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사람이야기

[스크랩] 칼~

언덕위에 서서 2014. 1. 6. 17:57

 

 

1.

주말 부부로 살다보니 직접 끼니를 챙겨야 할 때가 많다

비번 날 집에 남아 탱탱 놀다가, 늦게 들어오는 아이나 집사람을 위해서도~

괴롭지만 혼자서 챙겨 먹기 위해서도 해야 할 일이다

 

그 와중에 기왕이면 뭔가  반찬을 만들어 봐야겠다는 욕심이 생겼다

          며칠 궁리하다 오이무침을 선택했다

요즈음 오이값이 싸기도 하고, 칼 쓰는  훈련에도 좋은 듯해서~  

집사람이 오이무침 만드는 과정을 유심히 관찰해 그 절차를 익혔다

 

오이를 씻어서  밑둥의 쓴 부분은 껍질을 벗기고, 엇비슷하게 썬 다음

소금에 30분 정도 저려둔다

그리곤 물에 헹구고 우러난 즙을 꼭 짜낸다 

냉장고와 싱크대를 뒤져  고추가루, 고추장, 다진 마늘, 파, 참기름, 소금, 식초, 깨소금을

찾아내고 선반에서 일회용 비닐장갑을 꺼내 한쪽 손에 낀다

쓰다 보니  보울이 참  편하고 좋은 조리기구인 줄 알겠다

 

오이와 양념을 섞어서 적당한 색감이 나오도록 주무르면 그럴싸한 오이무침이 된다

뚜껑 있는 반찬그릇 2개에 채우면 양이 딱 맞는다

그때 쯤 밥솥에서 김이 솟고 구수한 밥냄새가 난다

금방 지은 밥을 양념이 묻어있는 보울에 퍼서 비비면 그 맛이 제법이다

 

 

 

2.

그리고 나면 뒷설거지다

그릇 몇개, 오이껍질 벗기는 칼, 수저, 그리고 조리용 칼

 

칼~~

무릇 모든 조리기구가 각각의 용도와 생김새가 있지만

설거지를 할 때 제일 신경이 쓰이는 조리기구가 칼이다

까딱 실수하면 손 베이니까~

제일 먼저 씻어서 한 쪽으로 치워둔다

 

 

3.

생도시절, 

동기들로부터 "김광수생도는 칼이야 칼!"하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

아니, 평생 칼 같다는 얘길 들으며 살아온 것 같다

호, 불호가 분명해서  본인에게 돌아올 유, 불리를 따지지 않고 원칙대로 한다는 의미로

그런 얘기를 했던 것 같은데~

그런 내 행동이, 말하는 사람에게 유리하면 좋다는 의미로 

반대로 섭섭하거나 불리하면 그런 감정을 에둘러 표현했던 것 같다

 

이제 이 만큼 살고나서 되돌아보니,  그게 결코  좋은 짓이 아니었다 

좋고 싫은 사람으로 편갈리는 결정을 굳이 내가 나서서 매듭지을 필요 없고

세상사 알고도 모른 채 넘어 가기도 해야하는 것인데~ 

그걸 깨닫지 못하고 칼이란 소릴 들으며 평생 살아온 것이다

 

그러니 주변 사람들이 나로 인해 얼마나 조심스럽고 불편했을까?

설거지 할 때, 제일 먼저 챙겨야 하는 칼 대하듯 해야 됐을 테니

 

차라리 매끈하고 넓찍한 조리용 보울 역할을 했더라면~

저린 오이를 품고, 온갖 양념  범벅 되었다가, 그 오이 다 내어 주고나서

흰 쌀밥에 부비어  다시 말간 피부로 돌아오는

보울처럼 살 걸~

 

설거지하기도  맘 편한  보울처럼 살 걸~~

 

 

 

 

 

                                   

                                        

 

 

 

 

  

 

 

 

 

 

 

 

 

 

 

 

 

 

 


 

 

 

출처 : 설악산을 사랑하는 江原山房
글쓴이 : 비탈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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