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사람이야기

쫙~~

언덕위에 서서 2009. 3. 31. 11:52

1.

쫙~~

1월 달력을 힘차게 뜯어 냈다. " 에휴, 벌써!..."  보다는

" 그래, 새 해  첫 달도 열심히 살아 냈다. 또 와 봐라, 2월..... 너도 자신 있는 표정으로 맞아 줄테니... "

하는  각오로 사는 게 훨씬 나은 것 같아서.

 

그러자 벌써 입춘이다.  입춘... 좋지.

출근길 의암호를 따라 안개가 피어 오른다. 그렇구나 계절이 이렇게 분명하구나.

사람이 엄살을 떠는 것이지. 그 사람을 태우고 달리는 세월의 바퀴는 이렇게 당당하고, 의연하고,

흔들림이 없구나.

 

2.

엊그제 집 사람이 기사 딸린 벤츠 타고 나온  동창을 만나고 왔단다.

내 동창도 되는 여인네다.

차에서 멀쩡한 남자가 같이 내리니,  혹 서방님인가 해서 인사 올리려 하는데

왠지 분위기가 아닌 것 같더란다.

" 누구니? 응, 우리 아저씨.... 아저씨? 어떤 아저씨?   우리 차.....아!....."

 

여인네 넷이  모여 그 친구(벤츠) 자주 가는 백화점엘 갔단다.

아이 쇼핑하다 언듯 눈에 들어 오는 자켓이 있어 살펴보니, 4십 몇만원 이더란다.

참하다하곤 다시 보니,  400 얼마 더란다.

 

저녁에 집사람과 둘이 소주 한잔하며, 다시 그 톤으로 되돌아가 이런 저런 얘기를 계속한다.

또 다른 친구는 6층 건물을 샀는데, 의사 남편이 바빠 자기가 엘리베이터 신축 공사를 하느라

정신없고, 누구는 자기 혼자 벌어 서울에서 집 넓혀 이사했고...

 

3.

이럴 때, 참 난처하다. 내 아내는 전혀 그런 면 없는 사람인 줄 알고 살아 왔는데

결국, 이 사람도 TV 연속극에 나오는  여인네들과 똑 같은 충격을 받는단 말인가?

 

어쩌지? 내 재주로는 죽었다 깨어나도 그렇게 못 해줄 것 같은데...

그렇다고 내 잘난 척 몰아 세우기도 겸연쩍고.

 

" 아침 드라마 보면서 살고 싶다 ."는게 평생 직장생활하는 집사람의 바램인터라

모처럼의 휴일, 둘이 TV 앞에 앉아 있을 때면 몸이 비비 꼬이는 걸 참으면서

재미있는 양 드라마 같이 보는 것까지는 하겠는데...

내 재주로 어떻게 벤츠냔 말이다.

 

4.

한참 겸연쩍어 하다 " 모르지,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아직 살아갈 날 적지 않으니

언젠가는 나도 기사 딸려서 쇼핑하고 오라고 집사람 내보낼 날 있겠지. "

하는 상상으로 스스로를 달래고 만다.

 

다음 날 늦은 오후, 모처럼 등산용품점에 갔다. 바닥 닳은 등산화를 바꾸겠다 하길래..

나간 김에 내도 스틱 한 벌 챙기고, 요새 다들 백에 매달고 다니는 의자도 한 개 사고...

양말도 몇 컬래. 총액 20 몇 만원....

내 카드를 내밀었다. 주머니 돈이 쌈지 돈이긴 하지만...

 

가게 문을 나서며 눈치 빤한 집사람이 한마디 한다.

" 오늘 뭔가 푸짐하게 산 것 같다..."

" 그렇지...?"  나도 맞장구를 친다. 

 

그래, 이런 맘으로 같이 살자. 자신있게

살다 보면 벤츠보다 더 큰 차 탈 날 올거다.

그때까지 쫙, 쫙~~~ 자신있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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