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산이야기

심선생님~~~

언덕위에 서서 2005. 3. 23. 13:16


춘천에 심선생님이라고 계신다. 심, 영字 식字를 쓰시는데~~
4~5년 전에 교직에서 은퇴하시고 이즈음은 산행이 주업이
되신 분이다.

아마 삼악산에 10번만 오면, 그 중 한번은 이분을 뵙게 될
것이다. 별로 크지 않은 체격에 반백의 짧은 머리, 산행
속도가 남들보다 2배정도 빠르고, 첨 오는 사람 같으면
부지런히 산행 안내를 자청하는 분, 그리고 하산할 때 비닐
봉지를 꺼내 들고 좌충우돌, 보물 줍듯 알뜰히 쓰레기를
주우며 내려오신다면 그 분이 틀림없다.

어쩌다 이 산을 찾는 등반객이라면 삼악산에 단 한 곳 있는
Ridge Route에 가서, 뉘게고 심선생님 봤냐고 물으면 된다.
(금방 올라 가셨다거나 오늘은 원행 가셨다는 등 답변이
돌아올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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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에는 1년에 삼악산을 300번 가자는 의미의 “삼백회(三百會)”
라는 산모임이 있는데 그분이 그 모임의 고문내지 원조쯤(?)되신다.
전직교사답게 워낙 다변가이신데 같이 산을 오르면
“이곳 잡아라, 저 바위 밟아라, 그 길로 가면 저 위에서 손잡을 곳이
만만찮다“ 식으로 너무(?) 자상하신데,

그 와중에 “춘천사람들 삼악산 옆에 산다는 사실만으로도
축복받았다”는 말씀을 자주 하신다.
대한민국 어딜 가 봐도 이렇게 아기자기하고 재미난 산이 없다는
것이다, 이 산처럼 도심 가까운 곳에~~~

한마디로 삼악산 예찬론자이신데 그러다보니 그 산에 쓰레기
있는 걸 못 보신다.
댐쪽 등산로가 주말인파에도 불구하고 항상 청결을 유지하는 건,
이 분의 산사랑에 기인하는 바가 매우 크다.
그래서 이분과 함께 산행하는 사람들은 덩달아 쓰레기 줍는 습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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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분을 1991년, 조기검도회 모임에서 사범님으로 처음 뵈었다.
춘천문화회관에서 직업도, 연령도 각양각색인 사범, 문하생이 모여
가르침을 주고받던 모임이었는데~~
출근시간이 이른 탓에, 운동시간이 상대적으로 짧은 군인수련생
몇이 틈틈이 사범님으로부터 보충수업을 받곤 했었다.

그 이유로 많은 제자들 중 몇몇이 가깝게 모실 기회가 되었는데,
그래서 내게는 아직도 심사범님이시다.

군인이라는 직업이 전국을 누비고 다니는 직업이라 그 이후 3-4년
춘천을 떠났다 돌아와 삼악산엘 다니기 시작했다.
산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삼악산에서 “심선생님” 모르면 바보라는
얘기를 하는 것이었다. 들을 땐 무심코  넘겼는데 산위에서
우연히 사범님과 재회하게 된 것이다.
(아하! 심선생님이 심사범님이셨군~~~)

반가운 마음이야 비할 바가 없었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세월의 흐름을
느껴야 했으니, 이제 나이가 들어 정년퇴직했고, 그 때 대학생이던
외아들은 미국으로 취업차 떠나고, 체육관도 젊은 사범들이하고 있고
이즈음 산행으로 소일한다는 말씀이셨다.
그러면서도 당신 백에서 대형 팻트병 2개를 꺼내 부지런히 물을 끓이고
커피를 타 둘러 않은 모두에게(대개 자기마실 물만 챙겨 올라온
젊은 것들한테) 대접하시는 데, 하루 이틀 하신 일이 아닌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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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년에 사범님댁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는데
거실에 들어서며 일행 모두가 깜짝 놀랐다. 거실 벽 곳곳을 바닥부터
천장까지 꽉 채우고 있는 LP판 과 그 당시 보기 힘든 벽걸이형 대형
TV와 거기 연결된 명품 오디오 셋 때문이었다.
판들은 전부 클래식판 뿐이고 대형화면도 외국의 오케스트라 연주장면을
현장감 있게 눈으로 보면서 감상하기 위해 설치했다는 것이다.

때때로 춘천에서 클래식 방송진행하는 PD가 판을 빌리러 오거나 전화로
곡명을 물어오곤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함께 운동하던 외아들이 체대가 아니라 음대로 갔지~~)

아침엔 운동하시고 저녁엔 어떻게 시간을 보내시냐는 질문에
서예학원엘 나가신다는 것이다.
“검도는 소도(小道)요, 서예는 대도(大道)니 검도만 해선 부족하다”는
말씀과 함께~~

그 날, 검도 초보들이 검도에 관한 말씀 들으러 갔다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하는지를 두 눈으로 보고 왔는데, 그 후유증(?)이 상당히 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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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가는데 앞에 셋이 걸어가면 그 중 하나는 내 스승이라는 말이 있다.
애들 학교 보내면서 몇몇 교사로 인해 가슴이 터질 것 같은 분노와
안타까움을 느껴본 내게는 이분의 일상이 가볍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서 요즘은 나도 쬐~~~~~금씩 , 산에서 쓰레기도 줍고,
일 말고 내가 남에게 보여줄 것이 무었이 있나?를 고민하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