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사람이야기

착각~

언덕위에 서서 2011. 6. 26. 13:20

1.

초등학교부터 사관학교까지 동기인  친구가 있다.

그 시절 거의 매일 함께 몰려 다니던 세 친구중에

아버님이 군생활을 하시던 그 친구(K)네가  기중 여유가 있었다.

 

원주에 가면 소설'치악산'의 무대가 되었던 '홍판서댁'이 있(었)다.

옛날기와로 덮은 높게 솟은 지붕, 돌담에 둘러쌓인 안채

솟을대문으로 연결된 사랑채와 집 뒷쪽의 고목이 된 밤나무들~~ 

 

중3 때~

우리 여섯식구는 그 사랑채에 살았고

밭 건너 흙벽돌로 새로 지은 기역자집이 K네다.

 

네 식구(부친은 늘 멀리 부대에 계시고, 엄마, 아들 둘, 딸 하나)가

방 3개를 쓰니, 당시로선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해서 시험이다 뭐다 핑계로

늘 그네집에 가서 먹고,자고 했다.

 

그러다 중학생된 둘째딸 공부를 봐주게 됐는데~

그 무렵부터  모친이 밤늦게  머리를 맞대고 있는 공부방에

더 자주 과일 접시를 들고 오셨던 것 같다.

중3인 선생에 대한 예의였는지,  외동딸 때문이었는지는 모르지만~

('72년 무렵이다)

 

2.

지난주말~

벼르던 원주행을 감행했다.

주말이면 병원에 계신 두분 때문에 원주에 내려 온다는  그 친구도 보고

근 20년 가까이 인사도 못 드린  두 분도 뵈올까하고~

 

부친은 의식이 흐려

'광수 왔어요, 광수~'하고 귓전에 대고 설명을 해도

눈빛에 변화가 없으시다.

위층의 모친은 거동이 불편해 그렇지, 의식도 목소리도 힘이 있어 다행이었지만~

 

뵙지 못하고 지낸 20년의 세월이 그 집에도 고스란히

제 흔적을 남겨 놓고 간 것이다.

 

그렇게 어른들 뵙고 초로의 두 사내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이쁘장한 중년 여인네가 들어선다.

 

'어서 와~'하는 친구의 목소리에

'아, 얘가 걔인 모양이구나~~'

'나 알겠어?'하니 고개를 가로 젓는다.

 

막내가 ' 누나~ 광수형!"

그제사

' 광수형!  어머! 왜 이렇게 말랐어?'

' 말라? 다행이다. 늙었다 소리 안해서~~~'

 

3.

그러고 보니 키가 나보다 머리 하나는 큰 아들놈이 옆에 있는데

내가 말을 이렇게 해선 안되겠다 싶다.

 

대충 인사를 마치고 병원을 나오려 엘리베이터 앞으로 간다.

 

' 오빠, 고마워~ 건강하시고' 하며 이녀석이 내 등을 두드린다.

옆에 있던 k가 기겁을 한다. 누구 등을 두드리냐고

 

' 뭐 어때, 같이 늙어 가는데~'

' 너~ 옛날 선생님 등을?'

' 아 ,그랬나?'

 

'ㅋㅋ~~ 선생이라?'

 

그러고 보니, 그 꼴같은 선생한테 꼬박꼬박 존대를 했던 것 같은데~~?

 

' 근데 쟤 올해 몇이야? '

' 어디보자, 58년생이니~~~~'

' 그래? 같이 늙어 가는거 맞네 ㅎㅎㅎ'

 

하도 오랫만에 만나니 제 눈엔  폭삭 늙은 내가 안 보이고

 

내 눈엔~

양갈래 머리 땋고 팔랑팔랑 튀던  그 애 모습만 보이니 

쉰 넘은 넘의 아낙네한테 그렇게 사정없이 말을 내리  깔았지

 

등이 아니라 뺨 맞을 짓을 해 놓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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