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춘천 오늘 아침 영하 12도~ 이젠 정말 겨울이 왔구나
비번~ 큰 아들 출근길 태워다 주고 곧바로 금병산으로 향한다
지난 주에 낭패 본 기억이 나 얼른 아이젠을 백에 챙겨 넣는다
9시~~산골나그네길(저수지 우측길)로 들어선다
아무도 없다. 평일 아침 춥고 이른 시간이라 그런가?
호젓한게 좋긴한데, 왠지 조금 외롭다는 느낌이 든다
느릿느릿 걷는다. 바쁠 것 없는 오롯한 나만의 시간 아닌가?
정상에 도착, 전망대 장의자에 컵라면과 김치를 펼쳐 놓는다
이곳도 내 독차지~~
라면 국물에 휴대용 산이슬 한병 마셔? 궁리를 하고 있는데
원창고개쪽에서 우루루 한패가 올라온다. 다들 나이가 지긋하시다
산행짐이나 대화 내용으로 보아 춘천 양반들이고~
2.
사진도 안찍고, 또 우루루 몰려 내려간다
이때쯤 나도 라면 한 컵 끝내고 따라 일어선다
내려 오는 길
나이 지긋한 양반이 먼저 말문을 여신다
정상에서 라면 드시니 맛이 어떻습디까?
아, 예 늘 맛이 좋지요
오늘처럼 날이 찰 땐, 쇠주 한잔 곁들이면 더 좋은데~
그렇지 않아도 소주를 꺼낼까 하던 참에 어른들 오셔서 못꺼냈습니다
허허~~ 뭘 어때서
그때부터 하산길에 이런저런 얘기가 통한다
춘천 개인택시 친목회로 월1회 원행하는데, 오늘은 단골 버스회사가 1년간 이용해준 감사표시로
회원들을 원창고개에 내려주고 산행 후 김유정역에서 픽업해 뒷풀이 식당으로 데려다 준단다
개인택시~~~
군 제대하면서 제일 먼저 꼽는 직업
이분도 체신청 공무원으로 30년 근무하고 명퇴해서 8개월을 쉬다 시작한 일이란다.
이제 7년차이시고~올해 68세
8개월 쉬는 동안~
소파, 리모콘 독차지하고 이리 누웠다, 저리 누웠다를 반복하고 있는데
거실 한쪽에 걸레가 보이더란다
마나님께, 여보! 저 걸레 좀 치워, 알았어요
다음 날 보니 걸레가 그대로 있어
다시 마나님께 걸레 왜 안치웠나?하니 그대로 쏴 붙이더란다
당신은 손이 없어요? 발이 없어요?
ㅋ~~ 나머지는 상상에 맡긴다
그 분 말씀이 월급쟁이 30년~~ 아침 해주면 저녁때까진 자유부인이었는데
8개월을 따신 점심 해대려니 그 스트레스가 보통이었겠는가고~
그 걸레 싸움 뒤에, 이건 아니다 싶어 뭔가 하긴 해야 겠는데~~
아파트 경비, 주유소 주유원, 대형 마트 청소원~
아무리 훓어봐도 사무관 퇴직한 체면이 가로 막아 못하겠더란다
해서 시작한 게 이 일인데~~
이것도 별별 사태를 다 겪어야 하니, 좀체 쉬운 일 아니었더란다
되팔려하니, 최소 5년을 직접 운영해야만 하는 규정이 있어 그러지도 못했고
시간 지나니 일에 익숙해져서 이적 하고 있다고~~
75세 까지만 하고, 그 이후엔 차 팔아 캠핑카 마련해서
두 부부 온 천지 돌아다니며 연금으로 살겠다고~~
3.
그러다 보니 거반 다 내려왔다
전화가 울려 잠시 대화가 끊겼는데, 통화내용인 즉
망년회 하는데, 회비 3만원 갖고 나오란다고~~
3만원이면 3시간 차를 끌고 다녀야 버는 돈이고
길거리에서 천원짜리 줏으며(그렇게 표현하신다)
하루 12시간(am7시~pm7시) 일해야 월 200만원 가져 간다고~
옛날 공직에 있을 땐~~
그래, 오늘 내가 한턱 낼께~~가 가능했지만
퇴직하고 나서는 사람이 이렇게 된다고~~ 허허 웃으신다.
네,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하고 같이 웃지만~
전신에 소름이 돋는다,
이 정도면 공직자 출신으로서 노후 준비를 잘한 축에 드는데
그리고 나는 이럴 자신이 없는데~~하는 생각이 겹쳐지면서
오늘, 부지런히 집 나서길 아주 잘했구나
추운 날, 인생 매운 맛 제대로 설명해 주는 분 만났으니~~
저 앞에 관광버스가 보인다. 그 옆에 내차도 있고~
어르신! 오늘 좋은 말씀 아주 잘 들었습니다
기실 저도 공직 34년차인데~ 정말 귀한 말씀 듣고 갑니다
오래 건강하십시요
머리 깊이 숙여 인사하고 돌아왔다.
'그룹명 > 사람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새해 복 많이 많이 받으세요~ (0) | 2012.02.29 |
---|---|
[스크랩] 오뎅이라고 하기만 해 봐라~ 국물도 없다 (0) | 2012.02.29 |
[스크랩] 아버님 전상서~~ (0) | 2012.02.29 |
[스크랩] 고추벌레~ (0) | 2012.02.29 |
[스크랩] 어떤 부부~~ (0) | 2012.02.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