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사람이야기

이발소에서

언덕위에 서서 2009. 3. 31. 11:55

1.

잃었다 찾은 기쁨이란 표현이 있다.

사람 사는 게 다 똑 같아서 잘사는 이건 못 사는 이건 

아침에 일어나 하루 세끼 먹고

일주일에 한 두번 목욕하고 술 마시고  쇼핑하고

한달에 한 번 이발하고....대충 이렇게 살게다.

그게 충족되지 않으면 많이 불편하고 추레해지고 어깨 쳐진다.

그렇게 못하고 산다면 일상에서 많이 벗어났다는 얘기이고...

 

김영삼 전 대통령이 자신의 인생 역정을 이야기할 때 

단식 전에....  또는 단식 후에... 라는 표현을 자주 썼었다.

그 만큼 그에게는 단식이 큰 이정표로 자리잡고 있는 듯했다.

세속의 年時는 언제인지 기억하지 못하지만...

 

이즈음의 내겐 작년 말 양양에서의 생활이 그 이정표다.

양양에서 보낸 두달여의  생활은 앞서 말한 일상이 흩트러지는 기간이었다.

목욕,  이발하며 기상 시간까지....모든게 어설프고 불편했다.

 

이즈음 소방서로 출근하며 그로 인해 내게 돌아 온 일상들이

잃었다 찾은 기쁨으로 가슴에 다가온다.

 

2.

89년 춘천에 온 뒤 온 가족이  다니기 시작한 목욕탕이 쌍용회관이고

그 비슷한 기간 인연을 맺고 있는 곳이 나이 지긋한 부부가 운영하시는 우두동 이발관이다.

 

큰 놈이 초등학교 4~5학년 때부터 였나보다.

3부자가 주기적으로 이발을 하러 오니  많이 반가우셨을 것이고

그 덕에 엉뚱한 소리해 대는 큰 놈의 비위도 다 맞춰 주셨다.

그러자 언제부터인가  사장님은 큰 아이의 멘토가 되어 이런저런 인생의 지혜를  

전해주고 아이는 그 말씀을 곧이곧대로 지키는 관계가 되었다.

 

예를 들면 몸무게가 100kg에 육박하던 시기에

오후 6시 이후에는 음식 먹지마라. 그래야 살 빠진다라는 말씀은

아직도 큰 아이가 철저히 지키는 계명이고

그 덕에 요즘도 85kg 정도를 유지한다.

 

3.

엊그제 모처럼 큰 놈과 함께 이발소엘 갔다.

머리 굵으니 이젠 이발소건 목욕탕이건 아빠와 함게 가길 싫어한다.

작은 놈은 미장원에서 머리 짜르는지 오래됐고....

 

늘 지 맘을 편하게 해주는 분들이시니 묻지도 않는 말을 이것저것 늘어 놓는다.

지난 달에 졸업했고 아빠로 부터 독립하기 위해선 취업을 해야하는데

취업이 무척 어렵다는 둥...

겉만 보면 멀쩡한 얘기를 주절 거린다.

옆에 앉아 그 얘길 들으면서도 참, 멀쩡한 놈이로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이윽고 먼저 이발을 마친 녀석이 이발비를 내려한다.

아빠가 낼께. 먼저가서 엄마 저녁상 도와드려 

네... 하고도 우물쭈물한다.

지 이발하는 동안 아빠가 기다렸으니 지도 기다려 같이 가야한다는 생각 때문인 듯하다.

다시 먼저가서 엄마 도와 드려...하니 그제야 문을 열고 나선다. 

 

4.

나도 이발이 끝났다. 두사람 이발비를 내니

1인분은 돌려주신다.

왠 일....?

태영이 졸업 기념으로 오늘은 그냥 해 주신 거란다.

아이고, 이를 우짜노? 대학 입학 때도 그냥 해 주셨었는데  

받으시라 우기기도 그렇고...

 

그저 감사하다는 말만 하고 나왔다.

그래, 다음 부턴 학생요금 말고 성인 요금 내라하면 되지...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