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戀書 75통 (그녀와의 추억)

35,36-84년

언덕위에 서서 2006. 1. 2. 16:28
 

19840719

Seraphina!

아직 京이라는 이름보다는 생소하고 京의 이미지를 또렷하게 떠올려 주는 이름은 아니지만, 그 이름으로 불러야 겠다. 천주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또 그 이름이 더 주께 가까이 있는 듯 느껴지니까...

혼자 살 짐 정리하는 데도 이렇게 오래 걸리고 힘겹다니...

이제야 내 공간이 마련되고, 편지 쓸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편질 쓰자하니까 와칵 밀려오는 ‘가슴쓰림’.

이건 아마 ‘슬픔’ 일게다.

곁에 있어 줘야하는 데... 그래야 그 얼굴을 보고, 그 손을 꼭 잡을 수 있고, 마주 보며 웃을 수 있는 데... 곁에 없구나.


하숙...?

그래 그게 더 나았다. 최소한 아침,저녁 식사 때는 누가 보지 않는 곳에서 식사할 수 있었으니까... 두오 서넛, 아직 스물 다섯이 못된 중위나 준위들 틈에 끼너, 플라스틱 쟁반에 차려진 밥을 받아들면 괜한 자격지심 때문에 겸연스러워 진다.  

‘세탁비누 어딧냐?’

일부러 목청을 높여 소릴 치지만 ‘어이구 저 궁상 맞은 꼴...’하는 거 같아

괜히 조심스런 심정이 되곤 한다.

투정이지...

하지만 京이 노처녀들 틈에서 살기 때문에 이런 경우를 전혀 이상하게 느끼지 못 하듯이, 나는 다 장가간 녀석들 틈에서 살기 때문에 혼자있다라는 게 게면적고 ‘ 내 꼴이 한심해 보인다.’


어떠신가? 우리 아가씬?

아무리 뭐라 말한다해도 될 일이 아니다.

주말에 올라가서 한번 보구와야 겠다.

부모님께도 인사를 올려야겠다.

보고 싶다. 곁에 있어 만져볼 수 있으면 좋겠다.

                19일


19840729

Seraphina!

사람이 타성에 젖어든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알겠다.

당장, 이제 매주 시험보는거 끝났으니까 하고 싶은 거 마음대로 멋진 계획 세워 실시하겠노라 작심했는 데-

이제 이 주일이 끝나 가는 지금 내 표정이나 일상의 생활이 처음 부대에 들어 가면서 “ 참 답답하게 매일을 보내고 있구나 !” 하고 내가 욕했던 이곳 사람들과 꼭 같아 졌다는 걸 의식하면서,

- 너! 너도 별 수 없는 놈이야. Narcism에서 깨어나 !- 중얼 거리고, 며칠 전부터 벼르던 京에게의 편지를 시작하다.


오늘은 참 끈끈한 날이다.

바람한점 없고 -책상위에 일주일 째 놓여 있는 야채 크래카에서  부터 점점이 벽과 천장을 향해 이어져 있는 건  2mm 정도의 개미들이다. 벽에 붙어 있는 京의 사진 좌측으로 계속 벽을 오르다 벽과 천장이 맞 닫는 지점으로 사라진다. 이 놈들은 사람보다 높은 데 살고 있구나. 5층 천장에 사니 이 아파트에 사는 어떤 사람보다도‘높은 곳’에서 사는 구나.

참 부지런하게 오가는 데, 비스켓은 하나도 줄지 않았다. 그리고 책상에서 벽의 끝까지는 1.5m 는 될 텐데, 그러면 자기 몸길이의 750배의 길이다.

만약 먹이를 이 대장정의 중간에 놓아준다 해도 이들은 최초 먹이를 발견한 위치까지 와서야 먹이가 없다는 걸 알고 되돌아간다는 것이다.

타성이지, 습관이고,

나 비슷하구나.

바둥거려 봤자 비스켓 하나 옮겨 놓지 못하는 꼴이.


지금 28일 01: 05 인데

편지 쓰다 옆방에 있는 녀석한테 가서 술 마시다 왔거든 -예의 그 옥상을 거쳐서- 그런데 이 녀석들 잠도 안자고 계속하는 거야.

내가 이 녀석들 보다 낫다는 건 하나, 자기가 하는 일이 얼마나 회의를 느낄 수 있는 일이란 걸 알 수 있다는 -한번쯤 회의 할 수 있다는 - 점일 게야

慶이 무슨 얘길 하다 “그래서 죽고 싶어...”라고 말했는지 그 앞 절이 생각이 안 난다. 내가 “ 그럼 난 어떡하란 말이야...?” 라고 되묻던 기억은 나지만 ...


이래서야...?

이렇게 떨어져 있다는 게 절망적으로 매사에 반영되어서야 사람이 어떻게 살겠나 ? 오늘 오후 늦게 우리 아가씨를 만나고, 꼭 껴안아야지, 한 주일 동안 생각나지 않을 만큼 쳐다보고, 입 맞추고, 돌아와야지.

그리고 이런 내 꼴이 아직 유치하고 귀찮게 느껴지지 않을 때에

내 아내로 맞아 와야지. -이건 “새해엔 이곳 저곳 옮겨 다니며 살겠다 ”라고 결심하는 나무(木)들의 독백일 수도 있겠지만 -크리스마스에 즈음해 


Seraphina!

행복하게 되리라는 건, 어쩜 많이 싸워야 될지도 모른다는 건, 이런 류의 근심은... 과연 우리는 얼마나 함께 이 혹성 위에 있을 수 있겠는가? 라고 생각할 때 너무 작아 보일 게다.

함께 있어야겠다.

괴로운 Seraphina! - 조금 신파조이긴 하지만,

하여간 모든 근심과 사고의 근원이 이즈음의 내겐  京이다.


신뢰라는 건 사랑의 감정의 기초가 되는 것이며

잘 믿는 사람은 통상 멍청한 면이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연애하는 사람은 대개 바보이게 마련인데

그래서 이런 엉뚱한 고집만 부리게 된다.

                      7.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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