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사람이야기

[스크랩] 죽을 쑤다~

언덕위에 서서 2011. 11. 4. 09:50

방금 올린 뫼사랑님 글을 보니 보람이 충만한 하루였고,

그 하루가 다시 저녁시간으로 이어질 모양인데~~~

난 죽 쑨 얘기나 해야하니~~~ 세상 , 참!

 

1.

지난 토요일

3일 연휴로 시작되는 10월 첫날이니 오죽하겠나?

긴 하루를 보내고 피곤에 쩔어 집안에 들어서는데, 집사람이 힐끗 쳐다보곤

암말없이 가스불 켜고, 밥솥에서 밥을 푼다.

 

세식구가 둘러앉아 저녁을 먹는 동안도 암말이 없다.

뭔가 분위기가 이상해

"뭐~ 화난 일 있어?"하니

"아니~"하곤 다시 묵묵부답

밥도 먹는둥 마는 둥이다

 

"이거~ 뭔가 이상하다?" " 퇴근 늦는다고 전화 한통 할 걸 그랬나?"

" 하루종일 비행기  타다 온 남편한테 이런 적이 없었는데?"

 

은근히 비위가 꼬여,

"나도 하루종일 짜증스러운 일 뿐이었거든"

"뭔 일 있으면 빨리 말해~~"내 말끝이 올라간다.

 

 

2.

그러자 집사람은 억지로 한웅큼 웃더니~

엉거주춤 일어나, 싱크대 아래에서 큼지막한 냄비를 꺼낸다

이건 또 무슨 Situation?

밥솥으로가 한 주걱 남짓 밥을  푸고 냄비 가득 물을 받는다

 

그제서야 종일 엄마곁에 있던 큰아들놈이 한마디~

"엄마, 하루 종일 누워 계셨어요"

 

아차차차~~ 어제저녁 같이 소주 한잔하고

소파에 쓰러져 자는 걸  담요만 덮어주고 그냥 들어 갔더니

그 사이 몸살이 난 모양이구나

잠들면 금방 선뜩해지는 게 요즘 날씬데~~~이런!!!

 

엄살이라곤 모르는 사람인데, 정말 죽겠는 모양이다

곧바로 침대로 가서 눕는다.

 

그래, 죽이라도 내가 쑤워보자

가스불에 죽냄비 올려 놓고 깜빡하면 곤란하니

안 잊으려 식탁등 켜 놓고 소파에 와 TV를 켠다

 

채널을 맞춰 뉴스와  날씨 보고 있는데

"쏴~~~~~~~~~~~~~~~~~~~" 

"으이크~ 넘치는 구나!!!"

 

넘친 미음 닦아내고, 불을 최소로 해 놓고, 냄비뚜껑을 삐끔히 열어 놓고

다시 소파로 돌아온다

좀 있자 또 쏴~~~~~가스불이 꺼졌다.

 

"우쒸~~~~정말 죽을 쑤고 있네"

 

3.

2일, 3일 양일 간

그 죽만 억지로 몇모금 떠 넣고 버티더니

3일 저녁~

출장 차 전라도 광주까지 가야 한다며 주섬주섬 짐을 챙긴다.

후~~ 인생 쉽잖네, 당신이나 내나~~

 

도로가 막혀, 6시간을 길위에서 보내고 광주에 도착했다는 문자

"변변치 못한 아내 때문에 하루종일 밥도 맘편히 못먹었겠네~~"하며

 

4.

오늘~

마등령에 자살추정 행불자 있다고 수색대원들 공수해 달란다.

소방, 공단직원, 경찰 총 7명으로 꾸려진 합동수색대다

 

한 덩치하는 사람들, 장비까지 잔뜩지고 오니 무게가 대단해

2번에 나누어 올려준다

너덜바위쪽 빼꼼한 지역에 줄을 내리고 대원들 하강하는 동안

헬기는 바람에 안 밀리려 안깐힘을 쓰고 내 속은 그만큼 타들어 가고~

 

2시간 후, 시신 수습해 내려주고 돌아왔다

( 왜 그런데 가서 죽나? 유류품 주변에 다 남겨 놓고~ )

 

5.

집에 오니~~

흰죽이 남아있다. 식탁에는 참기름 띄운 외간장도 있고

간장을 섞어 한숫깔  입에 넣으니~

함초롬한 흰죽맛과 향긋한 참기름 냄새~~~~~~~~~~~~~

 

그러고 보니 어머님도 식구들 아프면 흰죽을 쑤어 주시곤 했었다

참기름 동동 띄운 간장까지~~

 

갑자기 목이 메인다, 가슴이 싸~~해지며

입안에 느껴지는 죽맛이 온통 그리움, 회환, 죄스러움, 안타까움

다시 되돌릴 수 없는 어머님에 대한 기억들로 바뀌어 간다.

 

후~~ 이러다 가슴 뭉개질라.

얼른 전화기를 꺼내 문자를 찍는다.

 

"흰죽맛에 엄니 생각이 난다, 넘 외로우셨을텐데

이제 그 엄니같은 존재로 당신만 내곁에 남았네~

몸은 좀 어때~~?"

 

가을 타는 게 분명한 것 같다.

쇠주라도 한잔해야 시린 가슴이 가라앉겠지~~~

 

 

 

 

 

 

출처 : 설악산을 사랑하는 江原山房
글쓴이 : 비탈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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