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사람이야기

[스크랩] 예순 즈음에~

언덕위에 서서 2012. 2. 29. 16:30

1.

인간극장인가 하는 TV 프로그램에  여군헬기조종사를  취재한 내용이 나온다

부대 내 기숙사 생활, 남자 이발소에서 머리 자르는 장면, 퇴근 후 살사 댄스카페에 가서 춤추는 모습 등등

 

5부작으로 나누어 그 친구의 모든 것을 낱낱히 촬영해 방송한다

500MD라고~ 4명이 타는 작은 헬기의 조종사인데~

여러 장면 중, 헬기가 이륙하기 직전 조종석에 앉은 이 친구에게

지금 느낌이 어떠냐?고 마이크를 갖다대고 묻는 장면이 기억에 오래 남는다  

 

답변~

이게 마지막 이륙이면 어떻게 하나?

이번에도 무사히 기지로 돌아올 수 있을까?

10년 전 자기에게 조종술을 가르쳐 준 교관께서 하신 말씀인데

매일 속옷 깨끗이 입고 출동해라

혹 사고 나서 너 죽으면, 네 시신 수습하는 사람에게 누가 안되도록~~

 

2.

올해 30 이라니 내보다 20여년 후의 사람이요

그 교관이라야 또 그 비슷한 연배일 것이다

 

그 얘기,

속옷 깨끗이 입고,

어디가서 외상하지 말고,

산봉우리 홀랑홀랑 넘어다니지 말라던 당부

 

1980년도 내가 신임조종사로 임명되던 날 들었던 얘기다 (그 친구 80년생이더군) 

 

그 얘기를 하는 동안 나랑 일면식도 없는  그 친구가 괜히 가깝게 느껴졌다. 

조종사로 산다는 것이, 나이 젊고 늙고를 떠나 다 이렇게 조마조마하고 힘든 길이로구나 하는 생각

그러니, 전생에 큰 죄진 사람들이 운명적으로 택하게 되는 직업인지도 모르지~

 

내도 매일아침 그 비슷한 생각을 하며 이것저것 챙긴다

 

휴대폰 배터리를 늘 새것으로 교체한다

날씨가 견딜만 해도 동내의를 챙겨 입는다

주머니에 라이타와 주머니칼을 넣고 다닌다

신발끈은 느슨하게 풀어 놓는다

가족에게 당부할 것이 있으면 미리 말해 놓는다

 

혹 엉뚱한 곳에 추락할 경우,   내 위치를 추적하려면 휴대폰 배터리라도 많이 남아 있어야 하고 

추락해 저체온증 안걸리려면 동내의고, 라이타고 다 필요할테고

물에 추락하면 얼른 신발 벗어야 살테니~~

 

3.

전에 해군들과 함께 교육을 받은 적이 있는데

이 사람들, 생선 먹을 때 한쪽 면을 다 먹고나서도 절대 생선을 뒤집지 않는다

중간의 뼈를 발라내고 계속 그 상태로 먹는다

생선 뒤집어 먹으면 배 뒤집힌다고~~

 

내게도 그 비슷한 타부가 있는데 

아침에  출근준비하다가 뭔가를 떨어뜨리면 되게 기분이 안좋다

치솔이건, 빗이건, 컵이건, 숫갈이건~~~

헬기 떨어질까 봐~~

 

그렇게 30여년을 조종사로 살아왔다

조종이라는 것이 나이들면 더 자신감이 생기고 쉬워지는 일이 아니라

점점 더 어렵고 두려워지는 일이라서 오래 전부터  갈등을 느껴오던 터이나

어쩌랴? 이 나이에,

그래도 이 세상에서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인데, 아니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 되어 버렸는데 

 

그렇게 또 하루를 버틴다.

 

그 친구 이름이 뭐라더라?

여전사 김효성 대위라던가? 하는 제목이었던 것 같은데~

내 나이 되도록 조종사로 살려나?

그렇더라도 나이들어 나처럼 처연한 심정이 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 쉰 즈음에~로 했다가 가만 생각해보니 예순쪽이 더 가까워졌네요~

    그래 예순 즈음에~  로 바꿨습니다***

 

 

 

  

 

 

 

 

 

 

 

 

 

 

 

 

 

출처 : 설악산을 사랑하는 江原山房
글쓴이 : 비탈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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