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의 밤하늘
89년에 춘천 와 살기 시작했으니
올해로 16년째인가 보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땐
(관광이 아니라 살기 위해 왔으니)
뭔 놈의 도시가 도로 하나 똑바로 뻗은 것 없이
온통 구불구불하고, 좁고, 오르막 내리막에 ~
번듯한 관광명소 하나 없이~
그저 닭갈비에 술마시기나 좋은, 그런 곳으로 비쳤다.
그러니 서울사람들이 "춘천 가는 기차" 운운하는 소릴 들을 때면
뭔가 숨겨야 할 것이 있는 사람처럼 조금 불안하고 조심스럽고 그랬다.
(그 시절 춘천역이며 버스터미널 등의 모습을 생각해보면
더더욱 그렇다. 그 남루함이며 악취며~)
한마디로~~
교외로 나와 하루 둘러보고 가기에는 좋은 곳이나
그 속에서 살아가기에는 좁고 불편하고 답답한,
마치 영화세트 같은 도시로 느껴졌다.
그러니 그 시기에 내가
춘천을 둘러싸고 있는 호수나 올망졸망한 이쁜 산들,
시인이 직접 운영하는 작은 까페나,
한밤중에 의암호변에 앉아 차분한 도시의 불빛을 바라보는
정취를 즐기기는 애초에 불가능한 것이었다.
반면에 그 시기에는~
춘천에 있는 두 곳의 비행장에서 밤낮 구분없이 뜨고 내리는
군용헬기의 소음이 얼마나 지독한 것인지도
알지 못하고 지냈다. (나도 그 소음의 주범 중 한명이었으니까~)
그렇게~
이 도시에 살며 세월이 흐르고, 아이들이 크고,
나도 나이 들어갔다.
도시도, 그 곳에 사는 사람들도 모두 이렇게 저렇게
제 몸단장을 해 왔고, 이런 저런 이유로 몸값을 불려 갔다.
(복선 철도니 도로건설이니하는 소식에 힘입은 바 크다)
몇년 전~
맞벌이 열심히 한 덕에 의암호가 잘 보이는 곳에 아파트를 한채 마련했다.
전경이 참 좋다.
가로등 불빛이 잠겨 있는 의암호와 멀리 윤곽이 분명한 삼악산과 원창고개~
새로이 문을 연 구봉산 주변의 전망대 등을 내려다 보며
둘이 밤 늦도록 베란다에 앉아 있곤 했다.
그 베란다를 "북한강 까페"라 부르며~~
"북까페"에 단둘이 앉아 권커니 잣커니
주흥을 돋구는 일에 익숙해질 무렵 비로소~
이 도시의 한가지 커다란 약점이 눈에 띄었는데~~
바로 헬기소음이었다.
이 아파트가 미군 비행장의 장주권내에 있어
새벽 2시고 3시고 지 맘대로 뜨고 내리는 헬기 소음이 여간
지독한 것이 아니었다.
더구나 남들이 그 소음에 대해 불평을 할 때에도
나는 그저 침묵으로 일관 할 수 밖에 없었는데.
나도 그렇게 먹고 사는 죄로~~.
2005년 4월~
그 미군헬기들이 옮겨갔다. 국가안보면에서 어떤 득실이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이미 NIMBY 족의 전형으로 변한 내겐 그보다
반가운 일이 없었다.
낮 동안 비행장에서 헬기소음에 시달리다 돌아와
내 집에서 또 다시 그 소음을 들어야한다는 것은 정말이지
인내의 한계를 시험하는 고문에 다름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여간
그 날 이후, 우리의 "북까페"는 새로운 면모로 바뀌었다.
한여름에도 덧문 열기가 여의치 않던 상황에서
한없이 고요해진 춘천의, 의암호의 풍경을 오롯히 즐길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된 것이다.
그리고 나자 춘천의 밤이 새롭게 다가왔다.
마침내~~
호수가 눈에 띄지 않으면 답답해 못견디는
완전한 춘천사람된 우리를 환영하듯~~
차분하고 세련된 도시의 밤풍경을 통째로 ,
全裸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밤하늘의 고요함까지 덤으로~~~
주) 장주권:
활주로를 한변으로 하는 길이 2-4 킬로미터의 직사각형 구역, 공중공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