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덕위에 서서 2009. 1. 21. 16:37

1. 

 점심시간.

지하층에 구내식당이 있다. 한 끼 3천원, 가격 싸고  음식 맛 좋아

소방서 직원뿐 아니라, 인접 농협, 공단  직원들도 와 함께 줄을 선다.

소방서 식당이니 천정에 스피커 달려 있고,  밥 먹으면서도 출동지령 다 듣는다.

너나 할 거 없이...

금요일, 메뉴가 국수다.   

 

 " 딩동, 딩동, 구급출동  oo구급대, oo아파트로 구급출동, 졸도환자"  지령이 떨어진다.

한 직원이,  국수를  한 젓갈  입에 넣으려다  말고 벌떡 일어나며  

" 아무개야!   이거 먹어." 하곤 뛰어 나간다.

 

순간,  뭔가 찌르르 한데, 이미  일상이 되어서 인가? 누구도 거기에

큰 눈길 보내지 않는다. 타 기관 식객들조차....

 

동기나 후배겠지, 그 식판을 받아든 직원, 망설임 없이 국수를 퍼 먹는다.

집에서 형이 먹다 건네준 국수그릇 해치우듯이...

 

2.

저녁 무렵

퇴근길에 소방서앞 곰치집에서 소주 한잔 하잔다.

좋지, 닷새 열심히 일했으니, 한 잔 걸치고 헤어지는 거 마다 할 이유 없지.

 

찌개가 나오고, 소주가 두어 순배 돌아갈 무렵, 전화가 울린다.

강촌 리조트 인근 스키대여점에 화재가 나,  가평소방서에서 응원출동하고

우리서 소방차들도 출동 중이란다.

튀어 나온다. 술 냄새야 좀 나겠지만, 어쩌랴? 현장으로 쫒아 가야지.

 

가보니, 샌드위치 판넬 가건물이 폭삭 주저 앉았고, 가게 안에 있던 보드며 스키는

하나도 못 건진 모양이다. 피해액이 꽤 될텐데...

 물을 쏘아도  찌그러진 양철판을 타고 밖으로 흘러 내릴 뿐

건물 잔해 속에선  연기가 계속 뿜어져  나온다.

그 연기를 뚫고 잔해 위로 올라가, 도끼로 양철판을 내리쳐 구멍을 내고

그리로 물을 쏘아 진화를 해 나간다.

 

소방차 조명을 받는 쪽은 밝은데,  반대편 차가 못들어 가는 쪽은 껌껌하다.

그 껌껌한 쪽에서  작업하던 한 직원이 소리친다.

"인수 형!  이쪽으로 호스 좀 끌어 줘...." 

"어! 그래,  갈게..." 

 

형..?, 참 좋은 호칭이다.

짧고, 발음하기 좋고, 의미하는 바가 명확한...

거기에, 뭐랄까?  믿음과 기대가 더해진,  참 듣기 좋은 호칭이다.

이 화급한 현장에 꼭 맞는 ...

 

" 불 혼자 꺼요?  그거 아니예요..." 하시던 말이 생각난다.

아마 이런 끈끈한 관계, 너, 나 없이 바쁘게 돌아가야 하는

바쁜 현장를 통칭하는 표현이었으리라...

 

3.

 퇴근 무렵.

작은 키에 만삭의 몸으로, 계단 오르내리는 모습이 안스러워 보이던  여직원이  

방문을 열고 들어 선다.

 

" 과장님, 다음 주부터 출산 휴가 들어 갑니다. 인사드리려구요.."

" 어?  어,어... 그래, 휴가가 석달인가? "

" 네.."

" 잘 다녀 와. 순산하고...

 우리 집사람 애기 낳을 땐 휴가가 두달이라

 애 떼어 놓고 출근하던 날 많이 아쉬워 하던데... 그나마 조금 낫네"

"애기 잘 키우다, 건강하게 돌아와." 

 

맨입으로 인사치레만 하려니 괜히 미안스럽다. 

" 이거 어쩌지,  아무것도  준비 못하고...." 

형 말고, 오빠같은 심정 되어  옆에 있던 비스켓  봉지를 집어 건넨다.

 

여기가 사람 사는데 맞구나.

사람 냄새 진하게 나는...