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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인생 이모작~

언덕위에 서서 2012. 11. 17. 19:24

1.

어제(10. 21 일요일)은 날씨가 좋아 대한국민 10%는 산으로 갔고

그 중  10%는 강원도로 온 듯한 느낌이다

 

오늘은 몇 번이나 출동하나 보자~ 출근 전부터 마음을 단단히 먹고

집사람이 챙겨주는 미숫가루를 두 컵 마시고 씩씩하게 집을 나선다

이번 주 버티고 다음 주면 10월도 지나간다 끝이 있겠지~

 

10월 들어 주말이면 헬기 2대가 교대로 설악산, 치악산, 오대산, 삼악산, 팔봉산~

강원도내 높은 산은 다 찾아 헤매며 사람을  구조해 내리는데~

 

다치고 지친 사람은 고마울 것이고, 

꾀병부린 사람은 헬기 타고 오면서 조금쯤 미안할 것이지만

 

구조하는 사람은 오늘도 최고의 집중력을 발휘하여 

허공 중에 헬기를 정지시키느라 애를 쓴다 

일하다 사고사 당하지 않으려~

 

그 와중에 헬기구조 장면 가까이서 볼 행운을 잡은 사람들은

스마트폰에 열심히 그 장면을 담고 있다  길게 줄을 이어서서~

 

이럴 땐 문득 동물의 왕국에서 본 누(Gnu) 떼가 생각난다

강을 건너다 악어에 물리고, 다리가 부러져 죽어가는 녀석들은 죽는 거고

악착같이, 아니면 운이 좋은 녀석들은 또 지들끼리 모여

강 건너 넓은 들판을 가로 질러 유쾌한 삶을 이어 가는 모습~

 

2.

어제는 팔봉산, 치악산에서 연속해서 2번

 DOA(Dead On Arrival: 현장 도착시 이미 사망) 환자를 이송했다

 이곳에서 15년 생활하며 처음있는 일이다

그 전 날도 삼악산에서 구조한 1명이 사망했는데~

 

날씨 좋아 삼삼오오 떼지어 산에 온 사람들은 즐겁지만

이 좋은 날 청천벽력 같은 사고소식을 들어야  하는 가족들은 또 어쩌란 말이냐?

 

그냥 남의 일일 뿐인가?

죽음도 남의 일이면 무심하다,  죽음도 일상이기 때문이다

 

낙상하여 안면부에 유혈이 낭자한 환자를 향해

무심한 표정으로 카메라를 들이대는 모습에서 그런 느낌을 받았다

 

3.

월요일 아침~가을비 치곤 제법 빗줄기가 굵다 

사무실에 들어서서 하루를 시작하려는데,

암으로 고생하다 공로연수에 들어간 전직 소방서장의 부고가 뜬다

 

가슴속 깊은 곳에서 부터  싸~한 느낌이 치솟는다

부고라는 게 늘 편한 맘으로 받아드리기 어려운 소식이지만

개인적으로 살갑게 지내던 분이라 그 느낌이 더 진하다

 

인생이라는 게 결국 저런 건데~~

무에 그리 아깝고 욕심나는 일 많아, 기를 쓰고 아둥바둥하는가?

삶과 죽음의 간격은 도대체 얼마나 되는가?

 

산란한 마음에 일이 손에 잡히질 않는다

그래도 어쩌랴? 늘 하듯 컴퓨터 켜고, 결재하고, 잔소리하고

그렇게 하루가 저문다

 

4.

매일 오후 6시경이면

리어카를 매단 오토바이가 사무실앞을 가로질러 간다 비가 오던 눈이 오던~

리어카에는 청색 드럼통이 서너 개 실려있다

병사들 식사시간 지난 후 잔반 수거하러 가는 양반이다

가축사료로~ 아마 개를 키우시겠지

 

워낙 긴 세월(15년) 마주치다 보니 서로에게 일상이 됐지만

어느 날~

언제나 사람 좋은 미소를 띠고 가볍게 눈인사를 던지는 그 양반 표정을 바라 보다가

 

혹~~

저런게 행복 아닐까?

저 표정은 만족스런 삶을 살고 있다는 자신감 아닐까?

하는 쌩뚱맞은 느낌이 온 몸을 휘감는 것이다.

 

그래~~ 만약 저 만족스런 표정이 행복과 자신감의 표현이라면

그건 아마도~ 

진즉 퇴직이라는 힘든 문을 열고 나와

그 연배들이 뒤 늦게 이모작이라는 화두를 쥐고 방황하는 시기에,

하기 싫어질 때까지 내 맘껏 할 수 있는~

그리고 이 세상 누구보다 본인이 제일 잘할 수 있는 

평생의 일꺼리를 찾았기 때문일게다

 

그래서~~

언제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이기 때문일게다

(순전히 내 상상이다~)

 

오늘 왜 이러나?

어제, 오늘 세상 떠난 이들 때문인가?

아님, 내  고질병 가을앓이 때문인가~~~~~~~~~~?

 

 

 

 

 

 

 

 

 

 

 

 

 

 

 

 

 

출처 : 설악산을 사랑하는 江原山房
글쓴이 : 비탈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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