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사람이야기

[스크랩] 은퇴 연습~

언덕위에 서서 2012. 11. 17. 19:22

1.

공무원 정기 퇴직 시기는 매년 6월말, 12월 말 2회이다

명예퇴직은 본인 사정에 따라 년중 언제고 신청할 수 있으나

연령정년이나 계급정년은 생년월일, 특히 생일날짜에 따라

6월말 이전이면 6월말에,

7월1일 이후면 12월 말에 퇴직을 하도록 규정해 놨다

 

6월말부로 3명의 소방서장이 퇴직한다

나이가 내 또래인 양반도 있고 서너살 위인 양반도 있다

내 또래인 양반은 승진이 빨라 계급정년12년을 다 채우고 나가고

서너살 위인 양반들은 연령정년이 되어 나간다

 

승진이 빨라 56~7세에 먼저 나가는게 좋은 건지,

승진에 밀려 비굴함 경험하며 3~4년 더하고 나가는게 좋은 건지는 모르겠으나

떠나는 사람, 남아있는 사람  맘 어수선하긴 매 일반이다

 

2.

평일의 비번~

이것도 참 쉽지 않은 일이다

이 나이의 남자들이 뉘와 더불어 무슨 일을 하며 하루 해를 보내겠는가 말이다

 

이 궁리 저 궁리하다 신문과 간식꺼리 챙겨 메고 자전거를 끌고 나선다

평일 날 집안에 혼자 있어 봤자, 몸과 마음 전부 염세로 물들고 말지

결코 좋을 것 없다

몸을 움직이면 잡념도 줄어들 터~

 

의암호 자전거길을 밟아 나간다

더러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 모습이 나랑 흡사하다,

나이도, 차림새도, 얼굴 표정도~~ㅎㅎ

바쁘고 잘나가는 사람들이 이 시간에 자전거 탈 일 없을테니까 

적당히 후줄근하고, 적당히 나이든 사람들이 스쳐간다

 

서면 애니박물관 뜰에 자전거 세우고 목을 추긴다

상류쪽으로 가는 사람들, 하류쪽으로 가는 사람들~

혼자 타는 사람, 부부인지 둘이 타는 사람들, 떼로 몰려 다니는 사람들~

웃고 떠드는 사람들,  나처럼 묵묵히 페달을 밟고 있는 사람들

 

그 자전거길에서도 사람들의 일상이 어렴풋이 느껴진다

꼭 즐거움만이 자전거와 함께 가고 있는 것은 아닐 터이다

 

3.

다시 출발한다

의암댐을 향하는데 맞바람이라 자전거가 나가질 않는다

그래~자전거도 인생 사는 것과 같은 이치구나

맞바람을 맞으면 힘이 들고, 언덕을 오를 땐 숨이 턱에 닿고

내리막은 공짜 같고~~

 

송암동 종합경기장을 지나 공지천변 벤치에 도착한다

그늘이 좋은 곳에 자리를 잡고 신문과 간식을 꺼낸다

허기는 지는데 준비해 간 마늘빵이 너무 팍팍하다,

이 빵은 스파게티 접시 닦아 먹는데나 써야겠구나

 

몇 조각 남아있는 비닐봉지 입구를 잘 사려 한 쪽에 밀어둔다

( 누구 배고픈 사람 눈에 띨 경우에 대비해서~)

 

그리곤  아침에 한 번 읽은 신문을 다시 찬찬히 읽어 나간다

경제가 안 좋으니 기사내용도 대부분 우울하다

 

그 사이 맞은편 벤치에 바깥 노인네들이 하나, 둘, 셋~ 

따로따로 자리를 잡고 앉아 신문을 읽고 있는 나를 바라본다

아니~~ 신문을 바라본다

 

그 때

초췌한 모습의 40대 사내가 그늘로 들어온다

배고파 보인다

옆에 사려놓은 빵봉지에 눈이 멈추더니 봉지를 챙겨들고 간다

세 노인네가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순간, 머리속이 찌릿하며

상상이 이렇게 금방 현실로 나타날 수도 있구나~~

 

퇴직한 사람들 자리에 내 승진시켜 보내려나 하던 기대가 무너져

어수선한 맘으로 이런저런 궁리하는 내 속을 꿰뚫어 보신 모양이다

퍼뜩 정신이 난다

 

4.

자만심 버리라고 천사를 보내신 모양이다 후~~

 

신문을 챙겨 앞에 앉은 노인네에게 드린다

신문 보시겠어요?

아~~ 네 감사합니다

정말 반가운 표정이다

 

다시 자전거에 오른다

앞쪽에 60대로 보이는 안노인네들이 무리지어 걸어간다

밝은 웃음소리에, 선글라스에, 젏은 의상이다

 

문득~

왜 남자들은 나이들면 저렇게 혼자씩 앉아 있고 

여자들은 나이들어도 수다를 멈출 수 없는지 궁금해진다

아니, 여자들은 어떻게 같이 몰려 다닐 수 있는지 부러워진다

 

뒤에 남은  노인네들이 얼마 후 내 모습이지 생각하니

갑자기 마음이 급해져~~

부지런히 페달을 밟아 돌아왔다

 

 

 

 

 

 

 

 

 

 

 

 

 

 

 

 

출처 : 설악산을 사랑하는 江原山房
글쓴이 : 비탈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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