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초등학교부터 사관학교까지 동기인 친구가 있다.
그 시절 거의 매일 함께 몰려 다니던 세 친구중에
아버님이 군생활을 하시던 그 친구(K)네가 기중 여유가 있었다.
원주에 가면 소설'치악산'의 무대가 되었던 '홍판서댁'이 있(었)다.
옛날기와로 덮은 높게 솟은 지붕, 돌담에 둘러쌓인 안채
솟을대문으로 연결된 사랑채와 집 뒷쪽의 고목이 된 밤나무들~~
중3 때~
우리 여섯식구는 그 사랑채에 살았고
밭 건너 흙벽돌로 새로 지은 기역자집이 K네다.
네 식구(부친은 늘 멀리 부대에 계시고, 엄마, 아들 둘, 딸 하나)가
방 3개를 쓰니, 당시로선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해서 시험이다 뭐다 핑계로
늘 그네집에 가서 먹고,자고 했다.
그러다 중학생된 둘째딸 공부를 봐주게 됐는데~
그 무렵부터 모친이 밤늦게 머리를 맞대고 있는 공부방에
더 자주 과일 접시를 들고 오셨던 것 같다.
중3인 선생에 대한 예의였는지, 외동딸 때문이었는지는 모르지만~
('72년 무렵이다)
2.
지난주말~
벼르던 원주행을 감행했다.
주말이면 병원에 계신 두분 때문에 원주에 내려 온다는 그 친구도 보고
근 20년 가까이 인사도 못 드린 두 분도 뵈올까하고~
부친은 의식이 흐려
'광수 왔어요, 광수~'하고 귓전에 대고 설명을 해도
눈빛에 변화가 없으시다.
위층의 모친은 거동이 불편해 그렇지, 의식도 목소리도 힘이 있어 다행이었지만~
뵙지 못하고 지낸 20년의 세월이 그 집에도 고스란히
제 흔적을 남겨 놓고 간 것이다.
그렇게 어른들 뵙고 초로의 두 사내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이쁘장한 중년 여인네가 들어선다.
'어서 와~'하는 친구의 목소리에
'아, 얘가 걔인 모양이구나~~'
'나 알겠어?'하니 고개를 가로 젓는다.
막내가 ' 누나~ 광수형!"
그제사
' 광수형! 어머! 왜 이렇게 말랐어?'
' 말라? 다행이다. 늙었다 소리 안해서~~~'
3.
그러고 보니 키가 나보다 머리 하나는 큰 아들놈이 옆에 있는데
내가 말을 이렇게 해선 안되겠다 싶다.
대충 인사를 마치고 병원을 나오려 엘리베이터 앞으로 간다.
' 오빠, 고마워~ 건강하시고' 하며 이녀석이 내 등을 두드린다.
옆에 있던 k가 기겁을 한다. 누구 등을 두드리냐고
' 뭐 어때, 같이 늙어 가는데~'
' 너~ 옛날 선생님 등을?'
' 아 ,그랬나?'
'ㅋㅋ~~ 선생이라?'
그러고 보니, 그 꼴같은 선생한테 꼬박꼬박 존대를 했던 것 같은데~~?
' 근데 쟤 올해 몇이야? '
' 어디보자, 58년생이니~~~~'
' 그래? 같이 늙어 가는거 맞네 ㅎㅎㅎ'
하도 오랫만에 만나니 제 눈엔 폭삭 늙은 내가 안 보이고
내 눈엔~
양갈래 머리 땋고 팔랑팔랑 튀던 그 애 모습만 보이니
쉰 넘은 넘의 아낙네한테 그렇게 사정없이 말을 내리 깔았지
등이 아니라 뺨 맞을 짓을 해 놓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