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嚴親, 慈親~~~
1.
오늘도 퇴근하니 식탁에 밥그릇, 수저셑, 유리물컵이 놓여있고
가스 렌지위에 찌게 냄비, 전기 밥솥은 켜져 있는 상태다.
헌데~ 정작 엊그제 다시 백수가 된 큰 아들은 집에 없다. 썰렁~~
좁쌀같은 아빠~~ 퇴근해 현관문을 열자마자 밥타령하는 꼴이 엔간치 지겨웠나 보다.
밥솥의 타이머를 보니 1시간 40분 전에 눌렀다. 그렇게 식은 밥 뎁히고, 식탁 세팅하고~
이 녀석은 밖으로 나간 것이다.
물론 아빠 퇴근 1시간 40분 전까지~~ 녀석은 잠옷차림으로 온 종일 게임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거 외에 녀석이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겠나?
쉬는 날, 아빠도 온 종일~~
TV 앞에서 탁자에 발을 올렸다 내렸다~ 두 손을 괴춤에 넣었다 허리춤에 넣었다 하며
소파 위에서 전세계 뉴스를 다 외우며 시간 보내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아빠곁에 결코 오지 않는 아들놈들)
녀석이 하루 종일, 자신의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학문에 힘쓸 것이라 기대할 순 없다. 기대해서도 안되고~~~
2.
그래서~~~
그 셑팅대로 찌게 뎁히고, 냉장고에서 김치 꺼내고, 밥솥에서 밥퍼서 허기를 달랜다.
배드민턴 가방에서 물병 꺼내, 엊저녁에 마시다만 물 비우고 정수기에서 새로 받는다.
클럽 체육관으로 행한다. 오늘이 3개월 레슨의 마지막 날인가 보다.
1주일에 4일 레슨이 있는데~~ 내가 참가한 날짜는 1.5일? 아마 그 보다 못할껄?
하여간 예쁘장한 노처녀 선생 한 명에게 나이든 학생 대여섯명이 있는대로 땡칠이가 되었다가
가까스로 레슨 끝나고, 땀에 흠뻑 젖어 집으로 온다. 10시가 넘었다.
아들이 문을 열며 맞아 준다. "어디 갔었니?"
"운동하러 나갔다가~~ 소양1교에서 2교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었는데~~~
도지사 보궐선거 구호가 너무 공허하더라구요~~~
아빤 누굴 찍으실 건데요?"
와우~~~ 아빤 보수 아니냐?
그래요~~~? 저는 아직 판단이 안서서요?
(아~~~ 얘는 더 이상 ADHD가 아닌 듯하다.)
3.
지는 지 방으로 들어가고, 나는 내 컴으로 오고~~
소주 1병 챙기러 뒷베란다로 가니~~~ 어렵쇼?
소주 8병, 캔맥주 2팩~~~?
아까 퇴근하며 소주 4병, 맥주 1 팩 사온건 기억하는데
이게 우짠 일~~~
아들~~~~? 네!
너 아빠 소주 사왔니?
네~~, 어제 장 보면서 아빠 소주 안사온게 자꾸 후회가 되더라구요~~
그래서~~~
그래? 그래서 매주 아빠가 술사는 양 그대로 사왔구나~~
이를 어째? 얘가 아빠 눈치보며 사회성(?) ,부모에 대한 존경심(?), 효심(?)이 커져가는 거야?
아니면~~~~
내가 내 선친의 담배냄새 밴 체취~~ 한없이 반복되는 군대 후생사업(벌목) 얘기
그런 것들에 몸서리치면서도
묵묵히, 당신 술 깨고 잠자리에 드실 때까지 꿇어 앉아 저려오는 하지의 고통을 감내해야 했던 것처럼
그런 심정인가? 이 아이도?
그렇게 아빠가 보기 싫어~~ 아빠 혼자 술 벗해 한 두시간 보내는 동안, 지는 게임하는 자유를 누리겠다는
궁리인가?~~
4.
그럼에도 고맙다.
너 어릴 때~~ 네가 나중에 강원도지사 누굴 찍어야 할지 고민하리란 상상 ~~~
미안하지만 못했었거든?
아빠가 매주 사들이는 소주와 맥주의 양을 네가 기억하리라곤 결코 상상 못했거든,
아니 그 양만큼을 네돈으로 사올 것이란 사실은~~ 결코, 결코 해본 적이 없거든, 엄마나 아빠나 ~~
아빠에게도 할아버지는 한없이 어렵고, 밉고, 불만스런 존재였단다.
지금의 네게 아빠가 지겹듯이~~~
그런데~~ 세상이 그 비슷하단다. 자연이 또 그렇단다.
세상에는 깔끔하게 니 맘에 드는 사람들, 니 맘에 꼭 맞는 일들만 있는게 아니란다.
이제 2번째 백수되어 보니~~~ 조금은 알겠지?
어쩌면 세상의 모든 아들들, 이 지구상의 모든 수컷들은
아빠란 존재로부터 세상과 좌절을 배우기 시작하는 것 아닌가 모르겠다.
좌절을 극복하거나, 타협하거나~~ 기만하거나~~(하는 기술?)
하여간 오늘 네가 사온 소맥이 모처럼 아빠로 하여금 되도 않는 소리로 자판 두드리게 했단다.
낼은 엄마가 오시겠지~~
그럼 넌 지난주처럼, 목소리도 좀 더 커지고~~~ 아빠 술먹고 늦게 온다고
비겁하게 엄마한테 이르고~~~ 그러겠지.
이눔아! 사나이끼리는 덥어 줄 건 덮어 주며 사는거야~~~
너도 아빠 나이 되면 알겠지만~~
사나이는 선이 굵어야 하는거야, 욕 먹을 땐 먹더라도~~~
하여간 사랑한다. 굽은 나무 같은 나의 아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