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사람이야기

택시비

언덕위에 서서 2008. 8. 14. 18:41

1.
후반기에 접어들며 올해도 승진심사며 자리 이동이 시작되었다.
공무원들 용어로" 인사났다~"고 한다.

"인사났다"란 표현은 거의 모든 경우에 통하는, 소위 만사 형통 핑계가 된다.

우선 업무가 늦어지는 이유가 될 수 있다.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자릴 옮기니 당분간 결재 채널이 어수선하여
전에 했던 일 반복해야 하고 그러다 보니 업무처리가 늦어질 수 밖에 없다는 의미가 된다.

또, 회식을 의미한다.
그 사람이 그 사람이지만~~가는 사람과 한바탕, 그 다음 오는 사람과 또 한 바탕~~

그러다보니 집에 늦게 들어가는 아주 합법적인 이유가 될 수도 있다.



2.

어제, 바람 몰아치는 봉정암에서 심장부정맥 환자 억지로 이송하고
오늘, 월요일 한나절 회의하고 돌아와 겨우 쉬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또 회식이란다.
엊그제 두 번 다 했는데 왠 회식?

전입자가 한 방 쏜단다. 쥑일~~~~
쏠라면 지 혼자 쏘지 이 더위에 쉬는 놈 왜 불러내나?
느들은 토, 일요일 편히 쉬었잖냐~?

주섬주섬 시간에 맞춰 나선다.
술김에 음주운전할까봐 택시를 탄다.

회식 장소에 도착해 "동전은 냅두세요~" 하니 거스름돈으로 4천원을 준다.


3.
뻔한 회식 분위기~
별로 즐겁지 않아도 큰소리로 웃고 박수치며 연기하다~
이러구러 지리한 회식이 끝났다.

회식도 회식 나름이지~
엊그제 같이 계장하던 인사들이 진급해 나가 서장 마치고
직속 상관인 과장으로 다시 들어와 벌어진 회식이니

그 동안 주야장창 한 자리에 눌러 있던 사람에게
도대체 그 회식이 어떻게 즐겁고 흥겨울 수가 있겠는가말이다.
지들이나 좋지.

그 지겨운 자리에서 술취해, 홧김에 2차 쏘는 예전의 망발을 피하기 위해
지갑에서 2만원만 꺼내 들고 나왔다.
대충 춘천시내에서 왕복 택시비로 충분하다.

다행이 별로 취하지 않은 채, 1차로 끝내고 돌아오는 택시를 탔다.
아파트에 도착해 "얼마예요?"하니 3천 몇백원이란다.

"동전 그냥 두세요~"하고 4천원을 준다.
"감사합니다"하는 소리가 유난히 크다.

지폐가 한 장 남았다. 만원짜리~~


4.
같은 거린데 왜 나갈때와 들어올 때 2천원이나 차이가 나는 걸까?
그러면서 문득 한장 남은 지폐를 꺼내보니

아차차~~~ 이게 천원짜리다.
4천원이 아니라 1만3천원을 준 것이다.

우띠~~~ 저만치 가는 택시를 우렁찬 목소리로 불러 세운다.
"잠깐만요~~~"

"만원짜리 끼워서 드렸어요" 하니~~
" 아~ 그렇네요" 하며 순순히 내민다.
만원짜리 받고 남아 있던 천원 한 장을 내민다.

순간 ~~
택시기사는 요금을 받을 때 이미 만원짜리가 섞여 있는 걸 알았었다는게
겸연쩍어하는 목소리에서 확연하게 느껴진다.


5.
그 만원을 받아 들고 아파트 입구로 걸어 오면서~~
다행이다~ 싶던 마음이 순식간에 씁쓸해졌다.

"너~ 평생 그릇이 고것밖에 안되지?
2차 가서는 분위기 띄우느라 4~5만원씩 팁 주면서,

더운 낮동안 운전하는 사람에게는
거스름 돈 몇백원 안 받는 걸로 자기 위안하는 인간.

오늘 그 돈 만원~~~
그냥 줬어도 아주 싸게 먹힌 하루 아니었어?

회식자리에서 못난 자존심 좀 상한 것 외엔
별 손해 본 것 없잖아?"

그렇고도 만원 땜에 "우띠~~~ 했었지?
그이, 시치미도 제대로 뗄 줄 모르는 사람이던데~~~~
하는 생각에.

선택한 댓글 삭제
^^* 넘 진솔한이야기.. 08.07.09 01:01

ㅎㅎㅎ 항상 삶이 뭍어 나는 이야기...... 감사합니다. 08.07.10 12:44

잘 읽고 갑니다 사람사는향기~ 08.07.10 20:36

'그룹명 > 사람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댓글~  (0) 2008.08.20
글쓰기의 천형을 벗고  (0) 2008.08.14
효리가 용감해  (0) 2008.08.14
비 오시는 덕에  (0) 2008.08.14
호각소리  (0) 2008.05.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