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사람이야기

육군출신이오?

언덕위에 서서 2010. 10. 2. 14:23

1.

다시 항공대장으로 돌아왔다.

20개월 만이다. 더러는 왜 다시 그 자리로 가느냐?

또 더러는 잘됐다. 거기가 당신자리가 맞다는 둥 인사가 어수선하다.  

하여간 돌아왔다.

그리하여 비행 준비절차의 하나로 신체검사를 하러 서울로 간다.

2년여만의 서울 나들이인가 보다.

 

춘천에서 6시 버스를 탄다. 1번 탑승구다.

왈십리에서 지하철을 한번 갈아 타고 서대문에 있는 삼성병원으로 간다.

 

건강검진센타로 들어선다.

1년여 만인데 내부가 완전히 바뀌었다. 검사자의 동선을 최소화하도록~

게다가 고객 맞춤형으로 안내를 한다.

가령 조종사 신검은 심전도에서 시간이 가장 많이 걸리는데,

아예 문진표 작성부터 이곳에서 시작한다. 

 

검사 종류에 따라 동선이 달라지는 것이다.

또 철저히 선착순 서비스다. 먼저 온 사람이 더 기다리는 경우가 거의 없다.

 어떻게 친절교육을 시키는 건지, 황제대우 받는다는 느낌이 든다.

무섭다. 이게 삼성이구나~~

 

 

2.

대충 한바퀴를 돌고 다시 심전도실로 돌아왔다.

머리가 허연 노인네가 안쪽에서 신문을 읽고 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 어디 근무해요?"  툭~ 한마디 던진다. 

" 아, 예~ 강원도 근무합니다."

" 육군 출신이요?"

" 예~~"

 

초면인데, 착 내려다 보며 말 던지는 폼새와

신검서류만 보고 내가 조종사인걸 알아챈 걸 보니  자기도 조종사 인가 보다.

흰머리칼과 야윈 어깨를 보니 나보다 한참 고참이고 아마도 육군 출신인가 싶다.

 

어떡하나? 평생 처음보는 얼굴이지만, 거기다 제대한지 10여년이 됐지만

선배인듯 하니 깍듯이 대할 밖에~~~~

 

" 그러면 헬기 타시겠네?"

 

어렵쇼? 뭔가 이상하다?

 

뒤이어 자기 소개를 한다.

올해 64세인데 공군에서 전투기 20년 타고 대한항공에 가서

다시 20년 조종사 생활하다 퇴직했고

이번에 외국 항공사 가려고 신검하는 중이라고~~

 

뭐야?  육군 출신 아니잖아?

그러니, 그의 입에서 나온 "육군 출신, 헬기~~" 이 두 단어는

내가 상상한 것과 전혀 반대되는 의미를 품고 있었던 것이다.

 

거기다  얼굴 표정과 몸에서 배어 나오는 그 시건방끼~

순식간에 이제까지 그 공간에서 느끼고 있던 신선함이 확~~ 가신다. 

 

가는 말이 거칠어야 오는 말이 곱다고, 내 톤이 달라진다.

당신 그 정도란 말이지? 그래서 그 바쁜 신검장에서 신문 읽고 있다 이거지?

 

" 거긴 몇 살까지요? "

" 아~ 공무원이니 정년이 60세지요" 말끝이 올라간다.

 

" 헬기 탈려면 고생이 많겠수?"

" 그런거 같더군요. 대한항공에 있는  동기생 얘길 들어보니

   민항이 훨 낫더군요. "

" 동기생이 누군데요? "

" 김 아무갭니다" " 아 그래요, 잘 알지요~~"

 

갑자기 변한 내 태도에 표정과 자세가 재빨리 변한다.

여보,  나도 여기 신검하러 오면 꽤 고참이요, 이젠~~~

누가 기름쟁이 아니랄까봐, 이 좁아 빠진 방에서 알량한 거드름 피우는거요?

속마음과는 달리(동기생 이름 까발렸으니~)

얼른 명함을 꺼내 내민다.

 

아, 예, 나는 명함이 준비가 안돼서~~~ 

네, 존함이나 알려 주시지요. 나중에 동기생한테 안부나 전하게~

 

그러고 헤어졌다.

 

3.

동서울 터미널에서 춘천행 버스를 탄다. 31번 탑승구다.

이렇게 분명하구나. 춘천과 서울의 상대적인 위상차가~~

1점 대 31점일까?  아니면 서울이 춘천의 31배 일까?

 

버스에 올라타니 에어컨이 시원하다.

그제사 서울에 들어서면서 부터 주눅들어 있던 어깨가 펴지는 듯하다.

그리고 가만히 아까의 장면을 되돌려 보니

 

그 사람 모습이 꼭 내 모습이다.

손톱, 발톱 다빠진 주제에, 정작 자신만이 그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고

허세 부리고, 그게 통하면 한 껏 부풀어 오르는~

 

그러다 상대의 조그만  지적에도 상처 받고 꼬리 팍 내리는~~

꼭~~ 내 모습이다.

 

오시범 조교에게서 더 많이 배우는 법이다.

반어적 경구가 더 오래 가는 법이다. 잊지 말자.

 

난 그 양반 스팩의 반에 반도 안되면서~~

이제까지 건방은 더 크게 떨어댔잖은가? 

반성하며 내려왔다.

후~~~ 찌는 날씨 때문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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