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년, 소위 계급장을 달고
경기도 전곡부근의 한 포병부대로 부임했다.
전곡읍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자갈길을 한참 달려
먼지를 흠뻑 뒤집어 쓰고 있는 부대정문 앞에서 내렸다.
따블빽(Duffle Bag)을 둘러맨 채로 정문을 들어서며
" 이 곳이 나의 첫 임지로구나~~" 하는 감회에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그 해 23세.
6개월쯤 지났을까?
부대에 이상한 병사가 전입을 왔다.
일병(새우깡 2개)인데 나이가 서른 몇살이었다.(34세?)
100 여명 남짓한 부대식구들이 이 노병(?)의 정체에 대해
쑤근쑤근한 것은 물론, 처녀를 어찌했느니하는
괴소문까지 돌아 다녔다.
이 병사의 정체.
10년전 이 부대에 근무하다 순간의 실수로
병영을 이탈한, 소위 탈영병으로
자수하여 일정기간 옥살이를 한 후,
잔여기간을 탈영 전 부대에서 복무해야한다는 규정에 의해
다시 이 부대로 온 것이었다.
그러니 주의깊게 살펴봐야 한다는 충고도 함께~
정말이지 주의깊게 살펴봐야 할 것 같았다.
다행이 사람이 덩치가 우락부락하다거나
말투가 상스럽다거나 한 것이 아니어서
그 중 다행이었다.
나이 차야 많지만 군대는 계급이 우선이라
그 병사를 불러 이런 저런 얘길를 묻고, 기록에 남겼다.
(또 탈영할 확률이 높으니 신상파악 철저히 해 놓으라는
지시도 받은터라~~)
"어디 근무하고 싶나?" 새파란 소위의 딱딱 끊어지는 질문에
"포반에서 근무하게 해 주십시요"한다.
과거를 반성하는 의미에서 제일 힘든 부서에서
근무하겠다는 각오와 함께,
포반이면 실제로 포를 쏘는 부서라 90kg 포탄을
번쩍뻔뻑 들어 옮겨야 하고
군기도 제일 쎈 곳인데, 그곳으로 보내 달라니~~~?
갸우뚱하며 그리로 보냈다.
2-3주나 지났을까? 포반장인 하사가 찻아왔다.
"김일병아저씨" 건으로 면담드릴 것이 있다며~~
포반장인 20세 하사가 7~8명되는 반원들을 훈련시키고
더러 군기도 잡고 해야하는데,
나이든 사람을 같이 기합주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빼 놓으려니 팀 훈련이 안되고 한다며~~
듣고보니 맞는 말이다.
그런데~~
"김일병아저씨라니?"
"그게 너네들 공식 호칭이냐?"
그렇단다.
전 부대원중 40대 중반의 주임상사를 빼 놓고는
가장 나이가 많은 이 노병을 예우하기 위한
그들만의 호칭이란다.
게다가 모든 일에 열심인 모습에
병사들이 이미 마음을 열고, 형처럼 따르고 있는 상황이었다.
김일병을 불렀다.
나이 어린 포반장이 이러저러한 이유로 부담스러워하니
근무부서를 바꿔보는게 어떻겠느냐고~~
그래서 아침,저녁 점호(병사들이 쟬 싫어하는) 안 받는
취사반으로 옮겼다.
이 양반이 지난 10년 동안 밖에서 낚시점을 했다던데
취사반에서 낚시회 출조 경험을 살려 요리를 하니~~
밥이며, 국이며, 반찬의 맛이 획기적으로 달라졌다.
또 보초를 서고 늦게 식당에 오는 병사들을 위해
밥이며 반찬을 따뜻하게 보관했다 챙겨 주는 등
한마디로 큰 형 노릇을 톡톡히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매년 실시하는 부대시험을 위해 출동하기 전 날
시험 성적 잘 받으라고 고사를 지내게 되었다.
헌데 이 고사가 난감했던 것이
매년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 절차를 잘 아는 사람이 없는 것이다.
목에 힘만 들어가 있는 소위(나)는 물론이고
가만히 보니, 나보다 한 4년 군 생활 더한 포대장도
마찬가지였다.
고사상에 돼지머리 말고 뭐가 더 있어야 하는지~~
절하는 순서는 어떻게 되는지 어사뭐사하고 있는데
문제의 김일병이
제사상에 올릴 제물이며, 소지며를 다 챙겨 놓았다.
그리고는
"포대장님 잔 올리시죠~~"
"전포대장님도 잔 올리시고 절 2번 반 올리세요~~"하는 등
노련하게 집사 노릇을 해 내는 것이었다.
다들 김일병을 다시 평가하는 기회가 되었다.
다음 날, 고사를 잘 지낸 덕인지
출동해서 포를 쏘는데, 타겟에 쏙쏙 잘 들어갔다.
얼마 후
김일병 본인이 직접 날 찻아왔다.
휴가를 가야겠다며~
그 동안 초등학교 다니는 두 딸과 부인이 매주 면회를 오곤했는데
남자없이 낚시점을 경영하기가 힘들어
자신이 가서 가게를 처분해야겠다는 내용이다.
그래서 필히 휴가를 다녀와야겠다고~~
불안해하는 포대장님을 설득하여
김일병의 휴가허락을 얻어내고, 출발시켰다.
휴가 끝나고 복귀하기로 되어 있던 날
혹 안돌아 오면 어쩌나하며
부대로 들어오는 막차를 기다리고 있는데
어? 마지막 버스가 정문앞을 그냥 지나친다.
이런~
정문에 전화를 한다. "아무도 안내렸냐?"
안 내렸단다.
"일 났군, 위에 어떻게 보고하지?"
"또 탈영했다고~~~?"
난감한 얼굴로 궁리를 짜고 있는데
얼마 후
인터폰으로 위병의 흥분된 목소리가 흘러 나온다.
"김일병 아저씨 왔다고~~~"
" 그런데 짐이 많아서 차가 부대 안으로 들어와야 할 것 같다고~~~"
내다보니 정문에 시커먼 대형 승용차가 서있다.
차가 서고 김일병이
오십이 넘어 보이는 세련된 부인과 함께 내린다.
이 부인께서 머리를 깊이 숙이며 하시는 말씀.
"높은 분들 걱정하실까봐, 에미가 직접 데리고 왔다고~"
"아이구~~ 예~~ 뭐 걱정할 것까지야~~ " 어색하게 인사를 치룬다.
(몇 분만 더 빨리 오시잖구~~)
엄니가 돌아 가시고 얼마 후,
김일병이 가져왔다며~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시루떡이며 과일이 담긴 식판을 갖고 온다.
온 병사들이 다 먹을 만큼 준비해 왔다면서~~
저녁에
김일병이 다시 내려왔다. 가게 정리 잘하고 왔다고
그러면서 낚시대를 하나 내민다.
김소위님 성질 급하신데 낚시를 하면 도움이 될거라고
로얄시리즈의 2.5칸대였는데~~
2005년 여름까지 잘 사용하다 더 이상
수선용 부품을 구할 수 없어 폐기시켰다.
그 얼마후 그 부대를 떠난게 됐는데
풍편에 들은 소식에 의하면
김일병은 무사히 전역했고
청량리 부근에 다시 낚시점을 열었으며
같이 근무하던 병사들이 찻아가면 반갑게 소주도
대접하곤 한다는 것이었다.
다시 만나면, 나를 낚시꾼 만든 장본인이자
군대가 규정만으로 되는것이 아님을 알려준 인생 선배로
깍듯이 대접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옛날얘기 해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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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아들 놈 징병검사 받으라고 안내문이 왔다.
이 놈을 군에 보내서 어떡해야 하나?
고민 중에
문득 김일병이 떠 올랐다. 27년 전 일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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