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모처럼의 비번
(말 그대로 진짜 비번이다. 사무실 불려들어갈 염려없는~~)
갑자기 황당해져서, 어디가 뭘 할지 모르겠다.
이젠 완전히 습관의 노예가 됐구나~~
한참을 우물쭈물하다가, 그래 삼악산으로 가자.
주섬주섬 백을 꾸린다.
컵라면 두개, 보온병에 물끓여 담고, 김치도 챙기고~~
석림정사쪽으로 간다.
차댄 곳으로 되돌아 내려 오려면 그 곳이 제일 나으니~
솔잎이 솜이불처럼 덥혀 있는 낙엽송밭을 지난다.
낙엽송~~ 누가 지었는지, 이름 정말 잘 지었다.
낙엽이 지는 소나무란 말이지~~?
늦가을~ 낙엽이 지기 전,
낙엽송숲의 샛노란 빛깔은 또 어떻고~~~
울긋불긋 요란하던 활엽수숲이, 죄다 황량해진 이 때.
아늑하고 조용한 낙엽송밭의 이 느낌이 참 좋다,
이 느낌 때문에
낙엽송은 숲이 아니라 "밭"이라 하나 보다.
낙엽송밭을 지나 삼거리옆 뫼둥치.
삼거리옆에 봉분이 다 내려 앉은 묘지가 하나 있는데
삼악산 오는 춘천 사람들, 거길 뫼둥치라 한다.
이따 내려올 땐 그 우측길로 내려올 작정이다.
( 이곳을 지날 때마다, 후손들이 경황이 없는 모양이다란 생각에
맘이 편치 않다.)
2.
계곡물에 얼음이 붙어있다.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은, 얼음이 지표를 밀고 솟아 있고~~
바야흐로 겨울이구나.
경사가 급해 한해에도 몇번씩 돌이 쏟아져 내리는 곳에
돌망을 이층으로 쌓아 놓았다.
그래야겠지, 매번 사람 동원해 치우는 것보다 나을테니
그 턱에 백 내려 놓고 한꺼풀 벗는다.
손끝은 시리지만, 온 몸이 상쾌하다. 땀을 훔친다.
전봇대,
하늘로 멋지게 뻗은 소나무 군락옆에 있는 전봇대, 내 이정표
거기서 우측으로 발길을 돌린다.
좀더 올라가 샘터에서 목 축이고 나니, 그 다음은 갈참나무 숲이다.
촉촉히 젖은 갈잎이 발아래서 이쁘다.
지난 여름의 추억이 고스란히 배어 있을~~
얼마 더 가면 커피바위.
바위가 반듯하고 길 바로옆이라
커피마시기 딱 좋은 곳이다.
3.
주섬주섬~ 커피 챙기는데~
(오늘이야 불러 들일 일 없으니 한껏 여유를 부린다.)
내가 올라 온 길로
나홀로 등산객 한 양반이 올라온다.
퍽퍽~~ 발길이 무쟈게 빠르다.
혹시~~~?
맞구나. 심선생님이시구나~~
(전에 삼악산 청소 담당인 심선생님 얘길 올린 적이 있어
어떤 분인지 아시리라~~)
"어~~~ 김대장, 오랜 만이야! 별일 없지"
아, 네~ 뭐 별로~~
"그래, 그럼 천천히 올라 와~~"
10시 경인데
의암땜쪽에서 뫼둥치쪽으로 넘어와서
다시 전봇대길로 넘어 가는 중이시란다.
후다닥, 내도 백를 지고 따라 나선다.
조금 더 가면 돌계단인데
(360개라던가? 써 붙혀 놨는데도 내려오면 잊어 버린다)
아뿔싸~
그 돌계단에서,
환갑 넘으신 양반과 나와의 간격이 점점 벌어진다.
숨이 턱에 닫고, 머리가 어지어질하도록 따라가지만~~
에고~~~~
이러다 사람 잡겠다. 포기하자.
매일 그렇게 산을 넘어왔다, 되짚어 넘어 가신다는 데
어쩌다 멋으로 여기 오는 내가, 무슨 수로 그 페이스를 따라 갈 것인가?
그걸 아시니, 아까 저 아래서~~
"천천히 올라 와~~'하셨지 않겠는가?
하여간,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이 이 순간처럼 생생하게
느껴진 적이 결코 없었던 듯하다.
한참 헥헥대다, 자발적으로 새나라 어린이 되어
"앞으로 술,담배 줄이고
산에도 부지런히 와야 겠다"는 결심을 새로이 한다.
나도 내보다 젊은 사람한테~~
"그래~~ 그럼, 천천히 올라 와~~" 하곤
쌩하니 산을 올라갈 수 있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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