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덕위에 서서 2009. 5. 14. 16:24

1.

산불철에 생일이 끼어 있어

몇 해를 동해안에서 미역국 말도 못 꺼내며 보냈는데 

거기 익숙해졌는가? 올 핸 집사람이 아예 남편 생일을 잊고 있었던 모양이다. 

 

모처럼 한 껀 올릴 찬스 였는데~~~

기특한 것이~~

막내 놈이 전날 엄마에게 전화를 했던 모양이다. 

부랴부랴 미역국에 케익에 부산을 떤다.

그런데 어렵쇼?

정작 당사자는 아빠에게 문자 한 번 안 보낸다?

이거 봐라~~~? 

저녁 늦게  큰놈을 시켜 동생에게 전화해 보라 이른다.

 

통화가 끝나고  나서 하는 말

아빠한테 편지써서 보냈데요.

그래? 문자도 잘 안보내는 놈이 아빠한테 편지를 써?

 

2.

이튿 날 편지가 도착했다.

편지 봉투도 없었는지 직접 만든 봉투에 주소를 써서 보냈다. 

 

설레는 마음으로 봉투를 연다.

아버지~~~! 로 시작하는 제법 틀이 잡힌 글씨체.

이젠 더 이상 아빠가 아니라 아버지란 말이지?   좋다.

 

한 장을 다 읽고 나서 뒷장을 읽을 때 쯤

 

핑~~~

아빠 감동시키려  작심하고 썼는가? 

 

나이 들면 말라야 할 곳은 축축해지고, 습해야 할 곳은 건조해진다던데

아빠가 나이 들어 주책없이 눈시울이 젖는 건가? 

감동이었다.

 

학비 비싼 외고에 보내 주어 고맙고,

아빠 닮아 주변 친구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성품과 외모를 물려 주셔서 고맙단다.

그 동안 아빠 주변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는데

그 중 더 이상 헬기 조종을 안 해도 되는 일이 다행이란다. 

주말에 지 보러 대전 내려 올 수 있는 것도 좋고~~~

 

3.

이 놈 봐라?

매사 주변에서 챙겨주지 않으면 되는 일이 없던 놈이

제법 철든 소릴 써 놨네?

 

다시 한 번 읽는다.

그러고 보니 이놈 고3 아냐?

 

지난 번에 올라 왔을 때 목욕탕에서 등판을 밀어 보니

골격도 단단해지고, 어깨도 묵직하더니만~~~

그 만큼 속도 익어가는 모양이구나.

 

고맙지. 나중엔 지 형도 챙겨야 할 놈인데~~~~

 

그런데 글 중간에 퍼뜩 눈에 뜨이는 문장.

" 아빠 닮아 술도 좀 하는 편이에요~~~~"

 

이걸 어쩌나? 이 놈~~~

아빠 앞에선  오만 상을 찡그리며 마시더만

 

그거? 쇼 였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