면서 나는 또 그 못된 친구를 옆에 두고 있다

월요일 아침 아내가 출근하기 전 만들어둔 찌게를 안주 삼아 2/3쯤 마셨다

 

그래~ 난 이렇게 휘청거리며 산다

나쁜 친구인 줄 알면서 마신다 내일 아침의 고통도 다 안다 1박2일 마시냐?

 

그런데도 왜 마시냐구?

이 나이된 남자가 한 잔 마시는게 차라리 보기에 낫지

허이, 허이~~ 아파트가 떠나가도록 소리내어 울어야 할까?

그래도 이 가슴속 응어리가 풀릴지는 모르지만~~

 

혼자 마시거나, 같이 마시면서 엄살 떨거나, 아니면 그냥 같이 있거나~

술과 아내와 나는 이런 3각 관계다

 

옛날 어른들

아내를 "안해"로 불렀었다  "집안에 있는 해"~~~

 

맞다.

우리 3부자~ 아내 바보고, 엄마 바보다 

그러니 2세대에 거쳐 결코 배신하지 않을 존재인 아내는, 엄마는~~~

"해"와 똑같은 존재가 맞다

 

그래서 8월22일을 또다른 태양절로 부를까 궁리중이다

 

 

 

 

 

 

 

 

 

출처 : 설악산을 사랑하는 江原山房
글쓴이 : 비탈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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