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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금병산에서 배우다

언덕위에 서서 2012. 2. 29. 16:33

1.

춘천 오늘 아침 영하 12도~ 이젠 정말 겨울이 왔구나

비번~ 큰 아들 출근길 태워다 주고 곧바로 금병산으로 향한다

지난 주에 낭패 본 기억이 나  얼른 아이젠을 백에 챙겨 넣는다

9시~~산골나그네길(저수지 우측길)로 들어선다

 

아무도 없다.  평일 아침 춥고 이른 시간이라 그런가?

호젓한게 좋긴한데, 왠지 조금 외롭다는 느낌이 든다

느릿느릿 걷는다. 바쁠 것 없는 오롯한 나만의 시간 아닌가?

 

정상에 도착, 전망대 장의자에 컵라면과 김치를 펼쳐 놓는다

이곳도 내 독차지~~

라면 국물에 휴대용 산이슬 한병 마셔? 궁리를 하고 있는데

원창고개쪽에서 우루루 한패가 올라온다. 다들 나이가 지긋하시다

산행짐이나 대화 내용으로 보아 춘천 양반들이고~

 

2.

사진도 안찍고, 또 우루루 몰려 내려간다

이때쯤 나도 라면 한 컵 끝내고 따라 일어선다

내려 오는 길

나이 지긋한 양반이 먼저 말문을 여신다

 

정상에서 라면 드시니 맛이 어떻습디까?

아, 예 늘 맛이 좋지요

오늘처럼 날이 찰 땐, 쇠주 한잔 곁들이면 더 좋은데~

그렇지 않아도 소주를 꺼낼까 하던 참에 어른들 오셔서 못꺼냈습니다

허허~~ 뭘 어때서

 

그때부터 하산길에 이런저런 얘기가 통한다

춘천 개인택시 친목회로 월1회 원행하는데, 오늘은 단골 버스회사가 1년간 이용해준 감사표시로

회원들을 원창고개에 내려주고 산행 후 김유정역에서 픽업해 뒷풀이 식당으로 데려다 준단다

 

개인택시~~~

군 제대하면서 제일 먼저 꼽는 직업

이분도 체신청 공무원으로 30년 근무하고 명퇴해서 8개월을 쉬다 시작한 일이란다.

이제 7년차이시고~올해 68세

 

8개월 쉬는 동안~

소파, 리모콘 독차지하고 이리 누웠다, 저리 누웠다를 반복하고 있는데

거실 한쪽에 걸레가 보이더란다

 

마나님께, 여보! 저 걸레 좀 치워, 알았어요

 

다음 날 보니 걸레가 그대로 있어

다시 마나님께 걸레 왜 안치웠나?하니 그대로 쏴 붙이더란다

당신은 손이 없어요? 발이 없어요?

ㅋ~~ 나머지는 상상에 맡긴다

 

그 분 말씀이 월급쟁이 30년~~ 아침 해주면 저녁때까진 자유부인이었는데

8개월을 따신 점심 해대려니 그 스트레스가 보통이었겠는가고~

 

그 걸레 싸움 뒤에, 이건 아니다 싶어  뭔가 하긴 해야 겠는데~~ 

아파트 경비, 주유소 주유원, 대형 마트 청소원~

아무리 훓어봐도 사무관 퇴직한 체면이 가로 막아 못하겠더란다

 

해서 시작한 게 이 일인데~~

이것도 별별 사태를 다 겪어야 하니, 좀체 쉬운 일 아니었더란다

되팔려하니, 최소 5년을 직접 운영해야만 하는 규정이 있어 그러지도 못했고

 

시간 지나니 일에 익숙해져서 이적 하고 있다고~~

75세 까지만 하고, 그 이후엔 차 팔아 캠핑카 마련해서

두 부부 온 천지 돌아다니며 연금으로 살겠다고~~

 

3.

그러다 보니 거반 다 내려왔다

전화가 울려 잠시 대화가 끊겼는데, 통화내용인 즉

망년회 하는데, 회비 3만원 갖고 나오란다고~~

 

3만원이면 3시간 차를 끌고 다녀야 버는 돈이고

길거리에서 천원짜리 줏으며(그렇게 표현하신다)

하루 12시간(am7시~pm7시) 일해야 월 200만원 가져 간다고~

 

옛날 공직에 있을 땐~~

그래, 오늘 내가 한턱 낼께~~가 가능했지만

퇴직하고 나서는 사람이 이렇게 된다고~~ 허허 웃으신다.

 

네,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하고 같이 웃지만~

전신에 소름이 돋는다,

 

이 정도면 공직자 출신으로서 노후 준비를 잘한 축에 드는데

그리고 나는 이럴 자신이 없는데~~하는 생각이 겹쳐지면서

 

오늘, 부지런히 집 나서길 아주 잘했구나

추운 날, 인생 매운 맛 제대로 설명해 주는 분 만났으니~~

 

저 앞에 관광버스가 보인다. 그 옆에 내차도 있고~

 

어르신! 오늘 좋은 말씀 아주 잘 들었습니다

기실 저도 공직 34년차인데~ 정말 귀한 말씀 듣고 갑니다

오래 건강하십시요

머리 깊이 숙여 인사하고 돌아왔다.

 

 

 

 

 

 

 

 

 

 

 

 

 

 

 

 

출처 : 설악산을 사랑하는 江原山房
글쓴이 : 비탈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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