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사람이야기

수건 분류 기준

언덕위에 서서 2019. 6. 22. 08:46



1.

사실상 집안 일을 도맡아 꾸려나가고 있는 큰아들 얘기다.

맨날 백수아빠와 부대끼며 사는게 쉽지 않은 일일텐데 그래도 무던하다.

아빠 잔소리 나오기 전에 눈치껏 장도 보고, 쌀도 씻고, 된장찌게에 전지 두루치기며, 야채까지 챙겨 놓는다.

에릭슨이 맞는가 보다. 인간은 자기실현을 최고의 가치로 설정하고 살아간다는~

현재 아빠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완벽하게 챙겨 놓음으로서  잔소리를 피할 수 있음은 물론이요.

자기 스스로 아빠가 원하는 자아상을 완성함으로서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거기다 이즈음엔 금요일에야 아빠가 집에 오니, 한 3일 눈 질끈 감고 견뎌내면 그 다음 나흘이 휴가 아닌가?

아침을 점심때 같이 먹던, 게임하다  눈알이 하나 어디로 가건 전혀 상관할 사람이 없을테니까~


2.

더러 아빠와 일을 나눠서 할 경우가 있다.

아들은 빨래를 해서 너는 일까지 하고, 빨래를 널기 위해서는 한 주일 건조대에 널려있던 빨래를 걷어다

개야하는데, 그 개는 일이 아빠 담당이다.

만약 아빠가 이슬이를 앞에 두고 앉아계실 동안 빨래가 다 됐다면, 빨래를 개는 일도 아들몫이다.

아빠가 일단 그 Process에 접어 들었다면, 가능한 움직이지 않고 그 일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경우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통상 빨래의 반 이상은 수건이다.

 누구네 무슨 기념, 무슨기념 문구도 다르고

알록달록 색도 다르고, 살짝살짝 크기도 질감도 두께도 제법 다르다. 



3.

아빠가 빨래를 갠 날도, 이미 개켜진  수건을 녀석이 다시 분류하는데

그 기준을 도무지 모르겠는 것이다. 참고로 아빠는 색깔별로 비슷한 것끼리 분류한다.

아빠가 애써  분류해 놓은 것을 지가 단호하게 다시 두 무더기로 나누는 것을 보며~

늘 그 기준이 뭔가 궁금했다.


어제 저녁, 지가 요리부터 테이블 셋팅까지 완벽하게 해 놓은 저녁식사를 마치고 나자마자 부리나케

지 방으로 간다.

알겠다 이놈아~ 엄마 아빠 7시반에 도착하신다니까 그 시간 맞춰 저녁준비하느라 게임 중지 시켜 놓고

나왔지?


'쟤 수건 개는거 봤지?' 마눌이 한마디 한다.

'응~~'

'어떻게 둘로 나누는지 알아?'

'몰라, 말을 안 해~~'

'두께를 기준으로 나누는거래, 두꺼운 건 바깥 화장실, 얇은 건 부모님 화장실~'

'왜 그런데?' 하고 물었더니

'두꺼운 건 쓰기 불편하잖아요.' 하더란다.


이거, 이거~~~~?

그런 잔소린 한 적이 없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