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사람이야기

[스크랩] 선생님 5천원 있으세요?

언덕위에 서서 2011. 11. 4. 09:51

1.

비번, 오늘도 9시 개장시간에 맞춰 마을도서관으로 향한다.

은퇴하고 먹고 살 방도가 뭐가 있나?  궁리하다 지난 8월부터 시작한 공부다.

아침 일찍 몇명이 나와 있다. 서로 인사도 안하지만 크지 않은 방에 같이 있으니

이리저리 부디껴 대충 눈에 익은 얼굴들이다.

 

소방서 직원도 하나, 둘 눈에 띈다. 승진시험 공부하는 친구들이다. 

한 직원은, 슬그머니 커피잔을 옆에 놓고 간다.

고맙지~~

 

책 몇장 넘기다 보니 배가 출출해진다.  가을비도 내리는데 모처럼 장칼국수 먹으러 갈까?

가만 저 직원 같이 가자 할까? 장칼국수 좋아하려나? 나랑 같이 먹고 싶을까?

먹고 나선 나중에 자기가 한 번 사야 된다고 계속 스트레스 받는 건 아닐까?

이런저런 생각을 굴리는 사이 이 친구 훌쩍 일어나 나간다. ㅋ~~ 혼자 가서 먹자.

 

2.

장칼국수집~ 여전히 붐빈다.

"혼자 오셨어요? 이쪽 방안으로 앉으세요"

 

40대 여자 둘이 조근조근 이야기하며 뜨거운 장칼국수를 격조있게 먹고 있다.

인근 초등학교 교사들인 모양이다.

 

아이들,  선생들에 관한 얘기가 적당히 교양있게 오간다.

이 집엔 처음인 모양으로,  국수를 한 젓갈 집어 올리곤

"무청을 약간 말려서 넣었나 보네~~~"한다. (그게 시레기라는 거요~)

 

그러는 사이 내 국수도 나왔다.

평일날, 남자 혼자 밥 먹는 모습이 어떻게 비치려나

조금 어색한 생각이 들었지만~~

구수한 장냄새에 다진 고추 맛이 더해지니 더 바랄게 없다.

 

옆자리 식사가 끝나간다.

"양이 많아 다 못 먹을 줄 알았는데 먹다보니 다 먹었네~~"

옆자리 남자한테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다.( 국수그릇이 꽤 크다)

 

"선생님, 오천원 있어요? 카드로 계산해야 할 것 같아서~"

"만원짜린데~~~"

"그래요? 주세요, 그럼~~~"

 

그리곤 일어나 나간다.

뭔 얘기지?

 

아~~~~ 그 양반들 세련됐네.

 

 

3.

도서관으로 돌아 온다.

내 뒷자리~~ 아까 그 직원은 아직 안 돌아왔다.

5시경~짐을 싸서 도서관을 나서는데, 그제서야 그 직원이 나타난다. 

 

"지금 가십니까? 피곤해서 점심 먹고 한숨 자고 오는 중입니다"

 

그렇구나, 어제 야간근무하고 바로 도서관으로 온 모양이니~

그런 남의 속도 모르고  같이 국수 먹으러 가자 했으면 어쩔 뻔 했나?

안 가겠다 소리도 못했을 거고~~~

 

미필적 고의라 하던가? 혼자 가길 잘했네

서로에게 부담주지 않는 선에서 가볍게 인사말 정도만 하면서 사는거~~

깊은 속내 안 들어내고.

 

가만~~~ 나도 세련돼 가는 모양이다?

 

 

 

 

 

 

 

 

 

 

 

 

 

 

출처 : 설악산을 사랑하는 江原山房
글쓴이 : 비탈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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