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0306 소위 마산통합병원
열 다섯 해 동안 몸담아왔던 한 세계를 떠났고,
어른 (?)으로서 첫 내디딤이자, 나의 첫 임지야
마산.
이은상씨의 「가고파」의 보금자리.
유명한 결핵 요양원.
역시 내게 맡겨지는 건 칠백여 명의 결핵 환자들이야.
마스크를 두겹, 세겹 쓰고, 그들의 흰 마스크와 물기어린 눈만을
봐야 한다는 게 두렵고 싫지만
난 그들의 어엿한 간호장교 님이시니까 그런 작은 슬픔쯤은
감수해야 하겠지?
아직은 어깨의 ◇에 서툴러서 깍듯한 “ 이 소위님 ”소리에도
그냥 지나치기가 일쑤야.
온 병원의 시선이 몽땅 우리 가련한 신임 쏘위님들께 집중이 되어
여간 불편스럽지 않지만, 그리 기분 나쁜 일은 아니더군
결코 쉬운 일은 아닌 데, 앞으로 몇 년은 모든 것에
중간쯤 되어 살고 싶어.
아직 뭐가 뭔지 중심이 잡히질 못하고 헤매는 상태라서 인지?
정 붙이긴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어.
철저하게 얌전하고 고분고분하게 살아야 한 대. 좀 겁나.
한가지 맘에 드는 건 우리 병동에서 가포 앞바다가 보이는 거야.
좀 더 여유가 생기걸랑 또 쓸게.
항상 건강하길 ( 內. 外的으로 ) 기도 드려주지.
78. 3.6
京 嬉.
19781221 소위 마산통합병원
지금 02:25. 근무 중이야.
내 옆에는 삶이 싫다고 뭔가를 먹고 이틀 동안 계속 무의식 상태로 있는 용감한 (? ) 국군 아저씨가 계시고 , 그 옆에 위문품 상자가 있고 그 안에 들어 있는 이 엽서 다섯 장.
생전 편지 쓸 데 없어 편지 못 쓴 애처럼 불현듯 쓰고 싶어지는 거야.
제주도도 아니면서 여긴 웬 바람이 이렇게 부는 지.
더군다나 폭풍주의보까지 내려져서
바람소리. 전기 줄 윙윙대는 소리, 유리창 덜컹대는 소리에 녹음기에서
나오는 Vivaldi의 「 4계」가 겹쳐 묘한 화음을 이루고 있고.
이만하고, 어때, Condition은?
아주 오래된 일 같애
그날도 밤번이었어. 근무 마치고 온 방안의 커튼은 다 내려놓고 더위에 시달리며 침대에 누워서, 끄기조차 싫어 켜놓은 라디오에서 누구네 임관 소식을 들었거든?
며칠 뒤 집에 갔더니 바로 어제 떠나셨다고, 박재일 선생님께서 그러시더군
그 때부터 미뤄온 게 오늘까지야. ( 위문품이 이래서 좋은 지도 모르겠군 )
우연히도 Sailing을 들으면서 Sailing 얘기를 쓴 편지를 읽었고 답장을 반장쯤 쓰다....
새삼스럽지만 “ 축하합니다. 김소위님 !! ”
신고를 맘에 들게 해야 축하주가 나오지.
오늘이 꼭 10개월 째.
◆ 하나 달고 어깨에 힘주면서 근무 시작한 날이 2月 20日 이었으니까.
그 동안 많이 삭막해지고, 거칠어지고, 미워지고 그랬어.
젊음에서 느끼는 생동감이나 신선함보다는
더 많이 삭막감, 배신감들을 그들은 나에게 안겨주었으니까.
그래도 난 아직 그들의 장난기 어린, 그러면서도 물기를 담은 눈들을 좋아하지만 얼마 안 있어 미워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문득문득 하게 돼.
슬픈 사실이지만 그게 슬픈 일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도 드문 일이야.
그게 더 슬픈 일일지도 모르지만,
새해가 되면 모든 게 좀 더 아름다워 질 수 있을 지도 몰라.
우리 성당에서 Card 판매하느라고 며칠동안 꼬박 앉아서 X-Mas Card를
그렸거든, 그 중 맘에 드는 것 몇 장 골라서 맘에 드는 몇 사람에게만
보내려고 맘먹었었는데 한 장도 못 골랐어.
이걸로 Christmas Cars & 연하장을 대신하려고 생각 중.
Merry Christmas
And Happy New Year !
정말 즐겁고, 평화스럽고 복된 성탄 지내고,
활기 있고 빈틈없는 새해가 되길 기도할게.
새해엔 아주 멋있는 Love story를 엮어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애.
P.S. Card를 못 고른 건 못 그려서가 아니고 매진돼서야,
오해할 것 같아서....
국마통 이소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