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사람이야기
8년 동안의 고독
언덕위에 서서
2005. 9. 3. 19:26
97년 11월 1일~~
부대가 야외훈련 중이라 전 날 해야 할 전역신고도 못하고
새로운 직장에 와 임용신고를 했다.
항공대장으로서~~
전역하는 군인들 곧바로 취업하기가 쉽지 않은데 운이 좋다는 소리~
무궁화를 두개나 달았으니 얼마나 좋으냐는 소리~
119 구조대로서 죽어가는 생명을 구할 수 있으니 얼마나 보람찬
생활이겠냐는 소리~~~
그런 주변의 얘기에 취해 스스로도 대단한 자부심과 기대에 부풀어
이 직장에 출근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21년의 군 생활에 익숙해진 내게, 새로운 직장인 이곳의 문화는
정말이지 너무나 의외였다. 모든게 허술하고 책임회피적이고 배타적이었다.
가슴에 맺힌 몇가지 사례
1. 소방관은 24시간 2교대 근무를 한다.
그리고 헬기 1대에는 조종사 2명이 탑승해서 비행한다.
2명이 2교대 근무를 하려면 4명의 조종사가 필요하다.
아주 간단한 산수다.
그런데 그 때 조종사를 2명만 선발했다.
(곧 정원을 추가로 신청하겠다고 했다.
8년차인 아직도 이곳의 조종사는2명이다.
금년 11월에 1명 더 뽑는다고 한다.)
2명이서 2교대를 시작했다. 즉 24시간 근무하고 퇴근해서
집에서 24시간 쉬는 데 그 동안 출동할 일이 생기면 다시 사무실로
뛰어 들어왔다.( 365근무제라 한다)
2년간 그렇게 생활했다.
그 동안 누구도 이런 우리의 근무 여건에 대해
진정 안타까워하고 개선해 주려는 노력을 한 사람이 없었다.
혹 저렇게 근무하다 항공기 사고나면 그 사고 책임이
자기에게 돌아올까봐 걱정하는 사람은 있었는지 모르지만~~
그 비번(말로만)인 날에 대해서는 아무런 금전적 보상도 없었다.
현행 규정상 소방관의 비상소집에 대해 수당을 지불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것이었다.
( 그 후 악에 바친 우리의 불평과 몇 번의 건의 끝에,
이제는 주간에만 사무실에서 대기한다.
다음 날은 숙소에 대기하며 전화 오길 기다리고~~
여전히 365근무제다.)
2. 더 웃기는 것은 그 무렵 2년간 대한민국에서 조종사라면 누구나 받는
비행수당도 못 받았다.
공무원 수당규정에 군인. 경찰 조종직에 대해서는 일정액의 비행수당이
규정되어 있었지만
그 해 국가 역사상 처음으로 소방직 조종사로 임용된 우리는
"규정에 명시되어 있지 않은 이유로, 수당을 지급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2년 동안 직접 발로 뛴 끝에 공무원 수당 규정에 소방직 조종사를 추가한 후,
3년차부터 수당을 받았다. 하지만 소급지급은 불가란 말 한마디에
우리의 지난 2년간의 수당은 기억에서 사라졌다.
누구도 그 일을 하지 않으려 했다. 치사했지만 수당 받을 우리가
직접 뛰어 다녔다. 정말 이런 조직이 있구나하는 심정에 많이 섭섭했다.
(사람 뽑으려면 규정 미리 만들어 놓고 뽑아야 하지 않았을까?)
3. 헬기 정비를 해야한다고하면, 뭔 정비를 그렇게 자주하냐고 했다.
강원도 역사상 처음 산 헬기(단일 장비로는 제일 비싼~)이다 보니,
그 헬기 타고 싶은 부서가 너무 많았고, 너나없이 헬기 지원해 달라고
난리였다. 신문, 방송사까지 나서서~~
그 중 누구도 헬기는 일정시간(우리 헬기의 경우 50시간 마다) 비행후에는
이상이 있건 없건 정비를 해야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 못했다.
그걸 일일이 설명하고 납득시키기가 어렵고 지겨웠다.
헬기 좀 쓰려하면 꼭 정비한다고 하느냐?는 소리가 정말 듣기 싫었다.
4. 헬기가 기상이 나쁘면 비행을 못한다는 사실도 납득하려하지 않았다.
악기상이란
안개나 구름이 끼어 앞이 안보이는 것만이 아니라
맑은 하늘에도 눈에 안보이는 요란기류가 있어서 비행이 불가하고
사고가 날수도 있다는 사실을 납득시킬 길이 없었다.
헬기가 홍길동이나 번개가 아니라는 사실도 납득시키기 어려웠다.
뭔 헬기가 이럴게 늦게 오느냐고 불만이 말이 아니었다.
헬기 요청한 시민이나 심지어 구조대원까지도~~
(모든 사람들 머리속에 영화에서 본 무소불위의 썬더버드가
자리잡고 있어서 그런지 모른다.)
이를 설명하는 우리의 입은 서너개이고, 비난하는 입은 수백, 수천 개 였다.
정도는 약해졌을지 몰라도 이런 경향은 지금도 마찬가지라서~~
동료 소방관들 입에서 나오는 불평과 비난으로 인해
지금도 수시로 가슴이 베여 나가는 아픔을 느낀다.
( 동료 소방관이란 나의 바램일 뿐, 저들은 그렇게 느끼지 않을지도 모른다)
나는 지금도 토, 일요일이나 빨간 날이면
핸드폰을 손에 쥐고 앞산의 안개가 얼마나 엷어 지는지를 살피는 게 일이고~~
기상예보를 가장 자주해주는 YTN은 깨어 있는 동안 계속 틀어 놓는다.
지금도 내게 휴일이란 없다.
우리 가족들에게도~
8년전 내가 이곳에 취업하기 전에 가졌던 그런 주말과 휴일은 없다.
우울한 사례 하나 더~
지난 8월 중순 치악산에 심장질환이 있는 등반객이 쓰러졌단다.
허겁지겁, 어제 근무하고 나간 조종사 다시 소집하고, 장비 싣고
이륙했다.
한 5분쯤 비행했는 데
헬기 기수가 좌우로 왔다갔다하며 도무지 안정이 되질 않는다.
응급조치 절차를 취해봐도 회복이
되질않아 할 수 없이 임무를 포기하고 되돌아 왔다.
그대로 계속가다간 사고가 날 판이니~~~
가까운 원주에 있는 타기관 헬기를 요청해 구조작업을 하라고 전해 놓고
고장부위를 점검하고 시험비행을 하고 있는데~~
계속 전화가 온다. 그쪽 헬기도 고장이 나서 즉시 이륙을 못하고 있다고~~
미치겠군~~~ 심장질환이면 5분내 심폐소생술을 시작해도 살까말까한데~~
어거지로 점검을 마치고나서 다시 이륙했다.
기상도 엉망이었지만, 어쩌나 변명의 여지가 없는 상황인데~~
그 사이 1시간이 경과했고
우리가 임무를 수행했지만, 결국 환자는 절명했다.
그리고 어제.
열우당 국회의원 아무개씨가 소방청 아무개씨한테
이런 사고가 있었다는 민원이 있으니 조사해 달라고 요구했단다.
당연한 일이다.
항공대. 상황실, 원주소방서, 타기관 4곳의 그날 상황일지와
현장에 출동했던 구조대원, 목격자들의 구술등을 종합하여
해명자료를 만들고 밤 늦게 돌아왔다.
유족들 입장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일행 중에 의사가 있었고 30분 정도는 환자의 의식이 있었다는데
믿었던 119 헬기가 2시간 넘어 나타나니~~~
당연히 119 이 개새끼, 소새끼 소리 나오지.
그리고 오늘 또 토요일이다.
앞산에 구름이 자꾸 엷어진다. 핸펀 어디 있나 다시 한번 살피고
저려오는 가슴을 풀어 놓기 위해
까페 문을 연다. (하필이면 산방인가 모르겠다)
오늘도~
지난 8년의 그것들 처럼 내겐 주말이 아니다.
이렇게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점점 자신감이 없어진다.~~~~
부대가 야외훈련 중이라 전 날 해야 할 전역신고도 못하고
새로운 직장에 와 임용신고를 했다.
항공대장으로서~~
전역하는 군인들 곧바로 취업하기가 쉽지 않은데 운이 좋다는 소리~
무궁화를 두개나 달았으니 얼마나 좋으냐는 소리~
119 구조대로서 죽어가는 생명을 구할 수 있으니 얼마나 보람찬
생활이겠냐는 소리~~~
그런 주변의 얘기에 취해 스스로도 대단한 자부심과 기대에 부풀어
이 직장에 출근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21년의 군 생활에 익숙해진 내게, 새로운 직장인 이곳의 문화는
정말이지 너무나 의외였다. 모든게 허술하고 책임회피적이고 배타적이었다.
가슴에 맺힌 몇가지 사례
1. 소방관은 24시간 2교대 근무를 한다.
그리고 헬기 1대에는 조종사 2명이 탑승해서 비행한다.
2명이 2교대 근무를 하려면 4명의 조종사가 필요하다.
아주 간단한 산수다.
그런데 그 때 조종사를 2명만 선발했다.
(곧 정원을 추가로 신청하겠다고 했다.
8년차인 아직도 이곳의 조종사는2명이다.
금년 11월에 1명 더 뽑는다고 한다.)
2명이서 2교대를 시작했다. 즉 24시간 근무하고 퇴근해서
집에서 24시간 쉬는 데 그 동안 출동할 일이 생기면 다시 사무실로
뛰어 들어왔다.( 365근무제라 한다)
2년간 그렇게 생활했다.
그 동안 누구도 이런 우리의 근무 여건에 대해
진정 안타까워하고 개선해 주려는 노력을 한 사람이 없었다.
혹 저렇게 근무하다 항공기 사고나면 그 사고 책임이
자기에게 돌아올까봐 걱정하는 사람은 있었는지 모르지만~~
그 비번(말로만)인 날에 대해서는 아무런 금전적 보상도 없었다.
현행 규정상 소방관의 비상소집에 대해 수당을 지불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것이었다.
( 그 후 악에 바친 우리의 불평과 몇 번의 건의 끝에,
이제는 주간에만 사무실에서 대기한다.
다음 날은 숙소에 대기하며 전화 오길 기다리고~~
여전히 365근무제다.)
2. 더 웃기는 것은 그 무렵 2년간 대한민국에서 조종사라면 누구나 받는
비행수당도 못 받았다.
공무원 수당규정에 군인. 경찰 조종직에 대해서는 일정액의 비행수당이
규정되어 있었지만
그 해 국가 역사상 처음으로 소방직 조종사로 임용된 우리는
"규정에 명시되어 있지 않은 이유로, 수당을 지급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2년 동안 직접 발로 뛴 끝에 공무원 수당 규정에 소방직 조종사를 추가한 후,
3년차부터 수당을 받았다. 하지만 소급지급은 불가란 말 한마디에
우리의 지난 2년간의 수당은 기억에서 사라졌다.
누구도 그 일을 하지 않으려 했다. 치사했지만 수당 받을 우리가
직접 뛰어 다녔다. 정말 이런 조직이 있구나하는 심정에 많이 섭섭했다.
(사람 뽑으려면 규정 미리 만들어 놓고 뽑아야 하지 않았을까?)
3. 헬기 정비를 해야한다고하면, 뭔 정비를 그렇게 자주하냐고 했다.
강원도 역사상 처음 산 헬기(단일 장비로는 제일 비싼~)이다 보니,
그 헬기 타고 싶은 부서가 너무 많았고, 너나없이 헬기 지원해 달라고
난리였다. 신문, 방송사까지 나서서~~
그 중 누구도 헬기는 일정시간(우리 헬기의 경우 50시간 마다) 비행후에는
이상이 있건 없건 정비를 해야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 못했다.
그걸 일일이 설명하고 납득시키기가 어렵고 지겨웠다.
헬기 좀 쓰려하면 꼭 정비한다고 하느냐?는 소리가 정말 듣기 싫었다.
4. 헬기가 기상이 나쁘면 비행을 못한다는 사실도 납득하려하지 않았다.
악기상이란
안개나 구름이 끼어 앞이 안보이는 것만이 아니라
맑은 하늘에도 눈에 안보이는 요란기류가 있어서 비행이 불가하고
사고가 날수도 있다는 사실을 납득시킬 길이 없었다.
헬기가 홍길동이나 번개가 아니라는 사실도 납득시키기 어려웠다.
뭔 헬기가 이럴게 늦게 오느냐고 불만이 말이 아니었다.
헬기 요청한 시민이나 심지어 구조대원까지도~~
(모든 사람들 머리속에 영화에서 본 무소불위의 썬더버드가
자리잡고 있어서 그런지 모른다.)
이를 설명하는 우리의 입은 서너개이고, 비난하는 입은 수백, 수천 개 였다.
정도는 약해졌을지 몰라도 이런 경향은 지금도 마찬가지라서~~
동료 소방관들 입에서 나오는 불평과 비난으로 인해
지금도 수시로 가슴이 베여 나가는 아픔을 느낀다.
( 동료 소방관이란 나의 바램일 뿐, 저들은 그렇게 느끼지 않을지도 모른다)
나는 지금도 토, 일요일이나 빨간 날이면
핸드폰을 손에 쥐고 앞산의 안개가 얼마나 엷어 지는지를 살피는 게 일이고~~
기상예보를 가장 자주해주는 YTN은 깨어 있는 동안 계속 틀어 놓는다.
지금도 내게 휴일이란 없다.
우리 가족들에게도~
8년전 내가 이곳에 취업하기 전에 가졌던 그런 주말과 휴일은 없다.
우울한 사례 하나 더~
지난 8월 중순 치악산에 심장질환이 있는 등반객이 쓰러졌단다.
허겁지겁, 어제 근무하고 나간 조종사 다시 소집하고, 장비 싣고
이륙했다.
한 5분쯤 비행했는 데
헬기 기수가 좌우로 왔다갔다하며 도무지 안정이 되질 않는다.
응급조치 절차를 취해봐도 회복이
되질않아 할 수 없이 임무를 포기하고 되돌아 왔다.
그대로 계속가다간 사고가 날 판이니~~~
가까운 원주에 있는 타기관 헬기를 요청해 구조작업을 하라고 전해 놓고
고장부위를 점검하고 시험비행을 하고 있는데~~
계속 전화가 온다. 그쪽 헬기도 고장이 나서 즉시 이륙을 못하고 있다고~~
미치겠군~~~ 심장질환이면 5분내 심폐소생술을 시작해도 살까말까한데~~
어거지로 점검을 마치고나서 다시 이륙했다.
기상도 엉망이었지만, 어쩌나 변명의 여지가 없는 상황인데~~
그 사이 1시간이 경과했고
우리가 임무를 수행했지만, 결국 환자는 절명했다.
그리고 어제.
열우당 국회의원 아무개씨가 소방청 아무개씨한테
이런 사고가 있었다는 민원이 있으니 조사해 달라고 요구했단다.
당연한 일이다.
항공대. 상황실, 원주소방서, 타기관 4곳의 그날 상황일지와
현장에 출동했던 구조대원, 목격자들의 구술등을 종합하여
해명자료를 만들고 밤 늦게 돌아왔다.
유족들 입장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일행 중에 의사가 있었고 30분 정도는 환자의 의식이 있었다는데
믿었던 119 헬기가 2시간 넘어 나타나니~~~
당연히 119 이 개새끼, 소새끼 소리 나오지.
그리고 오늘 또 토요일이다.
앞산에 구름이 자꾸 엷어진다. 핸펀 어디 있나 다시 한번 살피고
저려오는 가슴을 풀어 놓기 위해
까페 문을 연다. (하필이면 산방인가 모르겠다)
오늘도~
지난 8년의 그것들 처럼 내겐 주말이 아니다.
이렇게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점점 자신감이 없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