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 상황실 입니다.
내는 본래 군조종사 경력을 인정 받아 소방에 들어온 사람이라 119 구조헬기 조종하는 일이 주업무인 사람입니다.
그런데, 소방이란 조직도 계급사회(소위 제복관리)이다 보니, 공직생활 30년이 넘은 사람이 평생토록 조종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이런 저런 경험을 쌓아 소방서의 더 높은 직위로 진출해야할 시기가 된 것입니다.
해서 2008년에는 일선 소방서의 불끄는 과장으로서 2년 가까이 근무할 기회를 누렸었고,
올 해는 어찌어찌 119상황실에 근무할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해서 내친 김에 이곳에서 근무하며 새롭게 알게된
119상황실의 모습을 전하려 합니다.119상황실은 다들 잘 아시다시피 "전화번호 119"로 신고하는 모든 상황을 접수하고
그에 따른 조치를 하도록 지시하는 곳인데 신고하는 모든 상황이 하도 다양해서 몇몇 황당한 사례와 그에 따른 접보요원들의
고충을 소개하려 합니다.
우선 상활실의 내부 모습을 간단히 묘사하면, 그 장비며 인원배치가 일반회사의 콜 센터와 비슷합니다.
11명의 접보요원이 4~5개의 컴퓨터 화면이 놓여있는 각자의 부스에서1~2대의 전화기와 유무선 지령 장비를 조작하며
신고자의 위치, 출동대의 편성, 출동지령, 출동간 발생하는 각종상황에 대한 추가적인 조치 등을 행하고 있습니다.
이 요원들의 근무방식은 3교대인데 주-주-야-야-비-비 형태로 근무합니다. (주간근무 이틀, 야간근무 이틀, 비번 이틀)
1. 허둥지둥 당황한 신고전화
"119상황실입니다"
대단히 큰 목소리로 화급하게
" 119죠? 우리집에 불 났어요, 빨리 와요, 불이 활활 타고 연기가 시커멓게 올라가요"
" 네? 네 선생님 주소가 어떻게 되죠? "
" 00동이요, 아무 교회 옆이요, 빨리와요"
뚝~~~~ 전화 끊긴다.
전화번호가 화면에 뜨기 때문에 접보요원이 다시 신고자에게 전화를 걸면서, 동시에 출동대도 통화내용을 들을 수 있도록
지령시스템을 연결한다.
"여보세요? 방금 신고한 분이죠?"
"예? 예, 맞아요. 언제와요? 집 다타는데~"
" 00동 123번지 맞아요? "
" 아, 맞다니까? 교회 옆에, 급해 죽겠는데, 소방차는 안보내고"
" 안에 사람 있어요?, 몇층 건물인데 몇층에서 불이 났어요?"
"3층 건물인데, 2층부터 다 붙었어요. 2층에 애들이 있는 거 같아요"
" 알겠습니다. 금방 소방차 갈겁니다, 우선 애들 대피시킬 수 있으면 대피시켜 주세요"
"화재출동, 화재출동, 00동 123번지, 주택화재, 3층 건물, 2층에 요구조자 아이들 있음"
"출동대 00 지휘차, 00펌프, 00물탱크, 00구조대,00구급대," 인명구조 최우선 실시"
그 다음 길에서 볼수 있는 장면
앵~~하며, 크고 작은 빨간 불자동차들 뒤섞여, 기를 쓰며 좁은 도로를 빠져나가는 모습
뒤이어
무전기에서 출동대끼리 교신하는 내용, 앵앵거리는 소리, 연기발견, 선착대 현도(현장도착) 보고,
1호차는 왼쪽으로, 2호차는 오른쪽으로, 구조대는 현관문 파쇄하고 2층진입~~등등
요구조자 1명구조, 구급차로 이송,
초진!!!(큰 불길은 잡았다는 의미)
얼마 후 완진!!!(불길은 다 잡았고, 잔 불씨 정리만 하면 된다는 의미)
이렇게 화재 한 건이 처리된다.
2. 얌체족, 주취자의 횡설수설 전화
차분한 목소리로 오전내내 접보하던 남자직원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한다.
"어디라구요? 뭘 원하세요? 불났어요? 병원에 가실거예요?"
"눈에 불이 번쩍한다구요? 어떻게 다쳤어요? 알겠어요. 구급차 보내드릴테니까 "
"병원 한군데 갔다가 또 다른 병원 간다고 다시 전화 하면 안돼요. 아셨죠?"
왜 그래? 네~ 신고자가 술이 취해 오전내내 횡설수설 계속 전화를 해대고 있어요.
알았수, 너무 열 받지마
이 양반 상습범이에요, 하루 이틀 도 아니고~~
알 만하네
"00구급대 출동, 유선 연락 바람"
전화 통화 내용
" 응 맨날 전화하는 그 노인네 알지, 오늘도 주취 중, 필요하면 경찰 동행할 것"
3. 동물구조
119입니다. 고양이가 하수도에 갇혔다구요?
알겠습니다. 곧 가겠습니다.
처마 끝에 벌집이 있다구요?
알겠습니다. 곧 가겠습니다.
집안에 뱀이 있다구요?
알겠습니다. 곧 가겠습니다.
4. 전화위치 추적 요청 전화
119입니다.
딸아이가 엄마한테 혼나고 나가서 전화를 받지 않는다구요?
그런 사안으로는 위치 추적할 수 없습니다.
납치나 자살 등의 위급한 사안일 경우만 제한적으로 할 수 있습니다.
좀 더 기다려 보세요. 경찰에서 119로 전화하라 했다구요?
납치가 우려되는 상황이면 경찰도 전화 위치추적 할 수 있습니다.
소방은 실종신고를 받는 곳이 아니고 구조를 위해 위치추적을 하는 겁니다.
선생님 허위로 전화위치 추적을 요청하면 200만원 이하 과태료에 처할 수 있습니다.
제 이름이요? 김00입니다.
5. 장난전화, 허위전화
119입니다.
뭐~~ 너 00빵집 옆 공중전화에서 전화거는 거지?
네 이녀석, 자꾸 장난전화하면 감옥가는 수가 있다.
아마 학원에 다니는 중학생 녀석 같은데 학원끝나는 시간에 주변 공중전화를 이용해
119에 전화걸곤, 암말 않고 끊거나, 짧게 욕을 하거나 한단다.
한 동안 조용하더니 개학하고 다시 시작됐단다.
119입니다.
정상에 부근에 산불이 났다구요? 확실해요?
일행들 여럿이 함께 봤다구요?
알겠습니다. 00출동대 출동, 헬기 출동~~~
한참 후, 무전 교신.
헬기에서 정찰한 바 산불흔적은 발견할 수 없고
정상 부근에 흰구름이 피어나고 있음
6. 엉뚱한 전화, 협박전화
119입니다.
전보 보내려 하신다구요? 119는 전보 보내는 곳이 아닙니다.
우체국으로 하셔야지요.
119입니다.
자전거 체인이 벗겨졌다고? 얘야 그건 니네가 해결 할 수 있지 않니?
119입니다.
현관문이 닫혔는데 안에 3살 여아가 문을 못 연다구요?
알겠습니다. 곧 가겠습니다.
119입니다.
부부싸움해서 경찰은 출동했는데, 119는 왜 안오냐구요?
신고를 해야 가지요.
김 아무개 아직 소방서에 근무하냐구요?
하지요. 제 이름이요?
이00입니다. 왜요?
위의 예에서 보듯, 죄송하지만 우리나라 국민의 민도, 2011년 3월 현재, 부끄럽지만 크게 높지 않습니다. OECD가 어떻고
1인당 GDP가 어떻건 간에 이게 현실이고, FACT 입니다. 부끄럽기도 하고 화가 치밀기도 합니다.
부끄러운 이유는 이런 사례가 내가 속해있는 대한민국에서 매일매순간 지속적, 반복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점 때문이고
화가 나는 이유는 이런 사례를 고칠 수 있는 수단과 방법이 너무 먼 곳에(시간적, 제도적 측면에서)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언젠가는 고쳐지겠지요. 물론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언젠가가 너무 아득하게 느껴져서 또 다시
화가 치미는 것입니다. 이런 곳이 내가 일하는 직장이라는 사실이 또 외로움으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다행이 이런 불편한 심기를 가라앉혀 주는 모습이 있으니, 그런 일을 12시간씩 겪고 있는 직원들이 12시간을 쉬고 나서는
다시 회복된 모습으로 근무시간에 맞춰 나타난다는 사실입니다. 밝은 표정으로 인사를 나눈 후 수보대에 앉아 헤드셑을
귀에 걸고 업무를 시작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제 이곳에서 겨우 2주 근무한 사람으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뭔가가 직원들의
가슴과 정신에 굳건히 자리잡고 있는 건 아닐까하는 추측을 하게 되는 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