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사람이야기

콩자반~

언덕위에 서서 2006. 9. 8. 11:49
1.
내는 딱딱한 콩자반이 좋다.
다른 집에선 대개 씹기 부드러운 콩자반을 만드는 데

우리 집은 그 반대다.
올해로 같이 살기 시작한지 20년째~~~
매번 딱딱한 콩자반 만들려고, 있는 정성 다 들이지만,
번번히 푹 퍼진 콩자반이 된다.


왜, 푹 퍼진 콩자반이 싫으냐고~~~~?
'84년인가?
대위 달고 全州에 근무할 땐데~~
(총각이니, 하루 세끼를 장교식당에서 때워야 한다)

아침에 식당에 들어가면~~~~~~~~~~~
조리병이 전날 저녁 설겆이 끝내고, 식탁위에 차려놓은
조미김 대여섯장(눅눅해졌다), 씁쓰레한 김치,
그리고 퉁퉁 불어 터진데다, 겉이 말라버린 콩자반이 나를 맞았다.
6개월을 그곳에 있었는데, 매일 그랬다.

(그땐 왜 아침을 빵으로 때울 생각도 못했는지 모르겠다.
아침밥 안 먹으면 죽는 줄 알았고~~~~)

징그러웠다. 그래서 지금도 불어터진 콩자반과 조미김은 안 먹는다.


2.
장모님께서, 무릎인공관절수술을 받기로 용단을 내리셨다.
어려운 결정이었던 이유가,
당신이 입원하시면, 당장 몸이 불편한 장인수발을 누가 맡을 것이며,
수술 비용이 만만치 않은데, 자식들에게 돈 내놓으라 하기가 맘 편치 않으셨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이제까지처럼,
진통제로 견디기에는 너무나 긴 매일밤인지라~~
용단을 내린 것이다.

장모님 수술받는 날 아침~~
이것저것 챙겨 서울로 출발하려는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장인어른이 척추를 심하게 다쳐, 병원에 계시니
원주로 빨리 오라고~~~

부랴부랴 원주로 넘어 갔다.
장인어른 입원시켜주신 이에게 경과를 들어보니
가슴이 찌르르하다.
무릎을 끌고 다니는 장모님마져 옆에 안계시니(그것도 수술을 한다니),
몸 불편한 장인 어른 심정이 어떠했겠는가?

혼자 약주를 하신 모양이고, 취기가 돌아 방안에서 털썩 주저 않았는데
그게 척추압착골절이 된 것이다.
몸을 옆으로 돌리지도 못하고 밤새 혼자 계셨던 것이다.
전화기까지 손도 못 뻗고~~
(그만하길 다행이시지, 혼자 돌아 가실 뻔했다.)


3.
자~~~이제, 자식들 입장이 딱해졌다.
장모님 수술에 대비해 6남매가 간병순서며, 휴가를 짜 놓았는데~~~
양쪽에 간병요인이 생긴 것이다.

형제들이 원주, 서울 2곳을 교대로 오가는 사이~~
수술 무사히 끝낸 장모님은 재활단계로 돌입하여
춘천에 있는 재활병원으로 옮기셨는데~~
(1녀, 2녀가 산다)

오히려, 장인어른은 별차도가 없어 계속 간병인이 필요한 상황이라
둘째아들이 있는 일산으로 옮기셨다.
(막내 며느리 몫이다)

6남매 중, 위로 넷이 딸이니, 사위가 넷인데
이들이 다 맞벌이고 보니, 온 집안의 이번 여름이 어떻했을 것인지~~
그걸 보는 두분의 심정은, 또 어땠을지~~~~~~~~~~~~~~
상상이 되실 것이다.



4.
내는 서울에서 운전하는 거, 죽는 거 다음으로 싫어하는데
어제는 춘천-일산-광화문-춘천 구간을 운행했다.

오후엔 서울하늘이 온통 껌껌해지며 비를 들이 부었고,
그 와중에 광화문에서는, 포항서 올라온 건설노조원들이
집회를 하고 있었다.

으~~~~ 서울사람들, 정말 대단하다.
기어가는 차안에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인생수양 다 될 것 같았다.

확성기를 통해 귀를 때리는 ~~
"노무현이가~~~ 비정규직도 인간답게 살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는
아무개열사를 때려 죽이고~~~~"하는 목쉰 주장을 듣으면서도
수양과 교양이 겹으로 쌓이기에 충분할 것 같았다.
그래서 서울 사람들 항상 야당인 모양이다.


5.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늦은 시간에 집에 도착했다.
차안에서 잠시 눈을 붙힌 집사람이~~

바깥문 꼭 처닫고, 에어컨 돌리며
가스불에 뭔가를 올려 놓는다.

자세히 보니~~~콩 삶는다. 콩자반 만드는 건가?
이번엔 물러 터지게 만들지 마라.

나중에 장인어른 나이되면,
콩자반 씹기 쉽게 만들라고 눈치주겠지만~~

아니, 콩자반 안 만들어도 되니
걍~~~~~~
옆에 있기만 하라고 부탁해야겠지만~~~~~~~~~~~~~~~~~~~~

이번엔, 콩을 볶는 한이 있더라도,
제발 딱딱한 콩자반 한번 먹어보자.
아직 이빨 성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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