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주말에 집사람이 찌게를 끓여 놓고 가면( 제일 큰 냄비에 가득 끓인다) ,
큰 아들과 둘이서 수요일까지 버틴다.
목, 금을 대충 버티고 나면(라면 등으로), 드디어 금요일 저녁 제대로 된 음식을 먹게 된다.
이게 일반적인 패턴인데~~
이번 주처럼, 학회나 MT 때문에 하루나 이틀 집사람이 늦게 오면~~
이거~~ 많이 곤란해진다.
토요일 아침이다. 밤 새, 천둥번개 요란하게 비 쏟아지더니~
날이 밝으며 뜸악하다.
아들~ 아점으로 뭐 먹을래?
글쎄요, 장칼국수 어떠세요?
장칼국수? 좋지~~아빠도 그 생각 중이었는데, 잘됐다.
40분에 출발이다, 빨리 씻어라~
2.
인형극장 부근에 있는 장칼국수집으로 간다.
그집 안벽에~~
A3 용지에 가느다란 싸인펜으로 쓴 (결코 잘 쓴 글씨라 할 순 없지만~)
"장칼국수 정말 맛있어요~~ 노사연"
" 번창하세요~ 이무송"~~
노씨가 강원도 화천 사람이라, 두 내외 화천 오가며 그 집에 자주 들른단다.
( 두 양반 다 맛은 알아서~ ?)
오늘 가 보니
그 똑같이 유치한 액자가 하나 더 붙어있다.
" 장칼국수 사장님 돈 많이 버세요! 박인환"
70대 안사장님께 "박인환이 누구예요?" 묻는다.
거 무슨 연속극에 순경으로 나오는 이~
아~~ 네! 연극하다 TV로 온 양반~~~
( 담에 그런 양반들 오시면, 언능 사진도 몇 장 찍고,
종이도 좀 이쁜데다, 펜도 굵직한 거로 멋지게 써 달라하세요~
액자도 좀 멋진걸로 만드시고~~~ 하려다 속으로만 읊고 만다.
그건 우리 같은 젊은 놈들 생각이고~~두 양반 그런 요령도 없으시니,
이제까지 버텨오셨지? 하는 맘이 들어~~ )
3.
춘천엔 온통 막국수집 뿐이다.
더러 해물칼국수집, 장칼국수집이 있는데 그 비율이 아마 5%도 안될 것이다.
헌데~~ 그 희귀한 장칼국수집 중에서 70대 후반 노부부가 경영하는 바로 그 집~
평범한 칼국수 면에~
겨우내 낮트막한 기와지붕 밑 외벽에서 말린 시레기와
오리지날 시골된장 넉넉히 풀고,
신김치, 무우채, 염장 고추 다진 거, 3가지 반찬 내 놓는데~~
그 집이 춘천의 칼국수 명가로 입소문이 난지 오래인 것이다.
우리 부부 둘다 군생활할 때부터 다녔으니
분명 15년은 넘었으리라~~~
4.
10시~
칼국수 주문하고 지방신문 훒고 있는 사이
"저 왔어요~~"하며 그 집 며느님 들어 오신다.
70대 시어머니는 그 시간에 몸매무새 깔끔하게 차리고
손님 치루고 있는데~~~ 며느님은 얼굴이 부석하다.
지난 겨울~
모처럼 만에 다 모인 우리 네식구가, 이 며느님에게 평소와 다른(?) 주문을 했었는데~~
"고기만두1, 김치만두2, 장칼국수 1 이었다."
주방에 계신 시모님과의 거리 2m, 약 다섯 발자국 이내~~
얼마 후~ 들여 온 음식은; 고기만두 2, 김치만두1, 장칼국수 1 이었다. ㅋㅋ
암말 안하고 다 먹고~~ 계산하는데, 주인인 시모님께서 빙긋이 웃으신다.
나와 집사람도 빙긋 웃고 만다.
그 날따라 손님들이 바글바글했는데~~
방안을 모두 차지하고 요란스럽던 40대 여인네 무리 중
한 여인네가 나서서 며느님을 닦아 세운다.
우리한테 하고 비슷한 실수를 한 것 같은데~~ 용서가 없다.
"서울 같으면 손님들 안 먹고 그냥 간다고~~
여긴 시골이니까, 참고 먹는 거라고~~"
그 때도 시어머니는 빙긋이 웃고만 계셨다.
5.
이해가 간다. 15년쯤 전~
노인네 두내외가 처음 그 자리에 가게를 열었을 땐
두 양반 힘으로도 충분했는데~~
그렇게 서서히 입소문 나니 자연히 일이 많아지고~
연륜이 싸이며 겨울 메뉴로 만두국이 추가됐고~
그러다 보니 아들, 며느리가 퇴근하면 식당에 와
늦도록 만두 빚게 됐고~~~
마침내, 며느리가 거기로 출근~~
실제로 해보니 사람 대하는 거 그렇게 설렁설렁해서 되는게 아님을
배워가는 중인걸~~
그 노인네들 한테,
연예인들 오면 멋지게 사진 박고(쥔양반들도 같이~)
싸인 멋지게 틀에 넣어 걸라하면~~
며늘에게 했듯이 빙긋~~ 웃고 마실걸?
하긴, 시내 목 좋은데 있던 대형 횟집
( 이주일씨 대형사진으로 온 벽을 도배해 놨었는데~~~)
2~3년 하다가 없어졌지~?
( 전문 사진사 불러다 사진 찍고~
그 날 크게 한 방 쐈다고, 주인이 자랑을 하더니만~~)
후후룩~후루룩 뜨거운 장칼국수 입안으로 밀어 넣으며,
장사라는 것이 음식을 파는게 아니라, 정성을 파는게 아닌가 ? 하는 생각.
문득~ 정신을 되돌리자
그 건망증 심한 며느님 쳐다 보며, 시어머니의 편안한 웃음을 흉내내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킥~~~ 웃는다.
봄비 내리는 토요일~
칼국수로 두둑해진 배 쓰다 듬으며~~이렇게 내용없는 글 두드리고 있다.
이 사람은 언제쯤 오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