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사람이야기

양반노릇하려니 수염이 갈구친다고!~

언덕위에 서서 2010. 10. 2. 14:24

1.

항공대로 돌아온지 3주차다.

20개월 떠나 있는 동안 사람도 바뀌고 분위기도 많이 달라졌는데

더러는 맘에 들고, 더러는 영 맘에 들지 않는 면도 있다.

 

당장 견디기 어려운 게 식당 아줌마의 부재다.

그 기간에 어떤 연고로 아줌마를 내 보내고  기지내 장교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있다.

 

다들 큰 불편이 없는 모양인데, 내겐 이게 문제다.

장교식당이라는게  앞쪽에 원탁이 있어 지휘관 , 주요 참모들이  계급순서로 정해진 자리에 앉게 되어있고

그 앞에 일반석이 있어 식판에 밥 받아다 앉는 구조인데~

먼저 소방대장 하던 친구야 사병출신이니, 장교식당이라는 이름만으로도 보상이 되어

이런 저런 분위기 못 느끼고 잘 먹었던 모양인데

 

10여년 후배가 대대장이라고 헤드테이블에 앉아 있고

늙수구래한 소방대장이  줄서서 밥 받아다 먹으려니, 이게 영 아니다.

97년도.  그 식당 헤드테이블에서 차려놓은 밥 먹을 땐 몰랐는데

손님 신분으로 아래 테이블에서 밥 먹으려니 모래 씹는 맛이  되는 것이다.

아마 그 테이블에 앉아있는 친구들도 어색하긴 매 일반일 것이다.

 

 

2.

며칠 고민하다, 도시락을 싸가기로 했다.

도시락 싸는 일도  쉬운 일 아니고,  혼자 남아 그 밥을 먹는 꼴도 못 봐줄 청승이지만

어쩌랴? 혼자 밖에 나가 사 먹을 수도 없는 거고,

아침 안 먹는 놈이 점심까지 굶을 수도 없는 일이니~~~~~~~~~~~~~

 

그렇게 이틀을 도시락을 먹었다.

 

오늘 아침.

엊 저녁  술 탓에 늦게 잠이 깼다.

" 어이쿠~~ 도시락 싸야지. "

 

가만~~ 식탁쪽을 보니 먼저 일어난 큰 놈이

벌써 지 아침 챙겨 먹고, 보온 도시락에 밥을 푸고 있다.

 

" 아빠 도시락 싸는 거니?"

" 네~~~~"

 

대답이 공손하다.

" 아이구, 우리 효자 아들 좀 봐라~~"

공치사가 이어진다.

 

부지런히 지 가방 챙겨 메고, 자전거 끌고 나선다.

" 그럼, 먼저 갈께요~~~"

" 그래, 그래~~ 잘 다녀와라"

" 오늘이 금요일이니, 저녁에 엄마 오시면 맛있는 거 사다 먹자~~~"

 

도시락 땜에 아빠가 오늘 감동 먹었다.

 

3.

아침부터 날이 찐다.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눈에 거슬리는 꼴이 한 둘이 아니지만~

지긋이 눌러 버리고,

" 후덥지근하니, 에어컨 켜지~~

한 마디 하고 만다.

 

내 부재중에 그나마 있던 알량한 대장실도 헐어 버려

온 종일 칸막이 사이에 두고 서로 얼굴 맞대고 있으려니

피차에 죽을 맛이지만~~

 

그냥 그렇게 넘어간다.

아침에 아들이 싸준 도시락 들고 온 덕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