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문객
1.
중,고생 때, 공무원이란 사람들 때문에 많이 불쾌했던 기억이 있는데
아마 공권력을 빙자해, 군림한다는 느낌 때문이었을 게다.
이제 공무원으로 나이 들고 보니, 그게 참 터무니 없는 오해였다는 생각이 든다.
(모르지, 그 무렵 공무원과 이즈음의 공무원이 같다고는 할 수 없으니~ )
날도 덥고, 직원들 자유롭게 드나들라고, 사무실 문을 열어놓고 사는데
어느 땐 불쑥 황당한 인물들이 드리 닥친다.
안녕하세요? 녹즙이나 우유 배달해 드리는데요.
선생님, 벨트나 넥타이, 비아그라 있는데요.
신사화, 2컬레에 10만원입니다.
구두 수선이나 닦아 드립니다. 등등 부류도 여럿인데~~
더러는(아마 교보생명이지?) 비스켓 한 봉 또는 물티슈 한 팩과 함께
회사 상품 선전지를 얌전하게 전하고 가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는 교양과 매너 최대한 갖춰서 살며시 들어오니 크게 밉상은 아니다.
그나저나 공무원이 고압적이란 악평 들을까봐, 쉽게 거절하지도 못하고
어색한 표정으로 (마치 안 사서 큰 죄 짓는 듯한 심정으로~)
돌려 보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일하던 맥이 끊기는 것 외에 물질적 손해가 있는 건 아니다.
2.
Lunch Nomad라던가?
점심시간이면 인근지역 사람들 소방서 구내식당에 엄청 몰려오는데
인근 SW 개발회사에서 오는 젊은 친구들이 눈에 거슬린다.
남녀 구분 없이 복장이 좀 그렇고(터무니 없이 짧은 스커트나 무릎이 다 나오는 청바지),
줄 서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큰 소리로 마구 지껄여 대는 통에~~ 내가 민망스럽다.
그 와중에 2~3일에 한 번, 식당에 모습을 드러내는 노인네가 계시는데
온 직원들과 정중하게 인사 주고 받는 사이다.
퇴직한 소방관쯤 되나보다 하고 주위에 물어보니, 그건 아니고
자동차에 차량용품 싣고 다니며 파는 어른이란다.
소방서에 다니신 지는 근 10년이 되어가고~~
70넘은 두 내외가 함께 다니는데, 안노인네는 점심식사를 안하기 때문에
바깥어른만 식당에 내려오시고, 그 동안 안노인네는 차에 남아
이것, 저것 정리도하고, 소방서 앞마당 산책도 하시고~~
그 양반에게는 서장께서도 깍듯이 인사를 드린다.
3.
소방서안에 10평 남짓한 자료전시관이 있는데
1주일이면 서너번씩 유치원 꼬마 손님들이 몰려온다.
아마 춘천시내 모든 유치원 정규 탐방코스인 듯한데
그 자료관이 내 방과 붙어 있어 병아리들 몰려오면
꼼짝없이 그 소란 다 듣고 있어야 한다.
선생님이 시켰는지, 오늘도 복도가 떠나갈 정도로
“119, 119~~‘를 한참이나 외치다 돌아갔다.
4.
내 어릴 때에 비하면 관이 참 많이 변했구나 하는 생각.
하긴 경찰이 데모대에 두들겨 맞는 시대니~
맞는 걸로 치면 어디 경찰관뿐이랴?
엊그제는 한 밤중에 구급활동 하러 나간 여직원이
술취한 여인네한테 뺨을 맞고 돌아 온 적이 있다.
그 며칠 전엔, 성질 급한 엄마가 아이와 함께 구급차 타고 오다
구급차 빨리 안간다고, 중간에 내려 택시타고 병원에 가고
이튿날, 남자가 소방서에 따지러 온 적도 있다.
참, 변해도 많이 변했다는 생각이 든다.
‘97년 군대생활 끝내고, 소방관 된다니까
“참 잘 됐다. 곧 집 장만하겠네~” 하며 부러워하던
중학교 여자동기 모습이 떠오른다.
정말이지 이젠 그게 아닌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