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사람이야기

피를 말리는 날들

언덕위에 서서 2007. 2. 25. 09:13
올해로 공직생활 31년 차인데
여즉 사람 잘못 만나니 힘들고 피곤하다.
한번 박아버리고 때려 치울까?하는 마음만 치밀어 올라
사람 만나는 일이고, 글 쓰는 일이고 다 싫고 귀찮다.

그런 어수선한 상황에, 설악산에서 올해 2번째 사망사고 소식이 들린다.

지난 31일, 오세암에서 봉정암으로 넘어가던 등반객 2명이 실종됐고
그 중 1명이 어제(2.4) 봉정암 사리탑 800미터 아래에서
주검으로 발견됐다.

시신 수습과 나머지 1명의 실종자를 찻기 위해 공원관리공단 직원,
소방관, 특공연대 병사등 20여명이 동원됐으나,
허벅지까지 빠지는 눈 때문에, 러셀을 치고 나가는 수색대가 금방
지치는 상황이다.
새로운 수색대를 헬기로 현장 인근에 투입해 달라는 요청이 왔다.

금일 아침,
백담사 주차장에서 인원과 장비를 싣고 현장을 향해 이륙했는데
내설악 계곡의 돌풍이 만만치가 않다.
1차 목적지가 봉정암에서 소청가는 등산로 중간 지점 공터.

고도를 취하니 돌풍이 더욱 심해져, 비행을 계속할 수가 없다.
1차 목적지를 포기하고, 2차 목적지인 가야동 계곡 4거리
(봉정암, 오세암간 등산로와 수렴동, 희운각을 잇는 등산로의 교차로)
쪽으로 항로를 잡았다.

그 계곡으로도 못 들어 가겠다. 바람이 미친 것처럼 항공기를 휘젔는다.

할 수 없이 수렴동 대피소옆, 계곡물이 언 공터에 내려주마 했더니
아무 의미가 없단다.
수색팀을 실은 채로 출발지인 백담사 주차장으로 되돌아왔다.

칼바람이 불어대는 주차장에서 다시 이런저런 회의를 거쳐,
구조대는 지상으로 이동하기로 하고, 항공기는 철수했다.

철수하는 길도 만만치가 않다. 요동을 치는 항공기 안에서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도 단단히 지었는가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다 이런 직업을 택해서
이 험한 설악산 계곡을 비행해야 하는지,
게다가 이런 위험한 상황에는 전혀 관심도 없는
지독한 인간을 상관으로 두게 됐는지~~~

아마 전생의 업보 일게다.

요즘 매일 피가 마르는 심정이다.

'그룹명 > 사람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개와 고양이  (0) 2007.02.25
천년을 살 것처럼  (0) 2007.02.25
불안이 병이 되어  (0) 2007.02.25
신춘문예  (0) 2007.02.25
신년휘호  (0) 2007.0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