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내가 기억할 수 있는 가장 어린 시절부터
한 여름 며칠을 빼 놓고는 일년 내내 입술이 텃었다.
그 불편함을 줄이기 위해 수시로 입술에 침을 바르다 보면
결국은 뻘겋게 갈라지고 피도 나~~
그렇잖아도 버짐 먹고 시커먼 얼굴에, 궁기까지 끼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러다 유한 양행의 "안티프라민"이 효험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 뒤론 일년 내내 안티프라민을 몸에 지니고 살게 됐다.
살 만 했다. 궁기도 좀 덜해지는 것 같고~~
2.
중학교 다닐 즈음에~~
양키 시장에서 미제 Chap Stick 이라는 걸 발견했다.
Made in USA가 선명한 까만 색 몸통에 하얀 뚜껑.
여자용 루즈처럼 생긴~~~
이건 더 좋았다. 안티프라민처럼 자극적인 냄새도 없고
양철 위아래가 늘어 붙어, 뚜껑 여느라 애를 쓸 일도 없는~~
가격은 제법 비쌌지만, 입술이 갈라지는 고통에 비하면
결코 가격을 논할 수 없는 필수품인지라,
게다가 항상 살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돈 있는대로, 세개건, 네개건 사서 쟁여 놓았던 것이다.
그 습관은, 지금도 남아 있어
약국에 갈 때마다 두서너개씩 사서는
차에도 하나, 사무실에도 하나, 집에는 서너 개(안 뜯은 거 포함해서~) 씩 놓고 산다.
3.
입술 갈라지게 하는 음식이 몇 종류 있었던 것 같은데~~
기름진 음식이나, 짜장면을 먹고 나서, 입술에 묻은 짜장을 쪽쪽 빨고 난 뒤라거나
생밤을 먹고 나면 특히 그랬다.
아마 생밤의 탄닌 성분이 약한 피부를 자극해서 그랬던 것 같다.
낮에, 가출한 정신지체인을 찾으러 밤나무 과수원을 헤매고 다니다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알밤을 몇 개 주워 왔다.
(수색 게을리 한 건 절대 아니다. 50명이 출동해, 가출한 지 5일 된 사람을 1시간만에 찾아냈으니까~)
사무실에 돌아와 흘린 땀을 닦아내고
주머니칼을 펴 생밤을 깍아 입에 넣는다.
그리고 입술을 부벼본다.~~괜찮다. 안 갈라진다.
물론 갈라져도 순식간에 대처할 수단이 항상 책상 위에 놓여 있긴 하지만~~
4.
세상이 좋와지니
사람은 점점 더 참을성이 없어진다는 느낌이다.
그 때, 그 괴롭고 불편했던 입술 틈~~~
지금 Chap Stick을 바르지 말고 그 불편을 겪으라 하면,
아마 좌불안석, 동분서주하며 정작 할 일에는 집중을 못 할 것이다.
밤을 까다,
문득 옛일이 생각 나 몇 자 두드린다.
들에 나가 보니, 벌써 가을이 풍성하던데~~~~
이 가을,
뭔가 멋진 일이 생겼으면 좋겠다. Chap Stick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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