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샤워 꼭지~
1.
'94~95년 경
와이프가 모범장병에 선발되는 바람에 부부동반 유럽여행을 가게 되었다
령관장교 부부 10쌍이 함께 여행을 하는데, 내가 따라 나서는 바람에 현역은 11명, 민간인은 9명~
현역 11명은 출신 따지고, 기수 묻고하다 보니 대략 선후배 관계가 정리된다
대한민국 남자들 모이는 곳은 어디서나 이게 제일 먼저 해결되어야 한다
재는 내 밑, 쟤는 진급이 빠르지만 육사니까 또 내 밑~~하는 식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방부 예산으로 보내준 해외여행이요, 40대 젊은(?) 부부들이
떼를 지어 몰려 다니니 그 자체만으로도 재미가 있고 가는 곳마다 에피소드가 생긴다
런던 히드로 공항
기대에 부풀어 입국 심사장에 도착하니
영국인, 영연방 소속 승객들, 시커멓고 터번 쓴 사람들까지 먼저 다 내보내고,
자칭 고급 인력인 우리를 2시간이나 줄서서 기다리게 하는 영국의 입국 심사~
다리가 아파오는 걸 참고 줄 한가운데 서 있던 모 중령이 내뱉는 말,
이누무 시키들~ 영국제 무기 사나 봐라? 내가 누군줄 알고~~
(국방부 무기 획득국인가에 근무하는 양반이었다)
2.
한국사람들, 김치에 밥을 먹어야 입안이 깔끔한데, 하루 세끼 고기에 빵만 주니
속이 느글거려 영 먹지를 못한다
저녁에 호텔방 커피포트에 챙겨간 누룽지를 끓이고, 튜브형 고추장을 풀어서 내 놓으니
누룽지와 고추장이 이렇게 궁합이 잘 맞는지 몰랐다는 감탄~
아침에 체크 아웃하는데, 어떤 방에는 찐한 유료채널 시청료가 엄청 나와
후론트 앞에서 다들 배를 잡고 넘어지는데, 정작 그 부부는 얼굴이 빨개졌던 기억~
군사박물관에서 남자들이 중세의 갑옷이며 창칼, 대포, 소화기 등을 한없이 보고 있으니
마나님들은 하품을 하고 몸이 꼬다 못해 결국 우루루 딴 곳으로 가 버렸다.
그 대한민국 아줌마들의 힘~
영국에서 프랑스로 이동할때 해저터널에서 여실히 증명되었으니
점심 때 들른 한국식당에서 김밥과 김치를 주문해 온 덕에
떼제베 객실을 한국 고유의 냄새로 채우는 이벤트를 연출했던 것이다
3.
빠리.
프랑스 여자보다 더 노란 금발의 한국인 아가씨가 알려준 빠리에서의 생존전략
구빠리, 신빠리, 개똥조심, 멸치 볶음( 맥시 보흐: 감사합니다)~
베르사유 궁전의 각이 진 정원과 스포츠형으로 깍아 놓은 대형 정원수,
몽 마르뜨에서 만난 한국인 거리화가
에펠탑에서 내려다 보이던 프랑스 육군사관학교~
이태리에서는 와이프가 여성용 가죽 샌들을 한 켤레 샀는데
그 후10 여년간 그 신발을 애지중지 신고 다녔다 ( 길거리 노점마차에서 산 것인데~)
결국 그 신발을 더 신을 수 없게 되었을 때 아쉬워하는 표정을 보며~
언제 둘이 이태리 다시 가서, 똑 같은 디자인 신발 다시 사자했다
로마.
교황청에 들어가려 길고 긴 줄에 한 가운데 하염없이 서 있던 중~
일행 중 한 양반이 "야~ 이누므 스키" 하며 이태리 사람 팔을 잡아 비튼다
이크~ 뭐야?
내용인즉, 그 녀석은 뚱해 보이는 동양사람 노린 이태리산 소매치기였는데
상대는 중령 달도록 평생 공수부대에 근무한 양반이었다.
물론 태권도며 격파며 한가닥 하는~~상대를 잘 못 골라도 한참 잘 못 골랐지
그 후에 들른 성 베드로 성당의 한없이 높은 천장과 구석구석에서
따로따로 미사드리는 모습~ 은접시에 담아 놓은 동그란 촛대
교황청 담을 휘돌아 길고 길게 늘어선 사람들을 보면서
저 머리숫자 곱하기 25달러가 오늘의 교황청 총수입이겠구나 하며 부러워했던 기억
4.
그 9박10일의 유럽 여행 동안, 호텔에서 샤워할 때마다 짜증나는 일이 하나 있었다
내 깐에는 물 절약한다고 비누칠하는 동안 샤워꼭지를 잠그는데
그 다음 다시 샤워꼭지를 틀면 아래쪽 수도꼭지로 물이 나오는 것이었다
그러니 샤워를 계속하려면 아래쪽에 달린 전환스윗치를 다시 샤워기쪽으로
돌려야 하는 것이다, 비누 묻은 손으로
어떤 놈이 샤워꼭지 망가진 걸 고치지도 않고, 확~~ 전화하려다 말았다
( 요즘은 우리나라에도 이런 꼭지가 흔하다)
다시, 둘째 아들 얘기~~
우리집은 그런 자동 전환 스윗치가 아니라
위쪽은 고정 샤워꼭지,
중간에 손에 쥐고 뿌리는 자바라형 꼭지
그리고 벽에 달린 4개의 물구멍에서 수평으로 물을 쏘아대는
3개의 스윗치가 달린 샤워기 인데~
둘째놈이 집에 와 있던 몇개월 동안 샤워장에 들어가면 슬그머니 긴장하게 된다
내는 중간에 달린 자바라형 꼭지를 이용해 머리며, 등, 발 할 것 없이 모두 씻는데
이 놈은 꼭대기 고정형과 벽에 달린 물구멍을 틀고 샤워를 하는 모양~~
샤워 끝나고 그대로 나와 버리니, 그 뒤에 들어간 나는
예기치 않은 방향에서 갑자기 쏟어지는 찬물을 대책없이 덮어 쓸 밖에~~
그 놀람과 왕짜증,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
그걸 서너번 반복하고 나니
(물론 샤워 끝나면 아빠가 쓰는대로 해 놓으라 몇 번을 욱박 질렀지만~
그 녀석의 "네"란 대답은 알겠다는 의미도 되고, 경우에 따라선 또 까맣게 잊어버린다는
뜻도 됨을, 잔소리 후 또다시 물벼락을 맞고 나서 알게 되었다)
그 때 기억이 아직도 남아, 샤워기 앞에만 서면 3개의 스윗치가 어떻게
맞춰져 있는가를 유심히 보는데, 그러다가 피식~~
그 놈 ! 지금 군에 가 있잖아
5.
둘째 녀석~
이제 신병교육 8주째를 끝으로 다음 주면 자대로 배치될 것이다
오늘은 그간 가족들이 녀석에게 보낸 인터넷 편지를 블로그에 모아 놓았다
그러고 보니, 문득 녀석이 없는 사이, 집에 남아있는 아쉬움 중
샤워실의 긴장과~
녀석 집에 오기 전에 반드시 샤워꼭지를 바꿔야겠다는 아빠의 다짐을
기록에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녀석~~ 오늘 귀가 간질간질 하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