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산이야기

또 양양에서(4. 28-30)

언덕위에 서서 2005. 4. 30. 12:26
팔다리보다 입이 더 힘들더라
항공대장이라는 직책을 덥어쓰고 있으니
조종이 아니라 지휘부에 들어가게 된다.

양양에 또 내려왔다. 도지사 옆에서 밤을 새운다.
그 순간에는 당신이 지사인지, 내가 부하인지 모른다.
불끄는 일만 한다.
산위에서 밤새워 산불 번지는 거 감시하는 우리네
아들놈들(군 병사들)도 이게 너무 큰일인지라
지가 병장인지 일병인지 안 따지고 냉기와 싸우며 밤을
새웠을 것이다.
굳이 그 분위기에 순응하는 이유를 찾는다면
우리 모두 대한민족이기 때문이리라.

공중에서 의지할 것이라고는 내가 쥐고 있는 조종간
뿐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실감하는 조종사들 역시
마찬가지였으리라~~ “이게 내 일이지”라는 감정 이외에~~~

다행이 이번 작전은 매스컴에서 씹을 일 없이 무사히 끝났다.
그래서 지난번 양양산불처럼, 전 직원이 매시간 어디서
어떤 일을 했는지 적어 내라는 치욕스런 절차를 밟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내 희망사항이지만.)

강원도에서 일이 벌어졌으니 내는 남들 안 겪어도 되는 일을 치룬다.
불 꺼지고도 하루나 이틀은 더 기다린다.
재불나지 않나하고~~~ 그 동안 마누라는, 그리고 아이들은 가장 없이 지낸다.
(둘 다 좋겠지, 뭐~~)

내일, 불이 끝나고 이틀 쯤 후, 묵은 양말 몇 개 챙겨 집으로 간다. 기분 좋게~~~~
작전이 성공적으로 끝나면 이게 전부다. 공중에서 이러다 죽으면 어쩌지
하며 속으로 걱정하고 기도했던 사실은 본인부터 잊기 시작한다.
그게 직업이니까~~~ 그리고 그런 상황에 놓여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그 심정을 이해시키기는 애당초 불가능하다. 처녀에게 오르가즘을
설명하는 것처럼~~~~

근본적인 의구심~~ 불낸 놈을(원인) 찾아야지 불난 다음에 불을 잘 껏느니,
못껏느니 따져 뭐하겠느냐는 것이다.
이 놈의 대한민국 언제나 바뀌려나? 내가 버릴 수 도, 버리지도 못할,
내 입술위의 점 같은 존재야~~~~~~~~~?

이틀 밤을 새우고 내뱉는 아지랑이 같은 헛웃음이다.
긴박한 와중에 문자 메세지를 보고 정말 감사했다.
그럴 때 내가 이방에 속해 있다는 게 뿌듯했다.
오늘 상황이 조용해 내 무전기 목소리에 수십 번 출동한
동료 직원들과 회 먹었다.
산도 마셨다. 그래서 말투가 건방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