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사람이야기

12월~

언덕위에 서서 2011. 3. 1. 12:42

1.

97년 경~~

이곳에 취업하려 기웃거리고 있던 중

"그거~ 대기 많은 직업 아닌가?

그리 좋은 직업이 아닐쎄~" 하는 조언을 들은 적이 있다.

 

좋고 나쁘고를 떠나, 당장 동기생들이 진급해서 대대장 나오는 판이니 

가능한 빨리 군을 떠나야 한다는 강박에 그 조언이 귀에 들어 오지 않았다.

 

그리고 어찌어찌 취업이 되고, 제법 긴 세월이 흘렀다.

이곳에 정착하여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생기자

문득, 그때 그 조언이 떠오르는 것이었다.

 

오늘이 올 겨울 들어 가장 춥단다.

그 소릴 또 얼마나 더 들어야 이 겨울이 다 지나갈까? 하며

집을 나선다.

 

일요일 아침 조용한 아파트촌을 빠져 나올 때마다

왜 자꾸 씁쓸해 지는지 모르겠다.

벌 서러 가는 것도 아니요. 휴일에 근무하면 몇 푼 더 얹어 주기도하는데~~

 

2.

최근 2~3년 사이,  항공대 직원들 중 3명이

암, 심장질환 등으로 수술을 받고 휴직했다.

 

다들 평소에 건강관리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고

항공대가 다른 소방관서에 비해 상대적으로 육체적 부담이 적은 곳인데~

왜 이렇게 발병 비율이 높은 것인가?

 

우연일 수도 있겠지만~

상대적으로 "대기시간"이 긴 것이 그 한 이유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대기라는 것은 하는 일 없이 맘 편히 쉰다는 의미가 아니라

긴장하고 있는 상태다. 신호가 떨어질 때까지~~

그러다  불쑥 스피커에서 출동 지령이 떨어지면

후다닥 온 몸의 긴장을 총 동원해 튀어 나가야 하는~

 

심신이 편치 않은 상태

그것이 바로 대기인 것이다. 

 

그런 상태로 10여년 살면서 나이 드니

신체적으로 이상이 온 것 아닌가 싶다.

 

엊그제 전국 소방항공대를  대상으로 한 세미나가 있었다.

모처럼 만나 이런저런 얘기 들어보니

어쩌면 다들 똑 같이 힘들고 불만에 차 있는지~~

 

대기 많은 곳,  그리 좋은 직장 아니란   옛날의 그 조언이  

새삼 떠 오르는 것이다.

 

 

3.

이렇게 어수선한 맘으로 12월이 흐른다.

 

엊그제 함박눈이 내리던 저녁

철없는 젊은 아빠가 아파트 마당에서 애들이 탄 썰매를 끌어주고 있었다.

 

좋지~~

조금 더 가니, 경비아저씨가 눈을 밀고 있다.

계단에는 보온 덮개를 깔아 놔 미끄러지지 않게 해 놨고

 

저 양반 어쩔꼬~~

한 밤 내내 눈을 밀어야 할텐데.

저 양반들 보수가 100만원 조금 넘는다던데~~

 

정신이 번쩍난다.

 

막 벌어 먹고 살기엔

학벌과 경력이 거치적 거린다지 않는가?

난 저 일도 못 할 텐데, 무슨 철없는 생각으로

여길 벗어날 궁리만 하는가 말이다.

 

보기에 따라선 꽤 그럴싸해 보이는 곳인데~~

 

그런가? 그렇게 믿자.

웃다보니 즐거워 졌다지 않은가~~

 

12월~~~~

조지윈스턴의 December를 들어 볼까?

기분이 좀 맑아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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