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60년대 초반, 초등학교 시절 내가 살던 곳은 원주천 옆이었다.
원주천의 물은 4계절 맑았고 그 동쪽으로는 늘 치악산 시루봉(비로봉)이 투명하게 보였었다.
일주일에 한,두번 인근 부대에서 수십대의 군 트럭들이 몰려와 그 개천에서 세차를 하곤했는데
당시엔 그걸 환경오염이라고 시비 거는 사람도 없었다.
아니 군이 하는 일에 입 한번 뻥긋할 여유도 없는 시절이었다.
그래서 그 동네의 닉네임이 "세차장" 이었다~~~~~
원주는 역대로 군사도시였다. 현재까지~~~
도심에 "군인극장"이 있었는데
그 2층 한 가운데, 붉은 바탕에 은빛 별이 3개, 4개 그려진 좌석이 있었다.
1군 사령관 전용석이다. 늘 비어있었지만~~
군 트럭들이 떼지어 세차하러 몰려 올 때는 차에 부대의 쓰레기를 싣고 나왔다
그 동네 아이들~
국민학교 1~2학년만 되면 그 차량소음이 뭘 의미하는지 다 알았다
군부대 쓰레기 안에는 고물상에 팔 수 있는 고철도 있었기 때문에~
2.
난 그런 환경에서 컸고, 철이 나면서 부모님을 원망하는 경우가 있었다.
온 가족 저녁 굶고, 다음 날 어질어질한 상태로 학교에 가 점심시간을 맞으면
개중에는 하얀 쌀밥 위에 계란 후라이를 싸온 아이가 있는 것이었다.
그러니 어린 나이에 원망이 들기도 했고, 그 상황이 자존심을 키우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재 보다 공부 잘해야지~~
그 무렵 풍편에 들었던 뉴스를 기억한다.
겨울날~~
제일 앞줄에 앉아 있는 국민학교 여자아이가 첫시간부터 꼬박꼬박 졸고 있다
교사가 그 아이를 불러낸다.
크~~ 술 냄새, 몇 대 쥐어 박는데~~
이 작고, 마른 버짐 핀 여자 아이가 하는 말
선생님, 저 술 안 먹었어요, 아침에 엄마가 술찌기미에 당원 타 주셔서 그거 먹었어요~
그거 나도 자주 먹었다
3.
2011년~~
이제 나도 50대 중반의 나이가 되었고 두 아들을 키운다.
그렇게 큰 엄마, 아빠는 두 아들 나이 때(20대 초반이다)
소위, 중위의 어쭙잖은 봉급 알뜰히 모아 부모님께 손 안 벌리고 결혼 준비를 했는데~~
뭐가 잘못된 거지?
이 자슥들~ 아직 캥거루족이니~~~~~
글쎄~~
1) DNA 배합이 잘못돼서 엄마, 아빠보다 좀 못한 놈들이다
- 아빠가 엄마를 꼬시지 말았어야 했다
2) 엄마 아빠가 잘 못 양육했다: 엄청 강하게 키우는 척하면서
( 우리 부부는 애들 1~2살 때까지 넘어지면 절대 일으켜 세워주지 않았다.)
그런데 이 아이들이 줄곳 남의 손에 컸다, 엄마, 아빠 출근하느라~)
3) 세상이 변했다
그 정도의 정성 가지곤 In seoul도 어렵다~~
고추 벌레는 고추의 매운 맛을 모른다는 말에 의지해
내 힘든 4년의 고등학교 시절을 버텼는데~~~
그게 애들 키우는데는~~ 역작용이었나 보다
이렇게 좋은 여건인데 너넨 왜 못해?
엄마, 아빠가 이렇게 살아 왔는데, 너넨 왜 열심히 안 해?
너네 언제까지 캥거루족 할 건데?
실상은 부모 둘 다 군생활한다는 핑계로
애들 과보호 또는 방치해 놓곤~~~~
으~ 흐흐흐~~~~
자서전을 쓴다면, 아니 넌 픽션 소설을 쓴다 해도,
아마 이렇게 시작할 것이다
거기다 헬기 탄 얘긴 좀 섞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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