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사람이야기

망우리

언덕위에 서서 2006. 2. 22. 20:04

정월 대보름날엔
초저녁에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오곡밥을 얻어다 먹었다.
(한식 때였나?)

한편에선 통조림 깡통에 구멍을 뚫고
군용 전화선을 묶어 망우리를 만들고
나무토막을 깡통 길이에 맞게 잘라
땔감으로 쓸 준비를 해 놓았다.

이윽고 달이 떠오르기 시작하면
마을 앞 논바닥에서 망우리를 돌리기 시작한다.

윗마을, 아랫마을에서도 비슷한 시간에 망우리가 돌아가기 시작한다.

논두렁 곳곳에 잔설이 남아있고, 논 바닥은 꽁꽁언 상태라
잠시만 가만히 서 있어도 손발이 시리고, 뺨이 알알해 오지만
그런 것쯤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동네형들이 망우리에 참나무숯을 넣고 돌리기 시작하면
"따다따, 따닥"하는 소리와 함께
온 사방으로 불꽃이 튀며 장관을 연출한다.
폭죽놀이가 댈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한 동안 나무를 채워가며 망우리를 돌리다 보면
어느 새, 정월 대보름달이 머리위에 높이 솟아 있었다.



망우리 돌리다 팔이 아파올 즈음이면,
그때까지 앙앙대며 따라다니던
동생들에게도 망우리 차례가 온다.

큰 인심쓰는 척 건네주는 망우리 손잡이를 받아들며
얼마나 황송하고 행복했던가?

준비한 땔감이 바닥날 때쯤이면
형들이 망우리를 다시 빼앗아 갔다.

마지막 순서.

망우리를 있는 힘껏 돌리다
달이 떠 있는 하늘을 향해 줄이 놓아버린다.

" 삐-융~" 길게 길게 불꽃 꼬리를 날리며
망우리가 하늘 높이 날아가다 저 만치 가서 떨어진다~~~~

" 이-야~~~ "

그렇게 또 한해가 시작된 것이었다.


지난 해
네 식구가 강변을 걷다보니
건너편에서 몇몇이 망우리를 돌린다.

내년엔 우리도 망우리 돌려보자 마음을 먹었었는데



아무래도 안되겠다.

혼자 근무하는 소방관이 화재신고 받고
기를 쓰고 출동해 불을 껐는데도,
잘했다 소리하는 사람 아무도 없다.

오히려 집안에 애들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것이
마치 그 사람의 잘못인 듯 보도하고 있다.

어린 생명 셋을 잃었으니, 그럴만도 하지만,
맹세코 그건 그 소방관의 잘못이 아니다.

(불 낸 사람이 제일 큰 죄인이고, 혼자 근무하게한 국가시스템도 죄인이다.
또 그 부모도 책임이 없다할 수 없을 것이다.)


매사에 합리적이고,
불편, 불합리한 것은 반드시 고쳐야 직성이 풀리는 미국 사람들~~

소방차 한대에 반드시 4명이 타고 출동한다.
운전자 1명, 지휘및 통신담당 1명, 현장 투입 요원 2명이다.

화재 현장 상황도 불자동차에 설치된 컴퓨터 화면과 프린터를 통해
상세한 사항이 수시로 전파된다. 시간도 자동으로 기록되고~

혼자서 운전하며, 다급해진 상황에서
직직거리며 무전기에서 흘러 나오는 목소리를
어떻게 다 이해하며 출동하겠는가?

불법 주차된 차들 때문에 길은 막히고,
차가 설 때마다, 현장도착시간이 늦었다고 따져 댈
상관들과 매스컴이 떠올라 진저리가 쳐 졌을텐데~~





우리 애들이 망우리 돌리면
그 불빛보고 소방관들 가슴 섬뜩섬뜩할 것이라~

애들한테 미안하지만
올해도,
망우리 돌리는 사람 있으면, 구경만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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