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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묵은 주소록

언덕위에 서서 2004. 12. 26. 13:35
핸드폰에 저장된~~
전화번호가 800 개라고 찍혀 나온다.

물론 1인당 2~3개의 번호를 저장하니
꼭 800 명의 전화번호라고 말할 수는 없으나,
이 정도면 걸려오는 전화가 누구에게서 오는 것인지 대개는 알 수 있다.

(그러니 광고전화는 잘 받지 않는다.
입력된 번호 아니면 가급적 받지 않으니까~~)

평소엔 핸드폰만으로도 큰 불편없이 지내던 터였는데~~
연말이 되니 그게 아니다.
전화번호만 가지곤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곳도 많고,
e-mail만 가지고 될 일도 아니다.

일요일 오후,
사무실 책상서랍에 잊혀져 있던
묵은 전화번호부를 꺼내 훑어본다.
아마 7~8년은 묵은 수첩인듯한테~~ 감회가 새롭다.

그 안에 있는 면면을 생각하며 한장씩, 한장씩 넘겨간다.

더러는 직장을 옮기고
더러는 해외로 떠나 가끔 메일이나 교환하고

누구는 병들어 누워 전화받기도 어렵고
더러는 이제 전화할 일 없는 곳으로 가고
누구는 가족을 떠나 보내고~~

몇 분은 정년퇴직을 하셨고~~
몇 분은 자녀 혼사에 청첩을 해 주셨고

몇몇 전화번호는 그게 거기 그렇게 오래 전부터
적혀 있었다는 것이 새로울 정도로 귀한 것도 있고~~
(그런 번호는 얼른 핸드폰으로 옮겨 넣는다.)

그래~~~
핸드폰도 좋지만 이렇게 오래된 지부책도 꼭 있어야겠구나.
핸드폰 화면에 뜨는 숫자와는 또 다른
지난 일들을 떠 올리게하는 마력이 전화번호부에 있구나.

더러는 볼펜으로 더러는 연필로
찬찬히, 또는 급하게 휘갈겨 놓은 이름과 숫자가
그이의 이미지와 그때의 일거리, 좋았던 감정
서운했던 느낌 모두를 간직하고 있구나.

손 때가 묻어 누렇게 변한 ㄱ, ㄴ, ㄷ, ㄹ......들을 보며
감회에 젖는다.
많이 살았구나. 아마 반은 넘어 살았지~~~?

거기엔 e-maiI ID 없는 세대 이름이 많아
앞으로 일과 관련해서 만나는 기회는 없을 것으로
여겨지는 이들이지만~~~
그 이름, 주소는 지우지 말 일이다.

조만간 나도~~
누군가의 핸드폰 주소록에서 "지울까 말까?"
망설이는 이름이 되고 싶지 않음이다.


출처 : 묵은 주소록
글쓴이 : 비탈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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