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사람이야기

[스크랩] 입술~

언덕위에 서서 2009. 10. 8. 09:51

1.

내가 기억할 수 있는 가장 어린 시절부터

한 여름 며칠을 빼 놓고는 일년 내내 입술이  텃었다.

그 불편함을 줄이기 위해 수시로 입술에 침을 바르다 보면

결국은 뻘겋게 갈라지고 피도 나~~

그렇잖아도 버짐 먹고 시커먼 얼굴에, 궁기까지 끼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러다 유한 양행의 "안티프라민"이  효험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 뒤론 일년 내내 안티프라민을 몸에 지니고 살게 됐다.

살 만 했다.  궁기도 좀 덜해지는 것 같고~~

 

2.

중학교 다닐 즈음에~~

양키 시장에서 미제 Chap Stick 이라는 걸 발견했다.

Made in USA가 선명한 까만 색 몸통에 하얀 뚜껑. 

여자용 루즈처럼 생긴~~~

 

이건 더 좋았다. 안티프라민처럼 자극적인 냄새도 없고

양철 위아래가 늘어 붙어,  뚜껑 여느라 애를 쓸 일도 없는~~

 

가격은 제법 비쌌지만, 입술이 갈라지는 고통에 비하면

결코 가격을 논할 수 없는 필수품인지라,

게다가 항상 살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돈 있는대로, 세개건, 네개건 사서 쟁여 놓았던 것이다.

 

그 습관은, 지금도 남아 있어

약국에 갈 때마다 두서너개씩 사서는

차에도 하나, 사무실에도 하나, 집에는 서너 개(안 뜯은 거 포함해서~) 씩 놓고 산다.

 

3.

입술 갈라지게 하는 음식이 몇 종류 있었던 것 같은데~~

기름진 음식이나, 짜장면을 먹고 나서, 입술에 묻은 짜장을 쪽쪽 빨고 난 뒤라거나

생밤을 먹고 나면 특히  그랬다.

아마 생밤의 탄닌 성분이 약한 피부를 자극해서 그랬던 것 같다.

 

낮에, 가출한 정신지체인을 찾으러  밤나무 과수원을 헤매고 다니다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알밤을 몇 개 주워 왔다.

(수색 게을리 한 건 절대 아니다. 50명이 출동해, 가출한 지 5일 된 사람을 1시간만에 찾아냈으니까~)

 

사무실에 돌아와 흘린 땀을 닦아내고

주머니칼을 펴 생밤을 깍아 입에 넣는다. 

 

그리고 입술을 부벼본다.~~괜찮다. 안 갈라진다.

물론 갈라져도 순식간에 대처할 수단이 항상 책상 위에 놓여 있긴 하지만~~

 

4.

세상이 좋와지니

사람은 점점 더 참을성이 없어진다는 느낌이다.

그 때, 그 괴롭고 불편했던 입술 틈~~~

 

지금 Chap Stick을 바르지 말고 그 불편을 겪으라 하면,

아마 좌불안석, 동분서주하며 정작 할 일에는 집중을 못 할 것이다.

 

밤을 까다,

문득 옛일이 생각 나 몇 자 두드린다.

들에 나가 보니,  벌써 가을이 풍성하던데~~~~

 

이 가을,

뭔가 멋진 일이 생겼으면 좋겠다. Chap Stick 같은~~~

 

 

 

 

 

 

 

 

 

 

 

 

 

 

 

 

출처 : 입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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