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엊그제 소설가 이청준씨의 부고가 떳다.
그 소식을 전하는 기사의 제목중에 "天刑인 글쓰기의 굴레를 벗고~"라는 표현이
눈에 들어 온다.
얼마 전 박경리 선생의 작고 때도 "天刑"이라는 표현이 동원됐었고,
화천 사는 소설가 이외수씨의 일상을 들어 봐도
창작의 고통은 가히 범부의 상식을 넘어서는 것인 같다.
그런 어려운 삶을 사는 이들이 어쩌자고 표정은 또 그렇게 해맑은지?
책 표지에 나온 공지영씨의 표정 좀 보라.
그 얼굴 어디에 치열하게 살아온 개인의 삶과 "천형"의 흔적이 있는지?
2.
20여년 만에 중학교 은사님을 뵈러갔다.
나랑 마눌이 중학교 동기동창이니 우리 둘 모두의 은사이시다.
2년 전 연세대 교수직을 은퇴했지만, 아직 꽤 치열한 문학 비평가시다.
정현기선생이라고~~
그 분이 박경리, 김지하씨와 인연이 깊어
김지하시인 숨겨줬다 들켜, 해직교수로 7년여를 궁핍하게 보냈고
세월이 흘러 복직되고,
어찌어찌 박경리 선생의 육필 원고를 관리하게 되었다고.
그 동안 살아온 얘기를 하시는 모습이 얼마나 천진하고, 자유로운지
이제 겨우 50 넘은 우리 부부가 오히려 더 나이든 느낌이었다.
그 분도 평생을 글쓰는 일로 살아온 분이신데~~
3.
다시보니 창작을 위해 천형을 수행한다는 이들의 표정이
평생 성당이나 절에서 수도하는 이들의 맑고 투명한 표정과 닮아 있다.
어찌하여 그런가?
그런 내적 고통이 있어야 비로소 그 같은 표정이 부상으로 주어지는 것인가?
그런가?
그런데
고행이라할 수는 없지만, 긴긴 시간 고민하며, 고통스럽게 사는 내게는
왜 이렇게 찌든 표정만 남는건가?
천형을, 아니면 천직을 수행하는 마음자세 때문인가?
자기 일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얼마나 마음이 우러나서 하는지에 따라
그렇게 달라지는 건가?
아님, 나이들어 얼굴표정 편안해지는 것도 다 유전인가?
엊그제 소설가 이청준씨의 부고가 떳다.
그 소식을 전하는 기사의 제목중에 "天刑인 글쓰기의 굴레를 벗고~"라는 표현이
눈에 들어 온다.
얼마 전 박경리 선생의 작고 때도 "天刑"이라는 표현이 동원됐었고,
화천 사는 소설가 이외수씨의 일상을 들어 봐도
창작의 고통은 가히 범부의 상식을 넘어서는 것인 같다.
그런 어려운 삶을 사는 이들이 어쩌자고 표정은 또 그렇게 해맑은지?
책 표지에 나온 공지영씨의 표정 좀 보라.
그 얼굴 어디에 치열하게 살아온 개인의 삶과 "천형"의 흔적이 있는지?
2.
20여년 만에 중학교 은사님을 뵈러갔다.
나랑 마눌이 중학교 동기동창이니 우리 둘 모두의 은사이시다.
2년 전 연세대 교수직을 은퇴했지만, 아직 꽤 치열한 문학 비평가시다.
정현기선생이라고~~
그 분이 박경리, 김지하씨와 인연이 깊어
김지하시인 숨겨줬다 들켜, 해직교수로 7년여를 궁핍하게 보냈고
세월이 흘러 복직되고,
어찌어찌 박경리 선생의 육필 원고를 관리하게 되었다고.
그 동안 살아온 얘기를 하시는 모습이 얼마나 천진하고, 자유로운지
이제 겨우 50 넘은 우리 부부가 오히려 더 나이든 느낌이었다.
그 분도 평생을 글쓰는 일로 살아온 분이신데~~
3.
다시보니 창작을 위해 천형을 수행한다는 이들의 표정이
평생 성당이나 절에서 수도하는 이들의 맑고 투명한 표정과 닮아 있다.
어찌하여 그런가?
그런 내적 고통이 있어야 비로소 그 같은 표정이 부상으로 주어지는 것인가?
그런가?
그런데
고행이라할 수는 없지만, 긴긴 시간 고민하며, 고통스럽게 사는 내게는
왜 이렇게 찌든 표정만 남는건가?
천형을, 아니면 천직을 수행하는 마음자세 때문인가?
자기 일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얼마나 마음이 우러나서 하는지에 따라
그렇게 달라지는 건가?
아님, 나이들어 얼굴표정 편안해지는 것도 다 유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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